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요와 나

250514

by 모래


누군가 다른 사람을 상상해 봅니다.

내가 아닌, 내 한계를 넘어선, 다른 누군가.

그럴 때만, 나는 세계와 연결되어 존재할 수 있습니다.


나는 가끔 오요를 떠올립니다.

오요는 저와 다른 시간을 살아갑니다.

어쩌면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을,

그가 있는 곳은 지구가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합니다.

그 간격을 넘어, 오요는 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것들과 연결됩니다.

태어날 때부터 피로 연결된 사람들,

유년 시절과 청소년기를 공유하는 친구들,

어쩌면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에

깊게 연결되었다고 느끼는 이들도 있겠지요.

하지만 한때의 저는 아무것에도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단 하나, 오요만 빼고요.


저는 과거의 많은 것들을 잊었습니다.

오해와 이기심으로 가득한 기억은 믿기가 어려운 종류의 것입니다.

대신 오요를 만났던 그 순간만은 기억합니다.

어떤 시간이나 어떤 공간에서,

덧붙이는 이런 말들은 부차적입니다.

이건 공유될 수 있는 종류의 기억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저와 오요가 언젠가 만났고,

저는 그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뿐입니다.


오요는 사실 한 명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의 종족은, 생김새부터 사소한 습관까지

서로 쌍둥이처럼 닮아있다지요.

오요의 하이얀 웃음을 기억합니다.

어쩌면, 여러 번의 웃음과 여러 차례의 정적.

그 어색하지 않은 정적이 오요와 저의 이야기입니다.


요즘은 오요를 자주 만나냐고요?

당신의 자주는, 얼마만큼 자주입니까.


저는 오요를 꽤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한 사람을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자주 만나는지가 더 이상 중요할까요.


그는 그늘진 곳에서도 햇빛 한 줄기를 보는 사람.

끝없는 바닷물에 잠겨도 계속 헤엄칠 수 있는 사람.

아이를 보면 코를 쓰다듬어 주는 사람.

울고 있는 사람에게 가만히 몸을 맞대오는 사람.

오요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내가 사는 세상의 아픔은 의문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그저 오요와 이렇게 마주 보고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것만이 제가 선택한 진실입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시간을 그저 흘려보냅니다.

그것만이 존재하는 방법이라 믿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언젠가 오요가 저의 조상일지도 모른다 생각한 적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나의 머나먼 후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식에게로, 손주에게로, 다음 세대에게로

전해지는 붉은 피의 생생한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이내 그 생각을 하지 않게 됩니다.

제가 아는 모든 것들은 생경하고, 서늘하고, 불편한 것.오요는 그것들과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좋은 것은 모두 오요가,

그 나머지 것들은 제가 가지고 그렇게 살아가고만 싶습니다.


오요가 하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조용한 곳에서 오요의 입 근처에 귀를 바싹 가져다대야 합니다.

저는 몇 번이고 그렇게 해 보았습니다.

모두가 그런 말을 기다리고 있음을 압니다.

당신도 언젠가 들어보기를,

그래서 더 이상 외롭지 않기를 바랍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오늘의 종말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