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스턴 처칠과 우리집 강아지
Age is cruel!” — 넷플릭스 <더 크라운>의 대사
윈스턴 처칠은 80번째 생일에 거대한 초상화를 선물로 받는다. 처칠은 그 초상화를 싫어했다. 초상화 속에 기세등등한 영국 수상이 아닌, 늙수그레하고 구부정한 노인이 있었기 때문에. 추후 그 초상화는 아내 클레멘타인이 불태웠다고 알려져있다.
처칠은 초상화를 그린 화가 그레이엄 서덜랜드에게 따진다. 당대 잘나가던 화가라고 한다. 지나치게 정확하고 사실적이라 되려 진실을 보여주지 못하는 그림이라며, 잔인하다고 따진다. 시퍼렇게 젊은 화가 서덜랜드는 눈을 시퍼렇게 뜨고 팩트를 갈긴다.
Age is Cruel!
(나이 먹는다는 게 잔인한 겁니다!)
이 시리즈는 처칠의 업적을 기록하기도, 시대착오적 꼰대로 그리기도 하는데, 그의 사임에 가까워질수록 인간적 고뇌를 조명한다. 그림을 너무 사실적으로 그렸다고 삐친 처칠 할배에게 내가 감정이입을 한 까닭은 우리 집에 나이듦의 잔인성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존재가 살기 때문이다.
내게 나이듦은 잔인하기보다 아직 즐겁다. 육체보다 정신이 익어가는 시기니까. 불안은 여전하지만, 불안이 더는 불투명하지 않다. 내게 단 하나의 불투명함은 계피다. 계피의 내일. 계피의 다음주. 계피의 다음달. 계피의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 계피의 내년, 내후년… 그리고 언젠가 닥칠 마지막. 그래서 내게 나이듦은 즐거운 동시에 잔인하다.
느리지만 계피의 치매가 점차 더 진행되고 있다. 자주, 오래 멍해진다. 그 모습마저 귀여운 탓에 내 마음은 처참히 무너진다. 저 투명한 두 눈망울에 나이듦이 잔인하게 맺혀있다. 계피만큼 늙어본 적 없어서, 흰머리 가득해본 적 없어서, 혼자만 까맣고 푸릇한 나는 미안해진다. 내 삶이 7배 빨라져 계피의 종점에 우리가 함께 닿는 상상을 한다. 그렇다해도 단 한점 아쉬움도 없다.
…하지만 치토가 붙잡는다.
“엄마! 어디가! 나 마저 키우고 가야지!”
탄이와 벼리도, 뒷마당 고양이들도 붙잡는다.
“이모! 어디가! 밥은 마저 주고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