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17
계단을 올라가는데, 벌써부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반에 들어가기가 싫어졌다. 무슨 이야기일지는 뻔했다.
"그거 들었어? 우리 반 전학생이-"
"야 너는, 전학생 온다는 소리부터 해야지!"
사물함을 막아서고 선 애들이 실랑이를 한다. 아침부터 이게 무슨 소란인지 싶었다.
"너네 당번들, 복도 청소 안 하고 뭐 하냐?"
담임이 멀리서 소리치며 빠르게 걸어왔다. 애들이 흩어진다. 나는 짜증스레 사물함을 쾅 닫았다.
담이을 보니, 며칠 전의 기억이 떠올라 다시 머리가 지끈거린다. 여느 때와 같은 야자 시간이었다.
"야. 담임이 너 교무실로 오래."
쌤이 이 시간에 왜 나를 불렀지 의아해하면서 조용한 복도를 지나 교무실로 향했다.
담임은 곧바로 나를 자기 책상 앞에 앉히고 본론을 꺼냈다. 전학생이 해외에서 오래 살다가 돌아오는 터라, 학교 적응을 도와줄 동급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쌤. 저 고삼이에요."
잠자코 듣고 있던 건 쌤에 대한 예의였다. 애초에 고등학교 삼 학년 반에 전학생이 오는 경우가 흔한가?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귀찮아질 게 뻔했다. 그래서 거절하려 했다.
"호주에서 오는 학생이래. 너가 아니면 내가 누구한테 부탁하겠니?"
"..."
호주라니. 정말 오랜만에 듣는다.
쌤의 제안을 받아들인 건, 절대로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라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진땀을 흘리면서 나를 설득하려는 쌤이 안쓰러워 내린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정말 그랬다.
/
초등학교를 막 졸업했을 무렵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띄엄띄엄 떠오르는 잔상이 있다. 문 너머로 들리는 엄마의 울음소리와 아빠의 뒷모습 같은 것들.
아빠와 엄마가 헤어지며 나는 엄마를 따라가게 되었다. 더 이상 한국에 있을 이유가 없었던 엄마는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우리나라보다 햇볕이 유독 강했던 그 나라는 나에게 모질었다. 또래에 비해 키가 크고 성숙해 보이던 나였지만, 내면은 아직 어렸다. 낯선 나라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건 정말이지 어려운 일들 뿐이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지곤 했다. 아빠가 저녁 늦게 퇴근하곤 내 방에 조용히 들어와 한참을 머리를 쓸어주던 것, 주말이면 아빠가 아침으로 해주던 오므라이스나 짜파게티 같은 것들. 너무 갑작스럽게 잃은 것들이었기에 더욱 그리웠다.
엄마는 이런 나를 못 견뎌했다. 내가 집에 있으면 엄마의 슬픈 모습이 더 잦아질까 봐, 괜히 밖으로 나돌았다.
자유로운 학교 분위기도 생경했다. 자유시간이 주어져도 무얼 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곧 몇몇 한인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가끔은 연락도 없이 친구의 집에서 자고 들어와 엄마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가끔 엄마에게 혼난 날이면, 나를 위로해 줄 누군가의 품이 그리워 언젠가 펑펑 울기도 했었다. 집 근처의 벤치에서였다.
"Are you okay?"
뒤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 등을 움츠렸다. 그림자로 보아, 내 또래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I'm sorry if I scared you."
이윽고 놀람보다 부끄러움이 커져 고개를 푹 숙였다. 그 애는 잠시 근처에서 서성이더니 곧 뛰어갔다. 놀라서 울음을 갑자기 멈췄던 나는 그 애가 떠나자 대신 딸꾹질을 시작했다.
규칙적인 딸꾹질 소리가 울리기도 잠시, 그 애가 다시 달려왔다. 이번에는 내 옆에 앉더니, 나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스프링클이 잔뜩 올라간 딸기 아이스크림이었다.
"Icecream is always the best answer."
