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할 게 있어서 네이버카페 <스텐의 모든 것, 스사모>에 오랜만에 들어가 봤다. 코팅 프라이팬 보다 스텐 프라이팬을 더 많이 쓰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내 히스토리를 보니 벌써 가입한 지가 10년. 글은 90개나 써놨는데 2015년까지 집중적으로 썼고(정치 과몰입 시절이라 관련 글이 많다), 그 이후에는 드문드문 질문만(이 냄비 부식된 건가요 따위) 올려놨다.
아무튼, 스텐과 함께 한 10년이다. 주방도구로서 스텐의 우수성이야 이루 말할 수 없다. 위생성(세제로 씻어낼 수 있다), 안전성(코팅팬을 쓴다면, 이 영화를 꼭 보세요. Dark Waters), 경제성(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스텐팬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코팅팬이 가질 수 없는 독보적인 때깔이다. 기름코팅이 잘 된 팬 위에 식재료가 구를 때의, 팬에서 요리를 덜어낼 때 바닥에 들러붙지 않은 상태의, 수세미로 박박 닦으면 반짝반짝 윤을 내는, 때깔.
캐나다 잠시 살기를 하면서 한국이 가장 그리울 때 중 하나가 서울 집에 있는 스텐 팬과 냄비들을 생각할 때다. 많지는 않지만 용도별로 골고루 잘 갖추고 있다. 16밀크팬, 26궁중팬, 32궁중팬, 26후라이팬, 28후라이팬, 사각팬, 소테팬, 24냄비, 28냄비, 바닥곰솥 등. 나무, 실리콘 주방도구나 한두 개 있는 무쇠팬, 코팅팬과도 이질감 없이 잘 섞여 어울린다. 휴직 중인 주인처럼 내 스텐들도 지금 모두 휴직 중이다. 모두 잘 지내니?
음식 할 일은 캐나다가 더 많은데, 조리도구는 여기가 더 부족하니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시누이에게 얻은 이케아 냄비도 있고, 부족한 냄비와 팬은 월마트에서 더 사서 쓰고 있긴 하다. 하지만 이렇게 산 것들을 한국에 가져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필요해도 덜 사게 되고, 사더라도 저렴한 거 위주로 사게 되니 깊은 정이 들진 않았다. 캐나다는 공산품이 너무 비싸다.
오늘 T-fal 바닥스텐팬에 계란 프라이를 하며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얘 하나는 한국에 가져가도 될 거 같은데?".
캐나다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월마트에서 산 팬인데, 구이와 볶음 요리에 요긴하게 잘 쓰고 있다. 마침 한국에는 통삼중 제품만 있고 바닥팬은 없다. 이 팬 하나가 1.7kg이고, 대한항공은 4인 가족 기준 20kg 짐을 8개까지 받아주니, 캐리어 하나는 이걸 넣고, 남은 자리는 다른 가벼운 짐으로 채우면 될 거 같다. 깨질 염려없는 스텐이라 뽁뽁이도 필요 없으니 유리그릇 가져가는 거보다 훨씬 편리한 선택이다. 그래, 캐나다 1년 반 주방생활을 기념할 만한 아이템 하나는 있어야지. 이렇게 이 시절의 인연을 추억할 물건 하나 정도는 가져가야지.
기분 좋은 아침이다. 옆에 코팅팬에 올려뒀던 냉동 해시브라운을 뒤집고, 소금물에 살짝 데친 브로콜리를 타공채에 건지고, 계란 프라이를 뒤집어 4인분의 상을 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