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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늘보 Apr 20. 2021

내 언젠가 반드시 외치리라. "왜 육아만 갖고 그래?"


 SNS에서 한 댓글을 봤다. 갑작스러운 임신으로 자기만의 색을 잃었던 주부가 좋아하는 글쓰기 활동을 하며 삶을 재해석하고 있다는 내용의 피드였다. 댓글의 내용은 이랬다.


“육아에 대한 글이 지루한 건 인풋이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억지로 글을 쓴다고 봐줄 만한 글이 될까”


순간 뜨끔했다. 아무 적의가 없는 글자의 조합이었는데도 종이에 손가락이 베인 것처럼 쓰라렸다. 육아하며 글쓰기를 시작한 사람으로서 당연한 반응이기도 했다.


‘아, 일반 사람들은 육아에 대한 글을 보면 이렇게 느끼는구나!’ 하는 씁쓸함이던 첫 마음은 ‘육아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다 이런 건가? 우리는 아무런 인풋도 없는, 사회 구성원으로선 성장이 끝난 사회적 뇌사 상태에 빠진 걸까?’ 하는 열등감으로 이어졌다.


하루를 그렇게 울적하게 보내고 다음 날 아침. 아이 밥을 먹이고 뒤늦게 냉수 한 잔 마신 후 양치를 하던 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육아 글이 뭐 어쨌다고 그래? 재테크 글은 안 뻔하고 안 지루한가? 여행은? 직장생활 글은? 연애 글은 죄다 고만고만한 사랑 타령 아냐? 뭐 꼭 화성에 가서 감자 심는 정도의 인풋이 있어야만 아웃풋을 내도 된다는 거야 뭐야?’


치약의 화끈한 청량감 덕분인가. 어제까지 느꼈던 자기 연민과 맨틀까지 뚫고 들어갈 기세로 침체하던 정신이 조금은 또릿해졌다.


그저 평범한 댓글러가 가볍게 쓴 두 문장을 갖고 지나치게 과한 상념에 빠진 건 바로 내 의식의 저편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출근길 카페에서 신문을 정독하고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으며 하루를 시작했는데, 출산 예정일을 일주일 앞두고 신문 구독을 중단했다. 종목별 분석 자료를 보며 투자하던 주식도 이제는 그냥 파라면 짜증 나고 빨가면 기분 좋은 오늘의 운세가 된 지 오래다. 틈만 나면 함께 핫플을 찾아 쏘다니던 친구들과의 카톡도 줄고 SNS로 일상을 파악하는 게 더 익숙해져 버렸다. 댓글러의 말처럼 인풋이 줄은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인풋이 줄었다고 해서 엄마가 된 내가 세상에 내놓는 아웃풋마저도 생명력을 잃은 걸까. 오히려 나는 육아를 하면서 더 많은 생각을 하고 또 다른 영역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여태껏 살면서 불편하다고 느낀 것이 전혀 없었는데, 아이 엄마가 되고 나니 당장 가게의 여닫이문 조차 유모차를 끌고는 열 재간이 없어 불편함을 느낀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살기 편안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까?’와 같은 생각은 출산하기 전에는 미처 고민해보지 못한 영역이다. 나의 안위와 성취를 위한 아웃풋을 내던 지난날과 달리  아이와  아이가 살아갈 사회를 위한 아웃풋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시대를 사는 엄마들에 대한 고민도 함께한다. 놀이터에서 마주친 아이 엄마의 표정을 읽어보고, TV 드라마 속 여자들의 삶을 보며 이 시대가 모성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곱씹어 본다. 이런 세대에 대한 고찰은 엄마가 되기 전에는 해본 적 없는 작업이다.


우리 사회는 모성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면서 모성을 실천하는 사람에 대한 폄하적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칭송받는 동시에 가장 배제되는 존재를 꼽으라면 바로 '엄마'이지 않을까. 바로 이 지점에서 엄마가 된 우리의 혼란이 시작된다. 나는 30년간 생산성을 갖춘 인간이 되기 위해 살았다. 동시에 내 몸은 나도 모르게 엄마가 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평생 내게 주입된 인풋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존재가 되기 위한 것이었으니 엄마로서의 인풋이 당혹스럽고 하찮아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당장 지난달 까진 미·중 갈등과 국채금리에 대한 이슈를 살피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여닫이문 앞에선 어떻게 유모차를 여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를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까지 해보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럼에도 엄마가 된 이상 내 작업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남이 보기엔 ‘미닫이든 여닫이든 문은 열리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하며 우습게 여기고, ‘집에서 배부르고 등 따시니까 고작 문 여는 거로 떠들고 앉았네!’ 하며 조롱할지라도 지금 내게는 여닫이문을 어떻게 여는지 고민하는 것이 세상 제일 심각한 인풋이다. 아직은 비록 나만의 뇌피셜이지만, 당돌한 다짐을 한다. 내 언젠간 반드시 세상이 깜짝 놀랄 정도로 기가 차고 코가 막히게 유모차를 끌고 문을 여는 아웃풋을 내서 댓글러에게 꼭 이 한마디를 남기리라.


“도대체 왜 육아만 갖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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