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서 아쉬운 것들]
결혼식을 한 달 앞두고 평생의 숙원 사업인 다이어트를 또다시 떠올렸다. 이십 대에는 앞자리 4를 잘도 유지했었는데 이제는 그 몸무게로는 내 몸이 자주 아팠다. 조금씩이라도 가벼운 운동을 하고 몸무게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고 생각하면서 지내오고 있었지만 화려하고 몸매가 드러나는 드레스를 마주하니 볼록해진 아랫배와 두툼해 보이는 팔뚝 살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닌가. 삼십 대의 다이어트는 굶기만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체력만 팍팍 떨어트리는 일이라는 걸 알기에 건강하면서도 나에게 알맞은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넓은 화면의 티브이를 장만한 건 오로지 남편 무민군의 강력한 주장 때문인데 요즘 그 덕을 좀 보고 있다. 유튜브를 연결해서 한 시간씩 그날에 컨디션에 따라 강도를 조절하면서 홈트를 하고 있다. 큰 화면이 몰입감을 선사해 생각보다 재미있게 할 수 있었다. 땀이 잘 안 나는 나도 어느새 두 볼이 뜨겁게 벌게져 있다. 또 운동만큼 중요한 것이 먹는 것 아니겠는가. 고구마나 바나나로 연명하는 다이어트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집에서 나름 건강하고 맛있는 집 밥을 차려도 매일 신선한 야채를 먹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 야채 값이 고기 값만큼 올라있는 걸 보면 헉 소리가 절로 난다. 이럴 땐 서브웨이가 답인데. 배달 앱에서 서브웨이를 찾아보자. 아참. 내가 잠시 잊고 있었다. 우리 집 배달권이 아니지.
제주에 처음 집을 보러 다닐 때 무민군과 나의 조건이 있었다. 너무 번화가가 아닌 한적한 곳이면 좋겠다. 공항과는 가깝지만 제주에서 사는 느낌을 잃고 싶지는 않았다. 인프라가 조금은 떨어져도 괜찮다는 조건으로 지금의 신축 빌라에 안착할 수 있었다. 다른 비슷한 조건보다 가격이 저렴했고 전세보다 연세를 더 선호하는 제주에서는 더 이상의 좋은 조건을 찾기 어렵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내 생각보다 그 조금은 조금 더 멀었다.
동네에 하나쯤은 있을 법한 슈퍼는 찾아볼 수 없고 편의점은 20분 넘게 걸어가야 나왔다. 카페는 말할 것도 없었다. 아프면 당장 병원은 어떻게 하지. 가까운 약국은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나. 차로 다니면 금방이라 했던 거리들이 어쩐지 내 행동반경에는 너무 멀게 보였다. 배달 불가 지역이라고 떠있는 메시지가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다. 편하게 누렸던 것들이 이제는 수고로움을 당연하게 감수해야 하는 곳에 나는 있는 것이다. 최소한의 타협점을 찾으려 노력하지만 이미 몸에 배어있는 편리함은 좀처럼 포기가 잘 되지 않는다. 불쑥불쑥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튀어나오는 불편함은 대부분 도시에서의 일상과 밀접한 것들 이였다.
보통 도시의 라이프스타일이 몸에 배어있는 나에게는 동네에 넓은 대형서점이 없는 것도 나와 결이 맞는 쾌적하고 편안한 카페가 내 반경에서 찾을 수 없다는 사실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렸다. 백화점이 없고 서울의 인프라를 자주 즐기지 못하는 것들과는 결이 달랐다. 지금까지도 포기가 되지 않는 건 단연 택배비다. 도서산간 택배비로 제주는 늘 기본 택배비에 추가금액이 발생한다. 일정 금액 이상이면 언제나 무료로 하루면 받아 볼 수 있었던 택배서비스. 기본 이틀에서 삼일은 기다리는 것이 보통이고 택배비가 배로 늘어나는 사태를 보고 있노라면 결제 창까지 가기도 전에 이 물건이 정녕 나에게 필요한지 당장 사야 하는 건지 다시 되새겨보게 된다. 차선책으로 인천에 있는 엄마의 집으로 정말 필요한 물건만 선별해서 구매를 한다.
이야기가 이쯤 되니 도시 처자가 시골에 내려와 투정만 잔뜩 부리는 꼴인 것 같다. 불평불만은 넣어두고 제주의 좋은 것들을 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받아야겠다. 창문 넘어 한라산 능선이 선명하게 보인다. 날씨가 참 좋다. 이 좋은 풍경을 두고도 왜 이리 내 마음은 쓸쓸하지. 영 울적한 마음이 풀리지 않아 무민군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왠지 기운이 안 난다. 저녁 할 기운이 없어.”
“밖에서 뭐 맛있는 거 먹을까? 뭐가 먹고 싶어?”
“다이어트해야 하잖아.”
“아삭아삭하고 야채 야채 한 걸 먹어볼까요?”
“서브웨이!!!”
감사하게 무민군이 배달해준 덕분에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었다. 이 샌드위치 하나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날 서운하게 했다 섭섭하게 했다가 쓸쓸하기까지 했는지. 그런데 참 맛있네. 우걱우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