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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 Jul 28. 2017

페로제도에서의 일주일
02. 첫째 날

Gásadalur 폭포를 보러 가는 길, 강한 정신 기르기

무지, 거긴 춥고 비 오고 바람 불고 안개도 많이 껴있을 거야.
그래도 후회하지 않겠어?

페로제도의 아름다운 사진들을 보며 환상에 젖어있는 나를 보며 친구가 나에게 한 말이다. 그제야 날씨를 찾아보니, 가장 날씨가 좋은 7월에도 한 달중 평균 21일 비가 오고, 최저기온이 9도, 최고기온이 13도라고 한다. 덴마크도 바람이 세게 부는데, 대서양 한가운데에 홀로 서있는 그 섬에는 바람이 도대체 얼마나 불까 상상하며 불안해졌다. 하지만 제일 좋은 날씨에 안 가면 언제 가겠어?라는 생각과 옷만 잘 챙겨 입으면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름휴가라는 말이 무색해지게 히트텍과 긴팔, 긴바지, 패딩 등을 잔뜩 챙겼다.


다들 날 좋은 휴양지로 휴가를 떠나는 때에 추운 곳으로 가는 우리를 놀리기라도 하듯, 출발하는 날의 코펜하겐 날씨는 정말 좋았다. 따뜻한 공기를 뒤로하고 도착해서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오래간만에 느끼는 찬 공기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날씨를 즐기러 온 게 아니라, 자연과 삶을 보러 온 거야 하며.


(좌) 솜사탕 구름이 참 예쁘던 코펜하겐의 하늘 | (우) 먹구름이 잔뜩 낀 페로제도의 하늘



세찬 비바람을 맞으며


첫날 숙소는 공항 근처로 잡았다. 구글에 Faroe Islands를 검색하면 첫 페이지에 나오는 폭포인 Gásadalur가 근처였고, 새가 많이 산다는 Mykines 섬에 가는 배가 그 동네에서 출발하기에, 공항에서 걸어서 30분 정도인 Sørvágur 에 머물기로 했다.


첫날 숙소가 되어줄 캠핑카에 짐을 풀고 낮잠을 잔 후, 단단히 채비를 하고 왕복 20킬로를 걸어서 Gásadalur 에 다녀오자! 하고 호기롭게 출발했는데, 몰아치는 비바람에 출발 10분 만에 1킬로도 채 못 가 그냥 돌아가야 하나 고민했다. 보통 같으면 돌아갔을 텐데, 일주일 내내 매일 이렇게 몰아칠 수도 있는 비바람에 이렇게 쉽게 굴복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해 낸 방법은, 어차피 거기까지 가는 길이 하나뿐이니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자는 거였다. 처음에는 부끄러워서 아주 큰 미소와 작은 손짓을 보냈더니, 아무도 멈춰주지 않았다. 상처받았지만 지나가면서 보면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친구와 합심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열심히 손을 흔들어댔더니, 과연 지나가던 두 번째 차가 멈춰 섰다.


우리보다 며칠 전에 여행 온 그리스, 스웨덴 커플이었는데, 수도인 토스하운에서 지내다가 폭포 근처에 캠핑을 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덕분에 편하게 차를 타고 도착한 그곳은 정말 멋있었다. 난생처음 보는 자연 관경과,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산양 구경과, 웅장한 폭포를 보며 궂은 날씨를 이겨내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좌) 안개가 자욱이 껴 더 신비로웠던 Gásadalur 폭포  (우) 풀 뜯어먹느라 정신없는 양들



Gásadalur 마을 구경


폭포는 정말 멋있었지만 근처를 조금 걸어 다니고 사진을 조금 찍고, 양구경을 하고 나니 더 이상 할 게 없어 다시 입구로 나왔다. 30분 정도 지났는데, 우리를 태워다 준 커플은 대단한 산에 등산하러 가는 것 마냥 온몸을 방수 옷으로 둘러싸고 마지막으로 등산용 신발을 신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를 보자 깜짝 놀라서 벌써 다 보고 온 거냐고 물었다. 나중에 다른 곳을 가보며 안거지만, 이 곳이 거의 유일하게 등산을 하지 않아도 볼 수 있는 광경이었던 것이다. 


