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이 가끔 힘들다

by 예담


우리는 대개 힘들 때, 혹은 기쁜 일을 나누고 싶을 때 이야기를 꺼낸다. 그럴 때 상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내어주길 기대한다. 그래서 공감은 좋은 것, 꼭 필요한 것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떤 순간에는 그 공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애써 듣고는 있지만 마음이 따라가지 않을 때가 있다.


공감이 특히 어려워지는 순간은,

상대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을수록 그렇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가 꺼내는 말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다. “그럴 수 있지”라는 말이 비교적 쉽게 나온다. 하지만 가까운 사람,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일수록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사람이 살아온 태도, 반복해 온 선택들, 이미 여러 번 보아온 장면들이 함께 떠오른다.

그러다 보면 지금의 어려움이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그 사람의 ‘패턴’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충분히 공감이 되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같은 말, 비슷한 상황이라도 어떤 사람의 이야기는 마음에 닿고, 어떤 사람의 이야기는 마음에서 멈춘다.

특히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 없이 원망이 먼저 나오는 모습을 반복해서 보게 될 때, 공감은 점점 소진된다. 그 감정이 이해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미 너무 많이 이해해 왔기 때문이다.


이럴 때 마음속에서는 공감보다 조언이 먼저 고개를 든다.

“이건 이렇게 해보는 게 어때?”

“이 문제는 사실 네 선택과도 관련이 있어.”

말하지 않으려 애써도, 그런 문장들이 혀끝까지 올라온다. 공감을 못 해서라기보다는, 같은 이야기를 같은 자리에서 계속 듣고 있다는 피로 때문일지도 모른다. 감정을 위로하는 역할을 넘어서, 관계 전체를 함께 보고 있기 때문이다.


공감의 중요성은 분명하다. 하지만 공감이 언제나 가능하고, 언제나 옳은 선택인지는 다른 문제다.

공감은 의무가 아니라 능력이고, 그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가까운 관계일수록 그 한계는 더 빨리 드러난다. 공감하지 못하는 순간은 냉정함의 증거라기보다, 이미 충분히 애써왔다는 신호일 수 있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생각해 보게 된다.

공감하지 못하는 내가 문제일까, 아니면 공감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지점에 와 있는 걸까.

모든 이야기에 같은 깊이로 반응하지 않아도 된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함부로 대할 필요도 없고,

끝까지 들어주지 못한다고 해서 나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공감해 주기 힘든 사람은 분명 존재한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어쩌면 공감을 더 건강하게 다루는 첫걸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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