주근깨 가득한 얼굴로 그 애가 나를 쳐다보며 미소 짓는다. 그때까지도 멈추지 않은 딸꾹질 덕분에, 나는 '딸꾹'하는 소리로 그 말에 화답했다. 그 애가 상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 애의 웃음소리에 남아있던 울음기도 누그러진 나는, 딸기 아이스크림을 받아 들어 한 입 베어 물었다. 아이스크림은 맛있었다. 괜히 상황이 웃겨 웃음이 났다.
그 애를 바라봤는데 여전히 나를 보면 빙긋 웃고 있었다. 인상적인 첫 만남이었다.
/
학교에서 그나마 말을 트고 지내는 친구에게 그 애에 대해서 물어봤다. 한국계임에도 한국어를 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 빼고는 나머지는 그다지 영양가 없는 정보들이었다.
나도 모르게 저번에 만났던 벤치를 며칠간 서성거렸다. 그러나 우연이라도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그 이제는 내가 그 애를 실제로 본 건지, 벤치에서 잠이 들어 꿈을 꾼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그 무렵에서야 그 애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날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학교가 마치자마자 벤치 근처를 서성거렸다. 그러나, 역시나 허탕을 치고 기분이 나빠진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방향의 반대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얼마쯤 걸었을까, 탁 트인 풍경이 보였다. 저 멀리 모래사장을 지나 지는 노을빛과 함께 반짝이는 에메랄드 빛 바다가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곤 '와아'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 나라의 바다는 참 예뻤다. 바다는 이방인인 나를 차별도 않고 똑같이 아름다운 풍경을 내주었다. 똑같이 철썩거리는 파도와 짭짤한 바다내음, 그리고 오묘한 빛깔의 바다였다. 모래사장에 앉아서 가만히 바다를 들여다보았다. 바다만은 내게 모질지 않아 좋았다.
인기척도 없이 누군가 내 옆에 다가와 앉았다. 신기하게도 돌아보지 않고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냥 마음이 그랬다.
"I've been looking for you."
말하고는 옆을 돌아봤다. 그 애였다. 주근깨가 가득한 얼굴로 미소 짓고 있었다.
얼마나 안 봤다고 조금 자란듯한 모습이었다. 그 애에게서도 바다의 것과 같은 짭짤하고도 달달한 내음이 풍겼다. 그 애는 한 층 낮아진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I know. Thank you for finding me."
그날 우리는 같은 자리에 앉아서 바다 너머로 해지는 노을을 보았다. 옆에 앉아있는 그 애의 발은 모래가 묻었다 몇 번이고 씻겨나간 듯 표면이 거칠했다. 내가 오기 전에도 여기에 있었는지, 학교가 끝나자마자 여기에 온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것 말고도 그 애에 대해서 궁금한 것들은 많았다.
그 애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입을 떼려는 찰나, 그 애의 얼굴이 노을에 비쳐 불그스름하게 보였다. 뭐가 좋은지 그 애는 웃고 있었다. 새삼스레 처음 만났을 때의 미소를 떠올렸다. 그 이후로 한 순감도 잊히지 않은 미소였다.
나도 따라 웃었다. 내가 느끼는 이 감정에 대해 설명하고 싶었지만, 그 애의 눈을 보자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호주에 와서 처음으로 내가 이곳에 속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른 곳이 아니라, 이곳에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 말이다. 그 애가 나를 붙잡아줬다.
/
이후로 몇 번이고 그 바다를 다시 찾았다. 학교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 엄마와 시시콜콜한 일들로 다투었을 때, 그리고 두고 온 아빠와 한국이 생각날 때면 바다에 왔다. 그럴 때면 늘 그 애가 있었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보다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거나 가끔은 바다에 발을 담구었다.
그 시간들이 편하고 좋았다. 익숙하지 않은 것들 천지인 이 나라에서 유일하게 익숙하지는 않아도 좋은 것이었다.
그 애에게 한국이 얼마나 그리운지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대신에 한국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얼마나 똑똑했는지, 학교 앞 문방구에서 사 먹었던 간식이 얼마나 맛있었는지를 더듬더듬 영어로 말해줬다. 대게 그 애는 알아들은 건지 알 수 없는 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가끔은 소리 내어 웃었다.
몇 번이고 우리는 바다에서 만났다. 그 애는 나를 기다리고, 나는 그 애를 찾아갔다. 바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그 애의 낮은 웃음소리를 듣는 일이 익숙해졌다.
