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디자이너들이 존경받고 대접받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5월은 태국 대학교의 졸업 시즌이다. 그리고 각 대학의 디자인과에서는 졸업 전시를 곳곳에서 진행하고 있다. 2주 전 방콕의 씨나카린위롯 대학교의 커뮤니케이션 디자인학과의 졸업 전시회에 다녀왔다. 장소는 원 방콕(ONE Bangkok) 1층의 오픈된 공간이었고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글로 남겨보려고 한다.
이제 거의 20년이 다 되어 나는 꼬꼬마 시절의 대학 생활. 시각디자인학과였고 그 안에서 세부적으로 광고디자인, 편집디자인, 브랜드디자인, 영상디자인 등 흥미로운 과목들이 많았다. 가장 어렵고 재밌었던 과목은 타이포그래피였고 광고디자인과 브랜드디자인은 4년 내내 관심이 많아서 진로를 설정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브랜드디자인은 결국 브랜드 디자이너의 세계로 이끌어 주었고, 광고디자인은 대학원 전공을 결정하는데 영향을 주어 홍대 광고홍보대학원을 선택하게 되었다.
4학년이 되었고 졸전을 하기 6개월 전, 졸전 방향을 브랜드디자인 과목의 CI 리뉴얼 프로젝트로 정했다. 주제는 '서울 스퀘어(SEOUL SQUARE)' CI 리뉴얼. 훗날 이 건물 20층 LG 전자에서 디자이너로 일을 하기도 했어서 이곳이 운명인가 싶기도 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무튼 서울 스퀘어 CI를 멋지게 리뉴얼하고 싶어서 주제를 정했고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브랜드 디자이너 13년 차인 현재로서 되돌아보면 이런 디자인 작업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이를 통과시켜 준 교수님이 현업에서 많은 활동을 하시던 분이셨는데 그분의 기준에서도 이런 작업은 그동안 못 보셨을 것 같다. 어쨌든 동심을 파괴시키지 않아 주신 그분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스승의 날이네!
다시 태국 대학교 디자인과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해보자. 그동안 매해마다 태국 디자인과 졸전을 많이 찾아갔었다. 내가 디자인과 강사로 활동 중인 쭐라롱껀 대학교의 컴디과는 매해 참여도 했어서 이 친구들이 얼마나 열정을 갖고 또 잘하는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다 올해 씨나카린위롯 대학교 컴디과 친구들이 열정을 갖고 졸전을 준비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찾아갔는데 '와 정말 잘했다'라는 말 밖에 나오질 않았다. 예전의 시각디자인과 영상디자인의 경계는 이미 무너졌고 이 친구들은 이미 멀티미디어 디자이너였다. 태국 문화, 역사, 자연 등 그 연구 분야가 다양했고 그 깊이도 굉장히 깊고 넓었다. 현업의 디자이너들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었고 오히려 더 잘한다고 느낄 정도의 친구들도 많았다.
그중에서 나는 태국의 77개 지역의 아이덴티티를 연구하고 이를 픽셀 아트로 만들어낸 한 친구의 작품에 너무나 마음이 갔다. 이런 작업을 하려면 굉장히 많은 리서치가 필요하고 디자인 과정에서도 긴 시간을 쏟아야 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친구가 너무 궁금해졌고 직접 만든 책도 구입하고 싶어 바로 연락을 했다.
그렇게 귀여운 그녀와 만나게 되었다. 친구는 책, 스티커, 포장지 등 작업과 연관된 모든 결과물을 챙겨 왔다. 하나하나 꼼꼼하게 준비했을 모습을 떠올리니 기특한 마음도 들었고 오래전 졸전을 준비하던 내 모습도 떠올랐다. 결국 그녀의 책을 친구가 제시한 금액의 두 배를 내고 구입했다. 그러고 싶었다. 충분히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 기꺼이 아낌없이 지불하고 싶었다.
이제 세상으로 첫걸음을 내딛는 후배 디자이너에게 많은 응원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디자이너로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 더불어 그녀의 스타일을 잃지 않고 오랫동안 즐겁게 디자이너로서 활동하길 간절히 바란다. 앞으로 태국의 디자이너들이 더욱더 사회에서 존경받고 대접받을 수 있기를. 그런 날이 머지않아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