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귤을 좋아하나요?
오랜만에 후식으로 나온 귤
아니 벌써 귤이 나오다니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좀 차졌다
생각은 했지만 벌써 이렇게 시간이 지났을 줄이야 재주소년-귤
나의 집 앞에는 그리 크지 않은 귤 밭이 있다. 제주에 사는 사람이라면 귤나무 하나쯤은 갖고 있다는 어디서 주워들은 말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제주로 이사 온 8월 뜨거운 여름에 처음 귤나무를 만났을 땐 초록의 단단하고 옹골찬 열매가 달려있었다. 귤나무인가? 귤나무 맞지? 집과 집 사이에 귤 밭이라니. 생소하고도 신이 나는 일이었다. 이제 매일 마음만 먹으면 귤을 만날 수 있다.
뜨겁기만 할 것 같은 날씨가 서서히 누그러지면서 언제나 초록일 것 같았던 열매도 끄트머리부터 노랗게 물이 들었다. 제주는 단풍이 아니라 귤이 물드는구나. 완연한 가을이 오니 하루가 다르게 귤 밭의 풍경을 바꿔놓았다. 싱그럽다는 말 그대로다. 나 귤 진짜 좋아하는데. 나의 귤에 대한 사랑은 지극하다. 세상에 과일은 넘치지만 나에게 귤만큼 매력을 끄는 과일은 없다. 눈이 찡긋 할 만큼 시큼하다가도 입꼬리가 올라갈 만큼 달콤해진다. 귤껍질을 깔 때마다 터지는 향은 여느 향수 따라갈 재간이 없다.
한라봉, 천혜향처럼 지금은 이름도 잘 모르는 무수히 다양한 귤들이 존재 하지만 내 어릴 적 서늘하고 추워진 날씨에 따뜻한 방바닥에 누워 티브이를 보면서 먹는 최고의 주전부리는 단연 감귤이었다. 진한 주황빛의 울퉁불퉁한 껍질을 손으로 쉽게 벗겨서 먹는 새콤달콤한 귤의 맛이란. 그 맛을 얼마나 좋아했는지는 겨울 내내 두 손에 짙게 배어 있는 귤 향을 맡아보면 알 수 있다.
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엄마에게 전해 들은 귤에 대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내가 아주 어릴 적에 귤을 너무 많이 먹어 온몸이 귤처럼 주황색이 되었다고 한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시고는 매우 놀라 귤이 된 나를 앉고 병원으로 곧바로 달려갔다. “귤을 좀 덜 먹이세요.”라는 처방을 받고 나왔다는 이 귀여운 이야기를 나는 엄마 옆에서 열심히 귤을 까먹으며 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남들에게는 흔해져 버린 식상한 귤 일지도 모른다. 신상 과일들에 자꾸만 밀려나기도 한다. 이 세상에 쟁쟁한 과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랑스러운 색으로 만인의 연인이 된 딸기와 점점 커져서 어디까지 커지나 보게 되는 포도계의 황제 샤인 머스캣, 동남아에서 물 건너와 한참 인기를 누리던 망고. 이런 화려한 과일들 앞에 서면 귤은 이내 작아져 버린다. 그러나 한 손에 꼭 쥐어진 투박한 몸집의 주황색 귤에게는 나의 계절이 있고 추억이 있다. 그리고 늘 기억 속 한켠에 자리하고 있다.
제주는 겨울부터 진정한 귤의 계절이 시작된다. 늦가을의 서귀포부터 시작해 제주시까지 여기저기 주황빛으로 가득하다. 12월에 제주를 돌아다니면 귤덤이란 걸 받을 수 있다. 크기가 좀 작거나 상처가 많지만 맛은 좋다. 덤이라서 그런지 괜히 더 맛있는 것 같다. 귤빛 사랑이다. 시장에 가면 어느 귤이 제철 인지도 바로 알 수 있다. 처음 들어보는 귤의 이름도 참 많다. 황금향, 카라향, 레드향. 농장에서 감귤 따기 체험을 하면서 내가 딴 귤까지 가져갈 수도 있다. 감귤 밭에 있는 기분이란. 주황색 귤 섬에 들어와 있는 느낌일까. 귤을 사랑하는 나에게 그 섬은 아마 천국일 거야. 제주가 이 추운 계절 겨울에도 아름다울 수 있는 건 귤 때문일 거야. 주황색 행복이 주렁주렁 열려서 일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