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형상이란 무엇인가?

창세기 1장 26-27절의 "하나님의 형상" 분석

by 이마윤

하나님의 형상 (창 1: 26-27)

1) 전통적인 이해와 그 한계 : 영적인 실체


하나님의 형상이란 무엇일까요?

전통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은 육체와 구분되지만 실체가 있는 „영적인 무엇“으로 여겨졌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인간도 육체를 넘어선 영적인 존재이기에 이러한 이해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연결고리를 설명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영적 실체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 또한 막연히 인간 속에 내재된 신비롭고 비밀스러운 것 정도로 상상할 뿐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고, 때문에 그것이 나타내는 의미도 제한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라는 사실의 온전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선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막연한 상상이 아니라, 정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어지는 글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구해 보려 합니다.



2) 형상이 가리키는 특별한 대상이 있을 것이란 전제


인간창조에는 „형상“이라는 단어만 사용된 것이 아닙니다. „모양“이라는 단어도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 창세기 1장 26절


만약 „형상“이 영적 실체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모양“은 겉모습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특정한 모양을 갖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형상과 모양은 각각 무엇을 가리키는 말일까요?

각각 가리키는 구분 되는 대상이 있긴 한 걸까요?

우리는 성경이 형상과 모양, 이 두 단어를 명확히 구분하여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 창세기 5장 1절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 창세기 9장 6절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두 단어가 혼용되어 사용되었습니다.

<형상이 가리키는 무엇인가, 모양이 가리키는 무엇인가>가 특별히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하나님의 형상“을 이해하기 위해 „형상“이 가리키는 대상이 무엇인지 규명하려 했습니다.

본문은 말하고 있지 않은 „영적인 무엇"으로 말이죠.

이러한 시도가 하나님의 이해를 어렵게 만든 것은 아닐까요?

„형상“이 어떤 대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이해하기 위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3) 성경은 때때로 단순하게 생각해야 해 : 하나님을 대신하는 존재


성경을 읽을 때, 단어 하나하나에 너무 깊은 의미를 부여하다 보면,

오히려 이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 26-27장의 하나님의 형상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이 „형상“이라는 단어를 어렵게 생각해선 안 됩니다.


형상이 가리키는 특별한 대상을 규명하듯, 영적인 실체나,

신비로운 속성 등으로 해석하려 하지 말고 단어의 의미, 그대로를 단순하게 받아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마음 속으로 강아지나 고양이의 „형상“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 형상을 따라 조형물이나 인형을 만든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형상은 실제 강아지나 고양이를 대신합니다.

강아지와 고양이를 꼭 닮았고, 때때로 실제 강아지와 고양이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보이는 실체만 형상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엔 마음 속으로 „사랑“에 대한 형상을 상상해 보십시오.

누구나 마음 속에 „하트“모양을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트 모양은 보이지 않는 사랑을 보여주고, 그 역할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형상“이란 단어 그 자체의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인간은 하나님을 꼭 닮은 존재이며, 하나님의 역할을 할 수도 있는 존재,

즉 이 땅에서 하나님을 대신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자신을 대신하여 누군가를 보낸다면, 어떤 사람을 보내시겠습니까?

하나님께 우리는 바로 그런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서로서로가 얼마나 소중하고 존귀한 사람인지를 깨닫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사람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축복하는 것은 하나님의 존귀하심을 찬양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4) 세상 질서에 대한 완벽한 도전


우리는 „형상“이라는 단어를 „영적 실체“를 가리키는 특별한 단어로서가 아니라 일반적인 의미로 해석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이해해 보았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형상“은 성경에만 사용된 특별한 단어가 아니라, 고대 사회에 통용되던 일반적인 단어였습니다.

바로 이집트의 파라오나 고대제국의 황제가 스스로를 높여 부를 때 쓰는 말이었죠.

왕들이 스스로를 신의 아들이라고 칭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당시 왕들은 신의 화신, 곧 보이지 않는 신을 대신하는 존재였죠. 왜 이런 무리한 주장을 했을까요?

왕만이 신의 형상이기에 존귀하고 나머지 백성들은 그렇지 못함으로 비천하다는 것이죠.

백성을 억압하고 지배하는 근거로 사용한 것입니다.


창세기는 이렇게 왕만이 존귀하고,

나머지 백성들은 비천한 취급을 받고 있던 시대에 정면으로 맞서 도전한 것입니다.

왕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고 말이죠.

왕이나 귀족이나 여성이나 노예나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으니,

모든 인간은 한 사람도 소외 당함 없이 소중하고 존귀하다는,

당시로서는 상상 할 수 조차 없는 놀라운 선언인 것입니다.


우리는 창세기의 온 우주에 대한 이야기가 „모든 인간은 다 똑같이 존귀하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존귀한지“를 말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창세기는 한 사람이 하나의 우주라는 말을 가장 잘 나타낸 최고의 작품입니다.

고작 100년 전까지도 우리 인간은 인간이 모두 평등하고 존엄하다고 상상조차 못 했습니다.

그런데 100년 전 작성된 문서도 아닌, 멀게는 그 고대에 기록된 문서에서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이렇게 아름답고, 완벽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성경이 인간의 상상이 아닌,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드러냅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 시 ‘방문객’ 중에서



5) 하나님의 형상을 완벽히 이룬 사람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맞게, 이 땅의 모든 역사 안에서 하나님을 닮은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낸 사람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모습과 역할을 가장 완벽히 이루어 낸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장 2-3절)


위 본문은 누구를 가리키고 있습니까?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가장 완벽한 하나님의 형상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신 동시에, 참 된 인간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야 말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참 된 인간이 될 수 있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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