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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요 Aug 03. 2020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고 사랑하는 방법

내 삶의 아름다움을 일깨워 줄 영화 <패터슨>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가서 다행이다.'라고 하기엔 너무도 지루한 날들의 연속입니다. 이런 날에는 지구멸망 소식이라도 나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외계인이 침공해서 뉴욕일대를 다 부셨다는 속보는 언제 뜨는 건지... 분노하고 괴로워해도 좋으니, 어떤 인생이 뒤흔들릴 만한 사건이 생겼으면 합니다. 엑스트라가 되기보단 비련의 주인공을 택하고 싶은 게 저뿐만은 아니겠지요.  


일상은 너무 단조롭고 별 일 없습니다. 매일 보는 티비와 책에는 온갖 사건들이 일어나는데, 그 세상에 나만이 편승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주변 지인들의 SNS만 봐도 나만 이렇게 살고 있나- 무료하다 못해 서글프기까지 합니다.


그런 인생의 노잼시기에 들어선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가 있습니다. 특별한 일 없이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는 주인공의 일주일을 담은 영화입니다. 매일이 반복되는데도 불구하고, 지루하지가 않습니다. 이상하게도 말이죠. 주인공은 직업이 특출나지도 않고, 어떤 초월적인 재능이 있지도 않습니다. 큰 도시에 살아가는 것도 아니고, 주변에 뛰어난 인물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큰 욕망을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을 들여다보고 나면 세상이 아름다워 보입니다. 지루한 공간이 어쩐지 귀여운 사연을 가졌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영화<패터슨>의 주인공, 패터슨에게서 일상을 살아가고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패터슨의 일주일, 반복되는 칠일


오전 6시 15분 전후로 일어나 협탁 위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하고 출근 준비를 시작합니다. 침대에서 벗어나기 전에 아내 로라에게 가볍게 키스를 합니다. 아침으로는 씨리얼을 먹고 도시락 가방을 챙기고 걸어서 회사로 걸어갑니다. 버스운전사인 그는 시간이 되면 운전대를 잡고 노선을 따라 움직입니다. 점심은 폭포 근처 벤치에 앉아 느긋히 먹습니다. 퇴근 후에는 강아지 마빈과 산책을 합니다. 산책 코스에는 단골 펍으로 가 맥주 한 잔을 마시는 것도 포함되어 있죠. 주인과 사소한 얘기를 하며 맥주를 마시며 하루 일과를 마무리 합니다.


그런 그에게 취미가 있다면, 바로 ‘시 쓰기’ 입니다. 그는 반복되는 일과 속에서도 ‘시’를 찾아냅니다. 식탁 위의 작은 성냥갑에서, 사랑하는 아내 로라에게서, 직장 동료의 험담에서,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말이죠. 패터슨의 일상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그가 일상을 시로 받아드리고 때문일 것입니다.




시인이 될 필요는 없다.


시인이 되라는 말은 아닙니다. 일상을 시로 받아드리고, 소소한 것들에 집중하고 다른 시선으로 보라는 것도 아닙니다. 당신이 시인이 될 필요도, 그 무엇이 될 필요도 없습니다. 패터슨은 영화 내내 자신을 시인으로 지칭하는 일도 없고, 아내를 제외하면 누구에게도 시를 공개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스스로 시인이 아니고 버스 운전사라고 말하는 패터슨은 시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명제로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들로 가득 찬 지구에서 그가 시인인지 시인이 아닌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글을 못 쓰는지 잘 쓰는지도 말이죠. 중요한 것은 그가 시를 좋아하고 시로 숨을 쉬고 있냐는 것이죠.  




시를 정말 좋아하는군요?


패터슨은 일상에서 소재를 찾아내 시를 씁니다. 그녀의 아내, 로라에 대한 사랑시를 씁니다. 로라를 사랑하는 일과 시를 좋아하는 일은 유사합니다. 로라를 사랑한다는 건 로라만 알면 될 일이고, 시를 좋아하는 일 또한 자신만 알면 되는 일입니다.


보여주기 식의 사랑을 해야 할 필요가 없듯, ‘시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전문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 하는 일이니까 말이죠. 우리는 좋아하는 일을 못해도 됩니다. 준프로가 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한 시간이, 그러한 당신이, 누군가에게 명명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요?




숨쉬듯 좋아해서 일상이 된 것


남들에게 보이지 않아도 계속 하고 싶은 일. 비밀노트에나 적으면서도 놓치지 못하는 일. 잘하냐 못하냐는 상관없습니다. 우리 삶의 중심점을 잡아주는 것은 어떤 특별하고 잘 난 것이 아니니까요.


하루 일과를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은 동네 한 바퀴를 걷고,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사소한 것을 적는 것에서 나오는 것인지 모릅니다. 남들에게 멋져 보이는 것보다도,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 행위가 당신에게도 있을 것입니다.


부담없이 일상에 깊이 파고든 당신의 ‘시’는 무엇인가요?




쓸모 없는 컷으로 가득 찬 일상


일상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말했다면, 이번에는 일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얘기해 볼까합니다. 이 영화는 정말이지 쓸모 없는 컷으로 가득 찼습니다. 놀랍게도, 그 쓸모없는 컷들이 뭉쳐 패터슨의 아름다운 일상을 이뤄냈습니다. 보라 빛이 좋다고 하면 죽음을 예상하는 시청자들에게 이 영화는 보는 내내 긴장감을 선사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블록버스터의 폭발과 화려한 액션, 웅장한 세계관과 수많은 복선들, 운명적인 사랑으로 점철된 것들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패터슨은 그 무엇도 주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불평이, 누군가의 고민이, 큰 사건으로 번질 것 같지만 그것은 일상을 파괴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은 별 일 아닌 일과 중 하나가 됩니다. 오늘은 아무 일도 없이 넘어가지만 반복되는 일상에 모든 일들이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일 수도 있으나,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그런 일은 없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패터슨의 주변인들에게도 말이죠. 결국엔 모든 것이 작은 해프닝이 되고 오늘은 다시 어제와 같습니다.


우리가 하는 고민 중에서 실제로 그 사건이 일어날 확률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하는 말들과 걱정들은 일어나지 않고 지나가버립니다.

그렇게 쓸모없어 보이는 것 하나하나가 우리의 일상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이 어제와 오늘의 차이점을 만들어내는 것이겠죠.



한 주의 끝, 다시 월요일

 

끝이 있으면, 시작이 있는 법. 일요일이 끝나면, 월요일이 돌아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지만, 주말 새에 패터슨은 소중한 시를 잃게 되었습니다. 시름에 빠진 그는 공원을 산책하다 일본인 시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에게 “때로는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라는 말과 함께 새 공책을 선물합니다.


월화수목금, 그리고 주말. 다시 월.

패터슨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일주일을 반복해서 살아갈 것입니다. 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더 멋진 시를 써내려 갈 일주일을 말이죠.




패터슨시에 사는 패터슨, 오늘도 굿나잇.


우리의 삶이 크게 변할 일은 많지 않습니다. 변하겠다-하면, 그 변화는 또 고착되어 일상이 되어버리니 말이죠. 패터슨은 버스운전사이지만 우리가 그를 '시를 쓰는' 버스운전사로 지칭합니다. 좋아하는 일로 구축하는 일상은 이름 앞에 수식언을 붙일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일상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요? 당신은 무엇으로 불리고 싶으신가요?

우리에게 텅 빈 공책이 있고, 그걸 채울 도구가 있죠.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일을 수행하고 있는 당신, 오늘도 굿나잇.





이미지 출처 : IMDb(Internet Movie Database) paterson photo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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