나는 그 애가 웃는 게 좋았다. 가끔은 그 애의 웃음소리를 더 듣고 싶어서 재미있을 법한 이야기를 지어내기도 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죄책감이나 부끄러움 따위를 느끼면서도 그랬다. 그 애 앞에서는 바보가 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학교가 끝나자마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갸우뚱하며 받았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빠였다.
"우리 딸 잘 지냈니?"
“...”
"그동안 연락하지 못해 미안했다. 아빠 막 호주에 도착했어."
심장이 철렁했다. 아빠는 언제나 내가 두고 온 것들과 함께 한국에 남아있을 거라 생각했었기 때문일까? 그동안 아빠와의 연락이 잘 닿지 않았긴 했다. 워낙 바쁜 아빠였기에, 일이 끝나면 다시 연락할 것이라 생각하게 안일했었다. 아빠는 그동안 호주에 나를 데리러 올 준비를 하고 계셨던 것이다.
집에 들어가자, 어렴풋이 기억하던 장면들이 현실로 돌아와 있었다. 엄마는 식탁에 앉아 계셨고 아빠는 엄마에게서 등을 돌린 채 거실에 서 계셨다.
엄마도 내가 이곳에서 잘 적응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엄마와 내가 함께 있다면 상처 줄 일 뿐이라는 것도. 그래서 내가 먼저 말했다.
"엄마. 저는 한국에 가고 싶어요."
이 나라에서 보낸 짧으면 짧았고, 길면 길었던 시간들. 거진 1년이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외로워하며 보냈다. 엄마도, 학교 친구들도 아무도 나를 상대해주지 않았다.
아쉬움이 남는 건 딱 하나. 이제는 그 애와 함께 노을 지는 바다를 보지 못한다는 것.
시간이 얼마 없었다. 아빠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떠나려면 여러 가지를 빨리 정리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학교에 갔던 날, 시간을 겨우 내서 그 애를 보러 바다에 갔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걸음이 느려졌다.
내가 떠난다고 하면 그 애는 어떤 얼굴일까?
여전히 같은 모습의 바다가 나를 맞이한다. 그러나 시야에 그 애가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그 애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처음으로 그 애를 기다렸다. 항상 그 애가 나를 기다리기만 했지, 내가 그 애를 기다리는 건 처음이었다. 처음에 밝게 내리쬐던 햇빛이 지는 노을이 되어 바다 밑으로 잠겨버릴 때까지, 늘 둘이서 앉던 자리에서 혼자 그 애를 기다렸다.
전화번호라도 물어볼 걸, 아니면 위챗이라도 물어볼 걸 하는 때늦은 생각들이 밀려왔다. 처음 만나고 한 번을 잃어버렸으면서, 어떻게 두 번을 잃어버릴 수 있을까 하는 후회의 마음도 들었다.
결국 해가 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는 그 애가 약간은 원망스러웠다. 내가 특별한 것처럼 굴어놓고, 결국에 내가 찾아가지 않으면 나를 먼저 찾은 적이 없는 애. 나한테 그 애는 아주 특별했지만, 내가 그 애한테 특별했는지는 이제 모르겠다.
그게 호주에서의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
한국에 돌아오자 마침내 제자리를 찾은 듯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다행히 호주에서의 유학 기간을 인정받아 유급 없이 학교에 돌아갈 수 있었고, 무사히 중학교를 졸업해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중학교를 졸업하던 날, 혼자서 바다에 갔었다.
가는 기차 안에서 기억 한구석에 묵혀놓았던 감정들을 다시 꺼내보았다. 원망보다는 그 애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 커져 마음이 저려왔다. 히터가 빵빵한 실내인데도 마음이 시려 목도리 속으로 얼굴을 묻었다.
드디어 도착한 바다. 한겨울의 모래사장에는 사람이 많지 않아 조용했다. 나는 한 걸음씩 파도를 향해 다가갔다. 그저 혼자서 파도가 '철썩'하고 칠 때마다 흰 거품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모습을 가만 바라보았다.
