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전주 여행
꽃들이 제 역할을 다하기 시작하는 4월 초, 동료 K의 고향인 전주로 여행을 다녀왔다. 우리는 에어비앤비나 호텔이 아닌 K의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최근 K의 부모님께서 집에 손님을 대접할 공간을 마련해 두었다며 우리를 초대해 주셨기 때문이다. 집에 도착했을 때 눈앞에 보이던 초록빛 풍경, 귀에 들리던 물소리와 새소리, 기분 좋은 꽃내음과 흙내음은 나의 마음도 봄처럼 싱그럽게 만들었다.
전주역까지 우리를 손수 마중 나와주시던 아버님,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을 차리셨으면서도 먹을 것이 별로 없어 미안하다고 하시는 어머님에게서 K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따뜻하고 섬세한 K의 성품은 아무래도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맞는 것 같았다. 우리는 K의 집에서 모든 식사를 해결했다. 첫째 날에는 떡국과 김치찌개를, 둘째 날에는 제육볶음, 된장국, 쑥전을 먹었다. 도시에서는 쉽게 먹을 수 없는 귀하고 건강한 집밥인 점도 좋았지만, 밥을 먹으며 K의 부모님과 도란도란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이틀간, 자식의 동료인 우리를 친자식처럼 챙겨주고 싶어 하시는 두 분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도 오래도록 떠오를 것 같은 장면 중 하나는 아버님의 손에서 탄생한, 세상에 하나뿐인 집을 구경했을 때였다. 3층으로 지어진 집 안에는 아버님이 그린 그림과 직접 만든 가구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집 주변으로는 난생처음 보는 나무, 풀, 꽃들이 가득했다. 식물도감 책에서나 봤던 식물들이 눈앞에 펼쳐진 것 같은, 태어나서 가장 다양한 식물을 접한 날이었다. 우리에게 식물의 이름을 알려주시는 아버님의 얼굴에는 해맑은 미소가 묻어있었다. 꼭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소개해주는 순수한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집 안과 밖으로 구석구석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공간이 없었다. 구경하는 내내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고 개성 있는 집이 탄생할 수 있었는지 감탄을 멈추지 못했다.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아름다운 곳, 오래 머물수록 깊은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곳, 아버님의 진한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곳이었다. 소년이었던 K의 아버지는 그림을 그릴 때,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낼 때 가장 행복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먹고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땅에 그림을 그리는 조경을 업으로 선택했다. 조경 일을 하며 나중에는 나만의 집을 짓고 싶다는 꿈을 늘 간직해 온 그는 결국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그림 같은 집을 완성했다.
”여러분도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걸 꼭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무엇을 사랑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의 눈에서는 빛이 난다.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아버님의 눈이 딱 그랬다. 평생 사랑하는 그림을 그리며 살아온 그에게서 삶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때 알았다. 행복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가까이에 두고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을.
세상에 태어난 모두에게는 각자 부여받은 삶의 과제가 있다. 나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찾아내고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K의 아버지는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지 일찍이 알고 있었고, 그것을 좇아 행복한 삶을 살아온 것 같았다.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이었는지 떠올려봤다. 마음에 울림을 주는 글, 솔직한 감정을 담아낸 음악, 쉼을 누릴 수 있는 공간 등등 노트에는 여러가지가 적혀있었다. 나도 나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들을 이제는 꽤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아 기뻤다. 내 삶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들을 더욱 가까이에 두고 사랑하며 살고 싶게 만들어 준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