입구에 나무로 만든 작은 표지판이 있어 가까이 들여다보니, Gásadalur 마을에 있다는 한 카페의 광고였다. (사진에서 폭포 위쪽에 보이는 마을이 Gásadalur이다.) 온지도 얼마 안 되었고 젖어있는 옷 때문에 추웠던지라 마을 구경도 할 겸 가보자고 했다. 마을에 도착하니, 어디에도 카페가 있다는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도 작은 마을이라 전체를 둘러보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울제품을 파는 작은 가게가 있어 들어갔다가 아이슬란드에서 왔다는 주인아저씨에게서, 페로제도의 울 산업에 관한 이야기(털을 가공 해서 펠트로 만드는 공장이 60년대에 문을 닫아서, 페로제도에서 자라는 양들의 털을 잘라 폴란드로 보내고, 가공을 해서 다시 페로제도로 가져와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파는 물건들도 무척 비쌌다.)부터 시작해서 종교이야기 (아저씨는 특이하게도 거의 사라진 종교인 옛 노르딕 신화를 믿는다고 했다), 그리고 심지어는 이민자들에 관해서 근거 없는 주장까지 펼치기 시작해서 더 이상 들어줄 수 없어, 친절한 미소와 반응을 멈추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상점 바로 옆에 있던 카페에 들어가니, 실내 장식이 꽤나 근사해서 놀랐다. 이 작은 마을에 이렇게 세련된 카페가 있다니! 커피와 차를 시키고 조금 출출했던 우리는 간단하게 연어가 올라간 오픈 샌드위치를 하나 시켜 나눠먹기로 했다. 가게 안은 손님들로 북적했는데, 놀랍게도 커피와 차맛은 형편없었고 오픈 샌드위치는 작고, 맛없는 데다 비싸기까지 했다. 다들 케이크를 하나씩 먹길래, 마지막 희망을 걸어 먹어본 케이크마저 맛없었다. 찾기도 어렵고 맛도 없는데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며칠 더 있어보니 알게 된 건데, 그게 그냥 페로제도의 기준이었다. 맛없고 비싼 음식.



어두운 터널을 지나


맛이 어땠든, 카페를 나오니 옷도 하늘도 말라있었다. 날씨가 좋아지니 기분도 좋아져서 우리는 돌아가는 길은 걸어서 가자고 했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렸던 건 2킬로 정도 되는 구간이 동굴같이 생긴 거친 일 차선 터널이었다는 거다. 평소 어둠과 터널을 무서워하는지라 그곳만 차를 얻어 타고 가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또 한 번 용기를 내기로 했다.


나중에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찍은 다른 터널 사진. 페로제도의 터널은 일차선인 경우가 많고, 표면이 다듬어지지 않아 동굴같은 느낌을 준다.


조명도 몇 개 없어 어느 구간은 칠흑같이 어둡고,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기도 하고, 종종 차들이 밝은 빛을 내면서 나타나서는 요란한 소리를 내고 지나가기도 하고, 그 모든 것이 으스스해서 걸어가는 내내 무섭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친구가 갑자기 걸음을 멈춰 섰다. 물에 젖은 조약돌 위를 걸어가던 우리 발걸음 소리로 가득 차 있던 터널은 순식간에 적막함으로 뒤바뀌었다. 나는 더 무서워져서 친구한테 뭐 하는 거냐고, 제발 다시 걷자고 불안에 떨며 말했다. 


"이 조용함을 느껴봐."

불안한 마음을 잠시 접어두고 그 고요함에 귀를 기울이자 마음이 놀랍도록 차분해졌다. 그런 적막에 있던 때가 언제더라. 이 긴긴 터널에 우리 둘밖에 없었다. 크고 작은 소음으로 가득한 도시의 삶에 익숙해져 있는 나에게는, 그런 고요와 적막이 두려움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가게에서 만난 아이슬란드 아저씨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운동하지 않는 건 아주 쉽다고. 그건 몸이 아니라 정신의 문제라고 했다. 일하고 와서 피곤하지만, 아이가 있어서 시간이 없지만, 오늘은 몸상태가 별로 안 좋은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하는 것은 몸뿐만 아니라 정신을 튼튼하게 하는 거라고. 나는 작은 핑계에도 쉽게 굴복을 해버리는 편이다. 이번 여행에서 나약한 정신을 조금 더 튼튼하게 만들어야지, 다짐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자, 아름다운 풍경이 우릴 맞이했다. 처음 보는 자연환경과 건축 양식과 풍경과 가까이 내려와 있는 안개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게 느껴졌다. 차를 타고 지나갔다면 놓쳤을 작은 놀라움들을 보며, 불편함과 느림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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