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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 Jul 19. 2017

준비하지 않은 여행의 기록 - 프롤로그

여행은 좋아하지만, 여행 준비는 싫다.

여행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곳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중학생 때는 짐바브웨에 인플레이션이 너무 심해 양팔 가득 한아름 돈을 들고 가야 햄버거를 겨우 사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친구랑 통장을 만들어 남은 용돈을 모으며 꼭 짐바브웨에 같이 가자고 했다. 어쩌면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곳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것에 한 번 마음이 팔려버리면 그곳에 꼭 가고 싶어 지는 금사빠 성향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숲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소파 사진을 보고 노르웨이 트론헤임으로 여행을 갔던 적이 있고, Apartamento매거진에 실린 Cesar Manrique의 안과 밖의 구분이 없던 집을 보고, 란사로테 섬에 한동안 빠져있다가 출발 이틀 전에 비행기 티켓만 달랑 사들고 여행을 갔던 적이 있다.


그렇게 그 도시나 나라에 대한 환상이 생겨서 티켓을 사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재미가 없다. 어디에서 지내야 하는지, 어디를 갈지, 뭐가 유명한지 등등 여행 준비를 시작하면 금세 지루해져서, 미루고 미루다 이젠 안 되겠다 싶을 때 숙소만 예약하고 출발 전날 밤까지 까맣게 잊고 산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심지어는 사진 한 장 찾아보지도 않고 가는 여행지에는 늘 생각지 못했던 즐거움이 있다. 열린 마음으로, 느낌 가는 대로 느긋하게 걸으며 온전히 나만의 여행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이번 페로제도로 훌쩍 떠나온 여행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문득 이 준비하지 않은 여행을 기록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잘것없는 이 여행기가, 누군가에게 준비 없이 훌쩍 여행을 떠날 용기를 조금이나마 줄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해본다.





Lanzarote섬에 가고싶게 만든 Apartamento의 그 기사

1. Lanzarote섬에 위치한 Cesar Manrique의 집

2. 노르웨이 트론헤임 숲, 나를 오게 만든 그 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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