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존엄성 : 아담 (창세기 1장 26-31절)
창조 이야기의 주제 : 인간의 존엄성(창 1 :26-31)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는 온 우주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 온 우주의 이야기는 단 하나의 주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주제는 „이 땅의 한 사람, 한 사람, 모든 인간이 얼마나 존귀한가?“ 입니다.
1) 창조의 순서가 구조적으로 조화로운데다, 인간의 창조가 가장 마지막입니다.
전통적으로 조화로움은 아름다움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아름답게 창조하신 세상에서 인간이 가장 마지막 순서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가장 아름다운 선물을 준비 해주셨다는 의미 아닐까요? 인간은 이렇게 아름다운 선물을 받을 만큼 존귀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2) 다른 고대근동신화의 창조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비틀었습니다.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가 고대근동신화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는 우리의 신앙을 시험하곤 합니다. 이 사실이 창세기를 의심하게 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창세기의 위대함을 드러냅니다.
창세기 기자는 의도적으로 고대근동신화와 비슷하게 기록했습니다. 그 목적은 비교 되게 하기 위함이 였습니다. 비슷하게 시작하는 이 두 이야기는 점점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어느 지점에서 가장 크게 비교가 될까요? 바로 인간에 대한 이해입니다.
고대근동신화에서 인간은 반란군의 더러운 피로 만들어진, 신들의 노예였습니다. 하지만 창세기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귀한 존재입니다. 이 완전히 다른 주제의 두 이야기는 비슷하게 시작함으로 오히려 비교가 되고, 그로 인해 창세기의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주제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3)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 심사숙고 화법(창1:26)
창세기 1장 26-27절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왜 하나님 당신을 „우리“라고 칭하셨는지에 대해선 여러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심사숙고 화법“입니다. 이는 고대의 화법 중 하나로, 왕이 혼자 결정한 사안을 기록할 때 그 결정의 주체를 자신 혼자가 아닌 복수, 즉 „우리“라고 하여 그 결정의 무게감을 더하는 것입니다. 혼자 결정하는 것보다 회의를 열어 함께 결정하는 쪽이 더 무거운 의미를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 외에 다른 것을 창조하실 때 사용하신 언어는 „있어라“ „내라“ 입니다. „빛이 있어라“ „열매를 내라“ 이렇게 말이죠. 하지만 인간을 창조하실 때만은, „우리“라는 복수형 주어로 말미암아 „만들자“라는 다소 간접적인 화법이 사용됩니다. 이는 인간의 창조는 하나님께서 쉽게 결정하신 사안이 아닌, 심사숙고하여 결정하신 것으로, 그만큼 인간은 중요하고 존귀한 존재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4)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 되었습니다.(창1:26-27)
창세기에서 인간이 존귀한 존재라는 주장의 절정은 바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함께 공유하는 부분이 있다는 뜻입니다. 인간에게 하나님의 어떠한 것이 있다는 사실보다 더 인간을 존귀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있을까요? 이는 인간 존엄성의 가장 확실한 근거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