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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일본, 태국의 저작권에 대한 인식과 문화의 변화

3개국의 나라에서 디자이너로서 경험한 저작권의 인식과 문화

by moontree

브랜드 디자인과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서 활동한 지 올해로 13년이 되었다. 그동안 한국을 시작으로 일본과 베트남을 거쳐 7년 전부터는 태국에 정착해 이곳에서도 디자이너로서의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여러 나라에서 일하며 디자인, 웹툰 그리고 게임 마케팅 등의 콘텐츠 관련 일들을 해오고 있다. 각기 다른 문화와 환경을 경험하는 가운데 특히 ‘저작권’에 대한 인식과 접근 방식이 나라별로 매우 다르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고 이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우선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브랜드 디자이너로서 처음 일을 시작했던 한국에서 기억을 떠올려보고 싶다. 어느덧 10년이 훌쩍 지난 이야기지만 아직도 인상 깊게 남아 있는 프로젝트가 있다. 2014년에 진행했던 ‘공공누리’ 브랜드 개발 작업이다.

‘공공누리’는 공공저작물 자유 이용 허락 표시제도로 정부와 공공기관이 보유한 저작물을 국민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이다. 당시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 공공저작물에 대한 인식은 다소 제한적이었고 이 제도 또한 낯선 개념이었다.

디자인의 컨셉과 방향은 'Open(개방)'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에 두고 이를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것이었다. 공공성과 신뢰를 담기 위해 태극마크를 활용했고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상징적인 그래픽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미지 1) 공공누리 'OPEN' 디자인 마크 출처 https://www.kogl.or.kr/index.do


rrst.jpg 이미지 2) 공공누리 'OPEN' 디자인 마크 출처 https://www.kogl.or.kr/index.do


공공누리 제도의 도입 배경에는 국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공공기관이 관리하는 방대한 양의 공공저작물을 더욱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관리 장치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이러한 시스템은 공공저작물의 품질과 정보의 정확성을 바탕으로 민간 영역에서의 적극적인 활용을 유도하고 나아가 경제적·문화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반이 되리라 기대되었다.

특히 스마트기기와 뉴미디어의 확산으로 공공저작물을 원천 소재로 삼아 콘텐츠나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는 기업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공공저작물에 대한 명확한 권리 규정과 활용 가이드는 필수적이었다. 이에 따라 기존의 불명확한 이용 절차와 저작권 권리 처리 문제를 해결하고자 ‘공공누리’가 도입되었으며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제도이다.

이 제도는 총 네 가지 유형의 마크를 통해 공공저작물의 이용 조건을 명확히 안내하며 국가와 공공기관들이 개방한 저작물 정보를 통합적으로 제공한다. 덕분에 사용자는 각 저작물에 적용된 유형을 확인한 뒤 저작권 침해의 부담 없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이 '공공누리' 마크가 출시된 지 약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여전히 한국 곳곳에서 사용하고 있다. 특히 초창기와 비교했을 때 더욱더 대중적인 브랜드가 되었고 종종 온라인에서 이 마크를 마주칠 때마다 뿌듯한 마음이 든다. 앞으로 더 많은 한국 사람이 저작권에 대한 관심을 두고 공공누리 마크를 잘 사용해 주길 바란다.



그럼, 일본은 어떠할까? 과거 일본 사회는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비교적 느슨한 편이었다. 특히 서브컬처(비주류 문화), 만화, 애니메이션 그리고 게임 등에서 팬 활동을 기반으로 한 2차 창작은 오히려 문화 확산의 동력으로 간주했고, 이에 따라 창작자와 팬 사이의 암묵적인 룰 안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글로벌 콘텐츠 산업의 성장 그리고 창작물의 상업적 가치가 높아지면서 일본 사회 전반에서도 저작권에 대한 인식과 규제는 점차 엄격해졌다. 이 변화는 법적 구조의 변화뿐 아니라 문화적 태도와 창작 생태계의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해외에서 무단 복제된 일본 콘텐츠가 상업적 수익을 창출하는 사례가 늘어나자, 일본 정부와 기업은 저작권 보호 강화에 나섰다. 대표적으로 2020년 개정된 저작권법에서는 불법 업로드된 콘텐츠의 다운로드까지도 처벌 대상으로 포함했고 만화 스캔본 공유 사이트에 대한 단속도 강화되었다.

