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매일을 지내다 보면 자연스레 무뎌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크게만 느껴졌었던 사건들, 그때 느꼈던 내 감정, 잊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순간들
모든 것은 어제의 일이 되었고 저는 오늘의 하루를 마치 처음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해야 할 일들과 단순하지 않은 관계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잊게끔 합니다.
5년 전의 내가, 1년 전의 내가, 당장 어제의 내가 지금의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요.
무엇 하나 자신 있게 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군복무 중 "인간실격"이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군가 저의 삶을 지금까지 들여다보면서 내가 생각하는 것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까지 세세하게 나열하고 해부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으며 당황스럽고 부끄럽고 민망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나와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또 있구나 싶었습니다.
저는 왜 그렇게도 당황하고 부끄럽고 민망해했을까요.
그건 아마 남들이 몰랐으면 하는, 몰라도 된다고 생각한 저의 은밀한 부분들을 들켜버린 느낌이 들어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누구나 스스로 길들이고 통제하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영역이 있습니다.
그것을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간에 말이죠.
때로는 그 수가 너무나도 완벽해서 남들은 절대로 알 수 없을 거라 믿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완벽함이란 과연 존재할까요.
바라보는 눈빛 속에 담긴 서로를 위하는 따뜻한 마음을 믿었었습니다. 그리고 그 눈빛 하나로 오랜 시간을 버텨왔었습니다. 기억은 시간에 흐름에 의해 왜곡되고 변형되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그 눈빛의 의미는 지금 저의 감상과 일치할까요. 아니면 그것마저도 착각이고 만들어진 허상일까요.
반복되는 매일 중에 어떤 날에는 이런저런 생각을 해봅니다. 많은 경우에 바람처럼 사라지지만 어떤 날에는 마음속에 담아두고 글로 표현해 봅니다. 글로 표현하는 행위에는 행위를 넘는 그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