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기획에 있어 쉽게 저지르게 되는 실수들
회사를 오래 다니다 보니 나도 '기업교육의 소비자' 즉 교육생으로서의 경력도 꽤나 쌓였다. 내가 배우고 싶었던 스킬을 쌓기 위해 자발적으로 교육을 신청해보기도 하고, 회사의 목적에 따라 '필수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교육에 선발당하기도 해 보았다. 원하는 교육을 신청할 때는 그게 일종의 혜택처럼 비쳐서 기존 업무 일정과의 조율도 해야 하고 부서 분위기도 살펴야 하고 챙겨야 할 것이 많지만, 필수교육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강제 입과 되기 때문에 해가 갈수록 후자의 경우가 좀 더 늘어나는 것 같다.
아무튼 내가 수강했던 (오프라인) 교육들은 외부강사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기업이 강사(내용전문가)를 외부에서 소싱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 번째 이유는 큰 기업이던 작은 기업이던 '교육 전담 부서'라는 게 존재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큰 기업에는 교육기획 및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상시 조직이 있지만 사업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케이스를 제외하고 이 기능은 점점 lean 해져만 가는 것 같다. 당연히 콘텐츠를 만들고 딜리버리 하는 역할은 외주를 맡기게 된다. 또 작은 기업은 작은 기업대로 교육을 개발할 인력과 리소스가 없으니 외부강사를 소싱하여 필요한 교육을 시행한다. 외부강사를 소싱하는 두 번째 이유는, 애초에 교육을 하는 이유가 사내에 없는 지식을 임직원들에게 가르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사내에 전문가가 없으니 외부에서 해당 분야에 대한 업무 혹은 강의 경력이 있는 강사를 기용해서 교육을 진행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이미 시장에 기업으로 타깃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 기업 학습자에 최적화된 기민한 강사들이 포진하고 있으니 기업 입장에서 이러한 서비스를 활용하여 교육 니즈를 해결하는 것은 매우 합리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애써 외부 전문가를 기용해서 교육을 진행했음에도 교육이 개개인들에게 변화의 단초가 아닌 그냥 '이벤트'로 끝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의 경험을 토대로 몇 가지 이유를 정리해볼까 한다.
'수강생 평점'이라는 것은 교육담당자 입장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지표이다. 회사 돈을 썼는데 학습자 반응(Trainee Satisfaction)에 민감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여기서 기억해야 할 점은 교육의 목적이 역량 향상을 통해 임직원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함이지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분 참 강의 잘하신다'라는 평가에 의존해서 고용을 결정한다면 포장지는 화려하지만 알맹이는 빈약한 실속 없는 소비를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임직원들은 교육받는 주제에 대해서는 '왕초보'이기 때문에 그 교육의 퀄리티를 판단할 능력이 없거나 부족하다. 그냥 언변이 수려하고 쉬는 시간을 적절히 제공하고 지루하지 않게 해 주는 강사라면 긴긴 교육시간을 잘 보내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좋은 반응을 보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강의 스킬만 좋은 강사를 채용한 결과, 임직원들이 그 어떠한 스킬에도 숙달되지 못한다면 그 시간은 회사와 개인 모두에게 '버리는 시간'이 되고 그 교육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축소될 것이다.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다'라는 말이 있듯이 교육의 본래 목적을 달성하는 길이 교육생들에게 '불편함' 즉 '챌린지'를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단순히 강의스킬에만 의존해서 강사를 선택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교육은 참 값비싼 활동이다. 교육을 하느라 들어가는 돈 (장소 대여, 강사 고용, 운영자 고용) 뿐 아니라, 임직원들이 교육을 듣느라 일하지 않는 간접적 비용까지 더해지니 돈이 두배로 드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간혹 가다 보면 주어진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내용을 담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기는 교육을 보게 된다.
강사는 당연히 교육담당자 요구사항에 맞춰 교육을 진행하려고 하니, 시간 대비 많은 내용을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빨리빨리 설명하고 넘어가고, 설명하고 또 넘어가게 된다. 교육을 듣는 임직원 입장에서도 뭔가 새로운 것을 자꾸자꾸 접하게 되니 '내가 열심히 무언가를 배웠다'라고 느끼게 되는데 이건 엄청난 착각이다. 그렇게 한번 듣고만 넘어간 내용은 반드시 기억에서 휘발되기 때문이다.
교육을 해서 임직원의 역량을 향상하고 이를 통해 행동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단순히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Dale의 'Cone of Learning'을 참조해보자.
위의 모델에서 보이듯이 단순히'들은 지식'은 교육 후 2주가 지나면 20% 밖에 기억에 남지 않는다. 만약 교육생이 교육내용을 완전히 체득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어서 수업이 끝나고 그 내용을 엄청 복습을 하고 심화자료를 찾아 공부한다면 더 많은 내용을 기억할 수 있겠지만 그런 사람은 매우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비용을 들여 어렵게 연 교육인데 교육을 통해 전달한 내용이 2주 후 20%밖에 남지 않는다면 그것이 행동변화로 이어지기는 무척 어려울 것이다.
