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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요 May 05. 2020

안부를 물으면 무안 주는 사람

빈말에 진심을 다하면 큰일난다.


그냥 알겠다고 하면 되지. 왜 그렇게 사람 무안을 줘.


아울렛 매장에서 알바를 할 적이었다. 옆 매장 매니저님은 내게 알바할 사람이 없냐고 물어왔다. 처음 듣는 질문은 아니었지만 성심성의껏 생각을 해보고선 거절의 말을 내뱉었다. 대학생이란 무릇 동네 친구를 가지고 있지 않은 법. 내 주변에, 그리고 이 아울렛 주변에 알바할 지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 대답을 들은 매니저님이 이렇게 말했다. ‘없어도 한 번 알아 봐드릴게요~하고 넘어가면 어련히 없구나 알 건데, 왜 아줌마 무안주고 그래.’ 내 대답이 무안을 주었다니. 머리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엄청나게 친절하고 예의 바른 태도로 거절했다고 생각했는데, 매니저님의 대답에서 당혹감과 서운함이 느껴져 당혹스러웠다. 나는 고양이 캐릭터가 그려진 카운터 앞에서 고뇌했다. 한 번 알아봐드릴게요. 그게 더 별로지 않나? 지금 당장 답을 해줄 수 있는데 왜? 나중에 다시 안 물어볼 거라고? 정말? 매장이 손님이 아니라 물음표로 가득 찼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라났건만, 한국의 예의범절이 한없이 낯설다. 모두들 아는 이야기겠지만, ‘밥 먹었니?’라는 질문에는 응당 ‘밥 먹었다.’라고 대답하는 게 이 나라의 규칙이다. 몇 외국인들은 한국식 안부 인사에 진실로 ‘먹지 않았다’고 답해 한국인을 당혹게 한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우리 엄마도 저 일화를 알지만, 그녀는 자기 딸이 밖에서 외국인처럼 굴고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억울함을 호소해보자면, 사람들은 내 답변에 당혹스러워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내게 지적을 하거나, 난감하다는 표현을 한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언제나 진심으로 말했다. 진심은 진실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여겼고, 그게 나의 예의였다. 그리고 굳이 작은 거짓말들을 해서 얻을 이득은 뭐고, 남을 헷갈리게 할 필요가 뭐 있나 싶은 거다. 남을 헷갈리게 한다는 말은 내가 헷갈린다는 의미다. 그리고 같이 밥 먹자고 하면 어떡하고, 뭐 먹었냐고 물으면 또 뭐라 말해. 그렇다. 난 사실 한국인이 아니다.


스물 초반에는 친구 두 명과 함께 자취한 적이 있다. 친구 자취방에서 놀다가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같이 자취하자.’라는 지나가는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약 4개월 후에 실행시켜버린 탓이었다. 나와 친구들의 ‘나중에’ 와 ‘기회’의 뜻이 달랐기에 이뤄진 일이었다. 친구들은 단순한 예의 부사 1, 2로 사용했으나, 나는 이를 자취의 성립 조건 1, 2로 이해했다. 그러니까, 나에게 친구의 자취방 계약이 끝나는 시즌이 나중이자 기회였던 것이다. 그 기회의 시간 동안 돈도 모았다. 자취하려고. 난 진심이었는데, 친구들은 때 아닌 날벼락을 맞았다. 심지어 대학가 앞에서 자취했는데, 한 명은 다른 지역의 대학생이었다. 아무튼, 이 친구들은 내게 난감함을 표하지 않았기에 자취메이트가 되었다.


빈말도 이행하는 실행력을 경험한 친구들은 '경린이 앞에선 말을 함부로 하면 안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이 말을 전해 들은 다른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 내 친구들이 나를 빼고 공감대를 형성하는가. 몹시도 현타가 찾아왔다. 나를 아는 모든 이들은 단호하게 내게 빈말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고, 나는 나도 모르게 예의범절을 배우는데 고배를 겪은 셈이다. 옆 매장 매니저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몇 살에 빈말을 깨닫게 됐을까? 그 후, 나는 많은 반성을 했다. 친구 자취방에 놀러 가서 '나중에 우리 자취하자'라는 말에 '응. 안돼.'라고 말하거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아.'라고 말하는 건 갑분싸에 사회성 부족이다. 까먹지 않기 위해, 세 번씩 생각해야 한다. 내게 무안 주지 않으려는 자취 메이트들의 노력을 알게 된 것도 자취가 끝난 3년 후라는 게 코미디라면 코미디다.


부끄럽다. 나중에 밥 먹자라는 말에 기다리거나 연락을 하는 것도 부담스러울텐데, 같이 살자고 연락을 했으니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이불 덮고 하이킥을 몇 번 날렸는지 모른다. 심지어 그 때 우린 친하지도 않았다. 남자 선배가 나중에 밥이나 한 끼 먹자고 하는 걸, ‘나중에요.’라고 둘러 거절했는데 나중에 기숙사까지 쫓아와 ‘나랑 약속 안 잡아주길래 찾아왔다. 밥 언제 먹을래?’하고 물어서 기겁했다는 후배의 일화가 떠올라 더욱 죽고 싶었다. 진짜 극도로 혐오스럽다. 그래도 인간 생, 이십육 년 차. 안부 차 묻는 대답에 예의껏 대답하는 스킬이 일반인 수준은 된 것 같다. 언제 한번 보자는 말과 파투나는 약속에 모든 기운을 쏟아내지 않게 되었다. 여전히 빈말의 구분은 잘 모르겠고, 빈말이면서 구체적으로 구는 사람들의 머리를 깨고 싶다. 그래도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겠지. 안부를 물으면 무안을 주던 무례한 나야! 이젠 안녕이야. 끝으로 나와 함께 안부 묻고 답하기를 연습해보자.


-잘 지내셨죠? 밥은 드셨고요? 다음에 한 번 식사해요.
-네. 잘 지내고 있어요. 식사하고 오는 길이예요. 좋아요. 기회 될 때 맛있는 거 먹어요.
-다음에 봐요. 꼭 연락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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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 일화를 들은 내 친구는 저 사람이 무례하다고 말을 해주며 속상해 말라고 했다. 난 그 말에 속상하지 않았으며, 내 주변 사람들은 내게 너무 관대하고 예의 발랐기 때문에 이 사실을 이 나이 먹고 알게 되지 않았냐고 친구에게 손가락질했다. 그렇잖아. 내 이야기의 포커스는 옆 매장 매니저의 무례함이 아닌 나의 예의 지식 부족이라고. 너흰 너무 착해. 이렇게 적고 나니, 예의범절지식을 채워도 나는 무례한 사람으로 살아갈 듯 하다.










웹진 <취향껏>에서 선 발행된 원고입니다.

https://chwihyangkkeot.imweb.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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