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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니 Oct 18. 2022

직장인, 유학갈 수 있을까 2화

토플전쟁

결심이 확고해도 인생에는 늘 변수가 있는 법. 결론만 말하자면 처음 목표였던 토플 100점은 달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또 다른 결론을 말하자면 중간에 수정한 목표를 달성하긴 했다. 


일단 해커스 토플 정규 문제집을 사서 독학을 시작했다. 직장인에게 학원은 사치다. 예습복습과제 할 시간이 어디 있나. 시간 나는 대로 엉덩이 붙이고 해야 된다. 솔직히 엉덩이 붙이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당시에는 열정이 가득했기 때문에 미라클 모닝으로 짬시간을 마련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영어 단어를 외우고 문제집을 조금 풀었다. 퇴근하면 도서관으로 가서 남은 공부를 했다. 매일은 아니고 시간이 될 때만 했다. 공부도 오픈빨(?)이라는 게 있는지 초반 몇 개월은 퍽 쉽게 공부가 됐다. 마음이 급했고 급한 마음을 따라갈 수 있는 체력이 있었다. 스스로에게 느끼는 기특하고 뿌듯한 마음이 부스터라면 부스터였다. 그해 겨울이 되면서 토플 100점이라는 목표는 더 간절해졌는데, 그 이유에 로맨스가 있었다고 고백하면 너무 어이 없는 전개일까. 


'해보라'는 말로 나를 부추긴(?) 중국인 친구, 그 친구와의 관계에 핑크빛 바람이 불었다. 추워지는 계절에 한번 영상통화를 하게 됐는데 반가움과 묘한 감정이 뒤섞였다. 이후로 날이면 날마다 영상통화를 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썸이 됐다. 다시 한번 소개하자면 중국인 친구는 공대생이고 스위스 취리히대학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다. 나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렘에 판단력을 잃었다. 취리히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해버리면 되잖아? 라는 생각이 들었고 찾아보니 마침 끼워맞춰볼 수 있는 석사 프로그램이 하나 있었다. 그 프로그램의 영어 기준이 토플 100점이었다. 토플은 조금만 열심히 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타임라인을 보니 4월에 지원하면 당장 9월 학기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 대박. 나 이제 공부와 사랑 둘 다 잡는 거네? 


인간이 이렇게 멍청하다. 30년 동안 공부도 사랑도 쉬워본 적 없으면서 저 타임라인이 가능할 거라고 믿다니. 1월에 처음 본 토플 성적은 88점. 실망스러운 점수였고 그 때부터 슬슬 체력도 마음도 지치기 시작했다. 목표가 뚜렷하고 간절해지다보니 더 힘들었다. 버츄얼 썸도 버겁기는 마찬가지. 썸 오픈빨도 길어야 세 달인가. 슬슬 안 맞는 부분이 보였고 연락을 주고 받는 일도 숙제 같은 일상이 되며 마음이 저물어 갔다. 아마 그 시점부터 유럽의 다른 나라 프로그램을 찾아보기 시작한 거 같다. 영국 갔다가 독일 갔다가 이전에 교수님이 말해 준 핀란드도 갔다가. 그런데 오? 핀란드에 흥미로운 프로그램이 있었다. 토플 최저점도 92점. 이 정도면 할 만하다. 지원 시기도 12월이니 심지어 마음의 여유까지 확보할 수 있다. 현대인의 내적 계산기는 결정이 빠르다. 빠르게 썸을 끝내고 목표를 수정했다. 핀란드 가자. 


그러나 토플은 만만한 놈이 아니었다. 5점 10점 올리기도 만만치 않았다. 심지어 3월에는 코로나까지 걸리면서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졌고 한달 가량 아예 손을 놓았다. 그러고 나서 시험을 쳤더니 82점. 점수가 더 떨어지기도 하는구나. 좌절이다. 다시 체력을 좀 회복하고 마음도 추슬러서 겨우 겨우 공부를 했다. 6월 초에 다시 시험을 치니 93점. 핀란드 대학에서 요구한 토플 성적 최저점이 92점이니까 겨우 턱걸이로 성공한 셈이다. 턱걸이면 어떠랴 잠시라도 토플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쾌재를 외쳤다. 그리고 조금 여유로운 마음으로 지금까지 왔다. 석사 지원 리스트도 손을 보고 이력서(CV) 초안도 써 두었다. 이제 Motivation Letter 작성을 앞두고 있다. 이쯤되니 해내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져서 마음이 조급해진다. 


나, 유학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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