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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요 Apr 22. 2021

'더' 기다리면 유료가 되는 작품, 지금은 무료.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_ 이슬아x남궁인




©이슬아 인스타그램

주간 문학동네에서 연재된 이슬아와 남궁인의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가 다음 주에 끝이 난다. 무료일 때 몇 번이고 더 읽어봐야한다는 마음과 유료(단행본)로 빨리 내게 다가왔으면 하는 마음이 대립하며 나는 시간이 흐르길 혹은, 흐리지 않길 바라고 있다.   


주간 문학동네라는 플랫폼과 서간 에세이 형식은 어쩐지 신박하면서도, 아주 살갑게 다가왔고 그들과의 내적 친밀감을 그득히 쌓으면서 완결이 아주 아쉬워졌다. (물론 이는, 동일 플랫폼에서 연재된 이랑과 슬릭의 『괄호(과:로)가 많은 편지』도 마찬가지였다.)


이 신박하면서도 낯설지 않은 문학, 그 정체는 무엇일까?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그 이유들을 차곡히 정리해보았다. 




코로나 시대에 ‘연결’은 중요한 키워드이다. 카뮈의 『페스트』에서도 나오듯, 페스트는 단순한 역병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고립과 끝없는 패배를 선사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 사람들은 동시대성을 느낄 수 있는 콘텐츠에 대한 니즈가 커졌고, 클럽 하우스와 같은 SNS가 인기를 끌고 있다. 문학 작품도 마찬가지인데, 그중에서도 서간 형식의 에세이는 그 욕망에 부합한다.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이하 우.사.오)는 코로나 시대의 응급실 의사인 남궁인과 인터뷰 경험이 많은 이슬아의 조합으로 쓰인 그야말로 '대단히 유효한 공격'이다. 그들은 수신인이자 발신인으로 편지를 주고받지만, 그 편지는 독자에게 건네지는 안부 인사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글을 읽는 동안 우리는 연결된다. 파주의 이슬아와 응급실의 남궁인과 그리고 내가 함께 있음을 느낀다. 독자는 다시금 편지의 답을 받기 위해, 또 답을 하기 위해 이 느슨한 연결을 찾는다. 새해에는 새해의 안부를 물으면서, 서로의 심신 상태를 공유하면서. 




삼백 원 정도의 길이와 육만 칠천 어치의 노출


우.사.오는 문학동네가 만든 웹진 <주간 문학동네>에서 매주 수요일에 게재되는 연재물이다. 길이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정도이다. 쉬는 시간을 할애해 볼 수 있는 길이로, 한 편에 300원에서 500원 정도를 지불할 수 있을 수준이다. 더 객관적으로 설명하자면, 핸드폰으로 캡처해서 인스타에 게시글로 10장을 채워 올리면 본문이 거의 다 올라가는 정도이다. 이슬아와 남궁인의 인스타에는 그들의 연재작이 캡처되어 올라오고, 팔로워들은 반응한다. 그렇다. 우.사.오의 인기 이유 중 하나는 소통이다. 그들은 SNS 스타로, 이슬아의 팔로워 수는 대략 6만2천, 남궁인의 팔로워 수는 대략 5천. 둘이 합하면, 육만 칠천 어치의 노출이 인스타 내에서 이뤄진다. 더불어, 문학동네 인스타에서도 가끔 홍보가 되니, 대형 출판사와 스타 작가의 콜라보는 웹진의 흥행에서도 빛을 발휘했다. 작품 자체는 현재보다는 출간 이후가 더욱 빛을 발할 텐데,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가 그 예다. 


기다리면 무료, 더 기다리면 유료

이 분야는 장르 문학과는 다르게 인터넷 연재에 관해서는 이상하리만큼 관심이 적은데, 이에 관해서는 포털 사이트의 한 카테고리에서 연재되어 편의성이 멀고 이벤트성으로 도입부만 공개하는 식이 대다수였기 때문으로 예상된다. 그와 다르게 <주간 문학동네>의 경우, 군더더기 없는 UI로 꾸며진 플랫폼 내에서 딱 작품만 볼 수 있게 되어있으며, 짧으면 3개월 길면 6개월의 연재로 완결이 나는 식이다. 완결이 나면 플랫폼에서는 글이 내려간다. 그러니 유입된 독자가 중도하차를 하는 게 아니라면, 꾸준히 들어와서 보게 되는 셈이다. 완결이 난 후에는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고, 출간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몇 명만이 읽어줄 글을 써온 자들의 펜팔이 매대에 놓인다면

21년의 독자들은 콘텐츠 소비에 돈이 드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무료 연재를 열독하던 독자는 단행본을 기다린다. 남궁인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단 몇 명만 읽어줄 글을 써왔다.’ 모두가 연재노동자가 될 수 있는 현재, 좋은 글이 지면이 부족해 독자들에게 다가서기 어려운 현실을 떠올리며 <주간 문학동네>의 트래픽 양을 조금이나 높여본다. 

박막례 이후의 노년층 유투버가 늘어나고 있는 것처럼, <주간 문학동네>에서의 이슬아 x 남궁인의 조합은 또다른 조합과 또다른 글을 생산해낼 것이다. 거대 출판사가 만들어낸 웹진의 승리는 또 다른 웹진을 만들고, 거기서 책을 만들어낼 테니까.

문학을 사랑하는 자로서 그들의 펜팔이 서점 매대 위에서 올라오길, 그리고 내가 그 편지를 소유하길. 아직 읽히지 않은 매력적인 글들이 읽힐 공간이 더 많아지길 소망하며 글을 마친다. 





©주간 문학동네

문학 시장의 규모는 작아지지만, 그 다양성은 커져만 가는 가운데, 이런 주간 문학동네의 등장은 규모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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