일본 디자인진흥회(Japan Institute of Design Promotion)가 주관하는 굿디자인 어워드에서도 저작권 문제를 고려한 디자인 윤리 항목이 평가 기준으로 포함되어 디자이너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이는 과거 기술적 창의성만으로 평가되던 디자인이 이제는 법적, 윤리적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함을 보여주는 변화의 사례이다.

최근에는 일본 내에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reative Commons, CC)’ 같은 대안적 저작권 모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는 저작권의 부분적 공유를 목적으로 2001년에 설립된 비영리 단체로 대표적인 프로젝트에는 위키백과가 있다.

이미지 3)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reative Commons, CC)’ 마크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


이는 디자이너나 아티스트들이 일부 권리를 공개함으로써 새로운 창작의 가능성을 열고 협업의 장을 확장해 나가려는 시도다. 이와 같이 과거의 폐쇄적 보호 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나 보다 개방적이고 공존하는 창작 생태계로 나아가려는 일본 사회의 문화적 진화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현재 살고 있는 태국에서는 저작권이 어떻게 다뤄지고 있을까? 태국은 문화적으로도 디자인적으로도 매우 풍부한 콘텐츠를 가진 나라다. 그러나 이에 비해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나 보호 제도는 아직까지도 실질적인 효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태국은 1994년에 <저작권법(Copyright Act B.E. 2537)>을 제정한 이후 여러 차례 개정을 거치며 디지털 환경에 맞는 저작권 보호 장치를 마련해 왔다. 특히 2015년과 2022년의 개정에서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저작물의 무단 이용에 대응하기 위한 조항들이 강화되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태국 역시 국제 기준에 맞는 저작권 보호 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태국은 WIPO(세계지식재산권기구)와도 협약을 맺고 있으며 여러 국제조약에 가입해 있는 국가다.


하지만 태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며 실생활 속에서 체감하는 저작권에 대한 인식은 그 제도적 장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디자이너로 일하며 많이 겪는 상황 중 하나는 클라이언트나 파트너가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특히 폰트(Font)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낮은데 종종 '온라인에 있는 아무 폰트나 무료로 사용해도 괜찮지 않나?'라는 식으로 언급이 된다. 이런 상황이 오면 늘 폰트 라이선스는 이에 합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사용해야 한다고 설명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한다.

그뿐만 아니라 온라인 상점이나 인쇄소에서도 해외 캐릭터나 유명 브랜드의 이미지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일이 굉장히 흔하다. 라이선스 없이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이용한 카피(Copy) 상품들이 곳곳에서 판매되고 있고 이러한 행위가 저작권 침해라는 인식조차 없는 경우도 대부분이다. 이런 점에서 태국은 아직도 저작권을 ‘법적 권리’보다는 ‘관습적인 자유 이용’에 가깝게 여기는 문화라고 느껴진다.


최근 긍정적인 변화도 감지되고 있다. SNS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크리에이터들 사이에서는 저작권이나 크레딧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데 특히 젊은 세대는 오히려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기도 한다. 디지털 아트, 게임, 웹툰, 애니메이션 분야에서는 2차 창작과 상업적 이용에 대한 논의가 점점 활발해지고 있다. 이는 태국 사회에서도 저작권이 단순한 법률의 문제가 아니라 창작자와 사용자 간의 윤리적 합의라는 인식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공공 부문에서도 창작자에게 라이선스를 제공하거나 일정 조건으로 공공저작물을 개방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이는 과거 한국에서 ‘공공누리’를 처음 마주했을 때 느꼈던 문제의식과도 연결이 된다. 저작권은 창작자만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창작물을 보다 널리 유통하고 활용하기 위한 제도이기도 하다.


태국은 여전히 저작권 인식에서 여러 과제가 남아 있는 국가지만 동시에 변화의 가능성이 많은 나라라고 생각한다. 빠른 디지털 환경의 변화 속에서 더 많은 창작자가 저작권을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기를 고대 해본다.



정보 자료 참조

공공누리

https://www.kogl.or.kr/index.do

크리레이티브 커먼즈

https://ko.wikipedia.org/wiki/%ED%81%AC%EB%A6%AC%EC%97%90%EC%9D%B4%ED%8B%B0%EB%B8%8C_%EC%BB%A4%EB%A8%BC%EC%A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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