그때의 그 바다와는 무언가 본질적으로 달랐다. 누군가를 안아주는 따스한 파도가 아니라, 매서운 겨울바람처럼 날카롭게 베어 오는 슬픈 파도였다.
무엇보다 그 애가 내 옆에 없다. 그 생각은 겨울 바다의 차가운 공기와 함께 내 폐 속으로 들어와 호흡을 가쁘게 만들었다.
분명 한국에 오니까 좋은데. 학교도, 친구들도, 아빠도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인데. 편안하기만 한데.
왜 이렇게 한편으로는 그 바다로 돌아가고 싶은지... 어쩌면 그 애가 내 바다였나, 하고 그제야 깨달은 사실이었다.
/
시간은 다시 흘러, 나는 고등학교 삼 학년이 되었다. 그 애와의 기억은 바래진 추억이 되었다. 나에게 남은 흔적이란 험난한 유학생활을 해처 가며 얻어낸, 또래보다 뛰어난 영어 발음 정도? 그게 전학생을 내가 떠맡게 된 이유였기도 하다.
교실에 들어가 익숙하게 가방을 책걸상에 걸고 앉았다. 왁자지껄하기도 잠시, 조례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담임이 들어온다.
"얘들아 자리에 앉아라."
"너희도 이미 알겠지만, 오늘 우리 반에 전학생이 온다."
'와아'하는 소리가 반 애들에게서 터져 나온다. 이벤트라고는 모의고사나 시험뿐인 삭막한 고삼 생활이니 그럴 만도 하다. 애들이 많이 기대하는 눈치라 벌써부터 한숨이 나온다. 전학생을 챙기랴, 반 애들을 진정시키랴 바쁠 쉬는 시간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이제 들어오자 전학생. “
문이 열리고, 남자애 한 명이 터벅터벅 걸어와 교탁에 선다. 외국에서 왔음을 자랑이라도 하듯 반짝이는 금발. 여자애들의 표정이 환해진다. 괜히 거부감이 생긴 나는 나는, 손에 턱을 괴고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콕콕 박힌 주근깨가 특이하네, 그렇게 생각했었던 것 같다.
"간단히 자기소개하고 빈자리에 들어가서 앉자."
"안녕, 나는 이바다야.”
쌤의 요청에 그가 어눌한 한국어로 이름만 딱 말한다.기다리던 아이들이 잠깐의 정적을 못 참고 박수를 쳐댔다. 나는 이상한 위화감을 느낀다. 저 얼굴, 왜 기억이 날 것만 같지...
박수가 잦아들자 한 마디를 덧붙였다.
"And I am from Australia, as you know."
나만을 똑바로 응시하는 두 눈이 있었다. 너무도 익숙한 눈동자였는데 왜 바로 몰랐을까. 내가 기억하던 모습보다 훌쩍 자랐고 목소리가 낮아졌고 눈동자는 더욱 깊어졌다.
빈자리는 내 옆자리였다. 담임이 미리 조율해 둔 덕이였다. 그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걸어왔다. 마치 내 옆자리가 아닌, 나에게로 오는 것처럼.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오래 기다렸지. 늦게 와서 미안해."
미리 연습한 듯, 약간 어색하지만 유려하게 뱉어낸 한국어였다. 예전과 같은 그 웃음이 있었다. 눈꼬리가 휘어지고 윗니가 활짝 보이는.
울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애써 마주 웃지 않을 수 없는 그 웃음.
엉뚱하게도, 호주에서 마지막으로 바다에 갔던 날의 질문을 떠올렸다. 내가 혹시 저 바다에 빠지면, 너는 어떡할 거냐고, 나를 구해줄 수 있냐고. 그 유치해 빠진 질문을 너는 진지하게 대답했었지
“Actually, i'm swim toward you even through the deepest sea.”
그가 정말 바다를 건너 나에게로 와줬구나.
그 생각을 하자, 마음속에 따뜻한 것이 역류하듯 올라와서 그를 끌어안지 않을 수 없었다.
반 애들 전부 전보다 더 크게 웅성거렸지만, 그런 것쯤은 괜찮았다. 호주를 떠나도 익숙해지지 않았던 불완전함이 이제야 완전해졌기 때문이다. 그 애 덕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