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가끔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떤 입장을 갖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을 때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객관화하여 생각해 본다.
늘 나로 머물러 있는 자신이기에 스스로를
객관화하기란 쉽진 않다.
그럴 땐, 그 상황을 내가 아닌 가족이나 소중한 지인이 겪고 있다 가정한다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
그리고 어떻게 행동하길 바라며,
어떤 조언을 해 주면 좋을 지에 대해 생각해 보면,
판단하고 결정하는데 도움이 된다.
상대에게 후하고 친절한 편인 나는 웬만하면 아름답게 해석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어쩔 땐 고통둔감자인가 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뒤늦은 깨달음으로
마음 아픔이 찾아왔을 때 오랜 시간
깊은 상심으로 속상한 나날을 보내는 걸 보면
둔감자라 할 수는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분명히 시그널들이 있었다.
인간관계에서 갈등이 생기면 상한 나의 마음보다는
믿고 좋아했던 상대의 입장을 미화하고
내가 바라는 결과를 생각하며 미련한 기다림의
선택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상대는 내 마음과 달랐음을
눈치챘음에도 내가 내 마음을 모른 척했던 것이다.
결과는 뒤늦은 후회뿐.
요즘은 선택 장애와 판단 미숙이 찾아올 땐
내 가족 또는 소중한 사람이 이런 상황이라
가정해 본다.
그런 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려해 본다.
물론 주변에 조언을 구할 수도 있겠지만
위안이나 참고로만 하고 전적으로 의지해선 안 된다.
어떤 사람이 조언자가 될 지에 대한 변수도 있고,
때론 내 고민이 조언을 구했던 사람의 도구가 되어
안주거리 또는 인질이 되는 슬픈 일이 발생하기도
하니까.
혹, 해결해야 할 상황이 전문가적인 도움이
필요한 일이라 여겨진다면
옆집 엄마 열명을 찾아가기보다 전문가를 속히
찾아 도움을 받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