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알지 못하는 게으른 즐거움
최근 몇 십 년 간 기술은 빠른 속도로 발전해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이제는 AI와 공존해 살아가는 시대가 되었다. 몇 년 전, 챗GPT, 바드, 뤼튼 같은 똑똑하고 친절한 친구들이 등장 덕분에 검색 후 적절한 답변을 찾아야 하는 수고로움의 비용을 덜게 되었다. 몇 글자의 짧은 질문만 입력하면 친구들이 알아서 원하는 답을 척척 떠먹여 주기 때문이다.
궁금한 것이 있다면 유튜브에 접속해 가장 친절하고 상세히 설명해 주는 영상을 시청하면 된다. 사용하던 생필품이 갑자기 떨어지면 쿠팡에 들어가 주문하면 된다. 로켓 배송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로켓처럼 빠른 속도로 하루가 채 지나기 전, 집 앞으로 배달해 준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톱스타의 근황이 궁금하면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면 된다. 그가 지금 무엇을 먹고 있는지 까지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네모나고 똑똑한 나의 친구, 스마트폰만 손에 있다면 걱정 없다. 깊은 고민을 하지 않아도, 긴 시간과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빠르게 얻을 수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빠름의 혜택을 누리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효율추구의 시대다.
이런 시대에 살다 보면 효율적이지 못한 행위는 그 자체로 의심을 받는다.
“어머, 요즘도 펜으로 직접 기록을 해? 클로바 쓰면 진짜 편한데.”
“날씨도 추운데 영화관을 가서 돈이랑 시간을 쓰려고? 그거 넷플릭스에서도 올라와 있을걸?”
“난 종이 책은 비싸고 무거워서 못 읽겠더라. 밀리의 서재 한 번 맛 들이니까 이제 못 돌아가겠어.”
돈과 시간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이 옆에 떡하니 있는데 그것을 잘 써먹지 못하는 모습을 보일 때면,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더 편한 길이 있는데 그 길로 가지 않는 것에 대한 놀라움. 둘째, 나이도 어린 친구가 기술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그렇게 놀라움과 안타까움의 눈빛을 받을 때면 왠지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에서 나 혼자 도태된, 멍청하고 게으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얼마 전,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편지를 쓰고 이미지를 편집하는데 나도 모르게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진정한 몰입의 상태였다. 마지막까지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작업이 끝나갈 즈음, 테스트 인쇄를 해보며 사이즈는 괜찮은지 몇 번씩 확인했다. 이 과정을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었다.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었다.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었다. 몇 십 번의 수정을 거쳐 진짜_진짜_마지막_최종 버전이 완성되었다. 그제야 내 마음도 흡족스러웠다. 이런 과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친구도 고마워하고 좋아했다. 친구가 좋아하면 그걸로 충분했다.
설연휴 동안, 입이 마르도록 추천받았던 아트디렉터 요시다 유니의 전시회 <Alchemy>에 다녀왔다. 사람들의 인기에 힘입어 추가 연장까지 한 전시답게 정말 좋았다. 전시는 작가의 상상력과 디테일로 만들어진 놀라운 작품들의 향연이었다. 과일은 꽃이 되고, 구두가 되고, 안경이 되었다. 버려진 비닐봉지도, 그림자도 예술이 될 수 있었다. 머리카락 한 올로도 메시지를 전했다. 요시다 유니는 모든 작품을 그녀의 손끝에서 만들어냈는데, 마치 컴퓨터로 그린 것 같은 정확함과 디테일함의 끝판왕이었다. 다음 작품으로 시선을 옮기는 순간마다 내 입에서는 ‘우와’라는 감탄이 끊이지 않았다. 어떻게 사람의 손으로 이렇게까지 디테일함을 표현할 수 있을까? 존경심을 넘어 경외심까지 들었다.
전시회 막바지, 요시다 유니의 인터뷰 영상 앞에서 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CG로 작업할 수도 있는데 왜 대부분의 작업을 손으로 진행하시나요?”
“저에게는 그 과정 자체가 즐겁거든요. 무엇보다 사람의 손으로 완성된 작품에서는 따뜻함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때 알았다. 그녀와 나는 인공지능이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고 소설을 쓰는 시대에, ‘굳이 애써 하는 일’에 심장이 뛰는 사람이다. 요시다 유니의 전시회 <Alchemy>는 사람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신비한 힘,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따뜻함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효율이 정답인 시대에서 굳이 비효율을 선택할 때만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오래오래 누리고 싶다. 그래서 구태여 시간과 마음을 내어 노력을 기울이는 경우가 잦다. 그런 노력의 가치를 누가 알아주냐고 묻는다면, 슬프게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못한다 해도 괜찮다. 그 시간을 지나 온 나는 분명 알고 있다. 무엇보다 그저 진심으로 임하고 마음을 다해 시간을 보내는 과정 자체가 나에게는 즐거움이고 기쁨이다. 굳이 시간을 내어 애쓰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이 게으른 즐거움을 똑똑한 AI는 아마 절대 모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