설명하지 않기로 했다.
축하 대신 깎아내리는 말을 건네는 사람에게 상한 마음을 표현하면, 돌아오는 것은 공감이 아니라 “속이 좁다”는 말이다.
상처 위에 다시 책임을 씌우는, 조용한 2차 가해다.
그래서 그런 사람에게는 애써 설명하지 않는다. 설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말이 닿을 사람과 닿지 않을 사람은 처음부터 구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 그럴 수 있어. 넌 그런 사람이니까.’
그렇게 마음 한 조각을 뚝 떼어 내어 내려놓으면 그만이다.
이해시키려 할수록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이해를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방어로 무장한 채 더 날 선 말로 상대를 누르려 한다.
그 과정에서 상처는 반복되고, 소진되는 쪽은 늘 설명하려 했던 사람이다. 그러니 그들에게서 이해나 공감을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낫다. 기대를 거두는 일은 체념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는 선택이다.
결국 세계가 다를 뿐이다.
같은 말을 듣고도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들, 다른 기준으로 감정을 다루는 사람들.
굳이 나와 다른 세계의 사람과 부딪히며 나를 소모할 필요는 없다. 나의 말이 자연스럽게 닿고, 마음이 왜곡되지 않는 세계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
관계는 설득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닿음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닿지 않는 곳에서 물러나는 용기 역시,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