설명만 듣고 넘어갈 교육을 굳이 오프라인에서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이러한 챌린지도 받을 수 있다. 만약 임직원을 다량의 지식에 노출시키는 것이 목표였다면 그냥 온라인 강의를 만드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온라인 강의는 반복 청취라도 할 수 있지 오프라인은 녹화를 하지 않는 이상 한 번 흘러가면 다시 들을 수도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행동 변화'가 교육의 주된 목적이었다면, 주어진 교육시간 동안 제공되는 강의와 활동들을 통해 교육생이 배운 내용을 얼마나 더 숙달할 수 있는가의 관점에서, 즉 교수설계(Instructional Design)의 측면에서 사전에 강의 교안을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강사가 제안한 교안에 담긴 여러 가지 소주제 중에서 'must have'와 'nice to have'를 가릴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버릴 것(부차적인 내용)은 버리고, 교육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필수적인 내용을 선택한 후, 적어도 이 내용에 대해서는 교육생이 단순히 듣는 것을 넘어서 숙달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참여형 액티비티를 배치해야 한다. 교육내용에 따라 이것은 케이스 스터디가 될 수도 있고, 작은 과제(산출물)를 작성하고 강사에게 피드백을 받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소주제에 대한 토론과 질의응답이 될 수도 있다.
교육이 이벤트로 끝나는 이유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교육 후의 학습에 대한 고려가 없어서이다. 초보가 잘 모르는 주제에 대해 3일 혹은 5일 동안 교육을 듣는다고 해서 과연 숙련가가 될 수 있을까? 아마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한 분야에 대해 전문가가 되려면 1만 시간의 학습이 필요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현실적으로 모든 주제에 대해 모든 임직원이 전문가가 되길 바랄 수는 없겠지만, 교육이 역량 향상 및 행동 변화의 단초로 작용하기를 기대한다면 역량 향상에 의지를 가진 임직원들이 교육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학습을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장치'들을 교육 안에 마련해 놓아야 한다.
후속학습을 위한 장치에는 뭐가 있을까? 작게는 교재 혹은 강의 프레젠테이션 파일에 들어있는 각주 또는 출처 표기 일 수 있다. 각 단어의 정의(구글 검색 결과)는 아래와 같다.
- 각주 : 주(註) 또는 각주(영어: footnote 또는 annotation 등)는 본문에 대하는 참조 문헌이나 본문의 낱말, 문장 등의 뜻을 알기 쉽게 풀이하는 덧붙이는 글
- 출처 : 한국어의 경우 저자명, 출판 연도, 인용 면수를 순서대로 표기합니다. 영어의 경우 원 괄호 안에 성(Last Name), 출판 연도, 인용 면수를 순서대로 표기합니다. (Last Name Year of publication, page number.)
이런 작은 배려들은 소소하지만 교육 후 복습 혹은 심화학습을 하고자 하는 교육생들에게 훌륭한 자기 주도 학습(self-directed learning)의 자원이 된다. 특히 출처 표시는 강사가 전달한 내용에 대한 원문을 읽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원문을 읽어보면서 배운 내용을 반추한다면 당연히 주제에 대한 이해도는 높아질 것이고, 추후 관련 보고서를 쓸 때도 활용 가능하기에 교육의 효용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이런 작은 것들은 교육담당자가 나서서 강사에게 요구하지 않으면 간과되기에 쉽다. 외부 강사들의 미션은 주어진 시간 동안 만족할만한 강의 딜리버리를 하는 것이지 후속학습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육담당자가 조금만 적극성을 발휘한다면 강사를 통해서 후속학습을 위한 자료 혹은 온라인 교육 목록을 요청하거나 이를 직접 만들어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필수교육이라 강제로 입과한 케이스이라고 하더라도 교육을 듣고 흥미가 생겼거나 혹은 업무적으로 교육내용이 필요한 사람들은 그 목록을 반드시 눈여겨볼 것이다. 추가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지속적인 역량강화를 촉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각주/출처/자료 목록이 아주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장치의 예시였다면, 후속학습 활동을 직접 제공하는 것은 조금 더 크고 명확한 장치들이라고 볼 수 있다. 교육이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업무에 녹아들도록 하기 위해 사후 과제를 만들어 진행한다거나, 배운 내용을 연습할 수 있는 랩을 열어준다거나, 관련 인증 시험 혹은 콘테스트의 기회를 제공한다거나 하는 것들이 교육담당자가 할 수 있는 노력들이다.
'교육 끝나면 사실 어떤 변화가 일어나던 티도 안 날 것을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교육이 가져오는 임팩트 들은 사후 설문(post-training survey)이나 교육 활용 일화(anecdote) 수집을 통해 얼마든지 성과로 가시화될 수 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교육의 비즈니스 효과를 확실히 강조할 수 있고 이는 기업 내 HRD 부서의 입지를 강화하는 기폭제로 작용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기업 교육이 효과가 없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았다. 교육기획 시 저지르기 쉬운 세 가지 실수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교육을 하는 본래 목적을 간과하였거나 학습목표를 명확하게 수립하지 않아, 외부강사에게 제대로 된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이를 교수설계에 반영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교육의 목적과 목표를 명확하게 하려면 애초에 교육 담당자가 1) 해당 교육을 통해 해결하고 싶은 수행 문제 혹은 역량 갭이 무엇인지 글로 기술할 수 있어야 하고, 2) 해당 교육 주제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있어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역량과 경험을 가진 강사가 누구인지 판별할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3) 우리 회사의 수행 문제 혹은 역량 갭을 메꾸는 데 도움이 되는 교육이 될 수 있도록 강사에게 교육에 대한 요구사항을 사전에 전달해서 교안을 충분히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어야 한다.
회사마다 교육을 시행하는 배경이 다르고 임직원의 역량 수준 및 동기가 상이하므로 단순히 시중에 나와있는 교육상품을 픽업하는 것만으로는 퀄리티 있는 교육을 만들어내기가 어렵다. 위의 내용을 참고하여 기업교육 상품의 쇼퍼(shopper)가 아닌 수행 문제를 해결하는 사내 컨설턴트(internal consultant)의 입장에서 교육을 기획하고 실행한다면 그 효과는 반드시 눈에 띄게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