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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희정 Jan 27. 2022

딸에게 물려주는 엄마의 독서 리스트

나를 키운 책이 너를 위로해주길

작업실에는 500권 정도가 들어가는 안정적이고 단정한 나무 책장이 있었다. 집에는 모험하듯 사들인 온갖 정체불명의 책들이 난무했지만 작업실 책장의 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만 엄선해서 골라 둔 것이었다. 600권이 되면 다시 신중하게 우선순위를 정해서 분류하고 정리해 500권으로 추렸다. 


그 책장에 있는 책은 모두 나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설사 내가 실종 되어도 이 책장을 보면 어떤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여길 만큼. 


언젠가 하나도 이곳에서 내키는 대로 아무 책이나 꺼내 읽으며 지금의 나를 생각해 주길 바랐다. 그 책들이 나 대신 아이에게 얘기해주길. 그 이야기가 아이의 마음을 도닥여주길.  




언젠가 하나가 지금 내 나이가 되어 사는 게 지치고 모두 다 싫어질 때, 내 작업실로 도망치듯 놀러 오는 꿈을 꾸었다. 그건 정말이지 내가 간절히 바라던 일이었다. 누구에게나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을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작업실이 나만의 휴식처이자 피난처였던 것처럼 먼 훗날 내 딸아이에게도 그런 곳이 필요할 것이다. 하나에게 아이가 없거나 글을 쓰는 일을 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휴식과 위로에 책만큼 좋은 것이 있을 리 없으니 하나가 필요하다면 그 공간은 평생도록 아이를 위해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공간을 유지하는 데는 비용이 든다.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큰돈이. 2년을 지킨 내 작업실은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었고 이제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정리되지 않는 책 더미와 함께 살고 있다. 


지금까지 딱히 책을 읽은 후에 감상을 남긴다던가 좋았던 부분을 필사하는 등의 독후 활동을 해 본 적이 없다. 책은 손에 없으면 불안할 정도로 좋아했지만 책을 읽은 후 마음에 남은 것들을 굳이 옮겨 적는 것이 귀찮고 번거롭게 느껴졌다. 그 시간에 차라리 책 한 권이라도 더 읽는 게 나았다. 그러다 작업실을 정리하면서 마음을 바뀌었다. 공간도 책도 언젠가 사라질 수 있는 것들이니까 사라지지 않는 유산을 남겨주고 싶었다.


아이를 위해 내가 읽은 책을 기록해야겠다. 딸에게 물려줄 재산이나 건물은 없지만 나의 독서 리스트는 남겨줄 수 있으니까. 나를 키운 책들이 내가 없어도 너를 키울 수 있도록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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