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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레인 Feb 16. 2023

손맛, 너의 이름은

@ 대서양 낚싯배


헤밍웨이의 노인이 청새치와 분투를 벌인 멕시코 만류에서 미국 동쪽의 대서양을 따라 올라가면 캐나다의 세인트 로렌스 만(Gulf of St. Lawrence)에 이르게 된다. PEI까지 왔으니 배낚시를 한번 해봐야겠다.


오후 5시, 부두에 도착하니 선장의 이름을 딴 보트, 'Jason D. 2000'에 손님들이 막 타고 있었다. 어른 셋, 아이 셋으로 구성된 우리 가족, 선장과 조수, 다른 세 팀까지 총 16명이 오늘 세 시간짜리 낚시체험의 동반자들이다. 같이 바다로 나가 먼저 고등어를 잡고 더 깊은 바다에서는 대구를 잡고 돌아올 예정이다. 결제하는데 이런 글귀가 붙어 있었다.

규칙 1. 선장은 늘 옳다.

규칙 2. 선장이 틀리면, 규칙 1을 다시 봐라.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Barry Doucette's Deep Sea Fishing


물 반, 고등어 반


부우웅-

모터 소리를 요란스럽게 내며 출발했다. 잔잔한 해수면 위로 작은 산맥 모양의 물결이 길게 만들어졌다. 산들바람이 기분 좋게 불었다. 부둣가에 모여 있던 등대와 집들이 점점 작아지는 걸 보며, 갑판에 앉아 우리의 날씨 운에 대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다. 20분쯤 지났을까, 이제 사방에 바다 외에 보이는 게 없게 되자, 보트가 멈췄다. 조수 테드가 나눠주는 낚싯대에는 이미 미끼가 달려 있었다. 모두 선장의 설명을 들으며 낚싯대를 배 바깥쪽으로 드리워 걸쳤다.


"릴을 돌려 낚싯줄이 바다 바닥까지 닿게 한 후 기다리세요." 

릴을 살살 풀어보자 팽팽했던 줄이 내려가기 시작한다. 근데 줄이 바닥에 닿았는지 어떻게 확인한담?

"잡고 있다가 손에 느낌이 오면 빠르게 릴을 감아올리세요"

손에 느낌? 그게 어떤 느낌이지? 나는 '감'보다는 명확한 지시가 좋다. 빨간 불이 켜질 때까지 릴을 내리세요. 종이 세 번 치면 릴을 가슴 쪽으로 감아올리세요. 간장은 3T, 후추는 1t...


우리 가족은 모두 낚시가 처음이라 난리법석을 떨었다. 릴을 돌렸다 내렸다 낚싯대를 들었다 내렸다 하면서. 동시에 "지금 기분이 어떠십니까", "오늘 몇 마리나 잡으실 거 같나요" 자체 인터뷰를 하며 호들갑이었다. 그 때 옆 팀에서는 벌써 고기가 낚여 환호와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부럽다 하는 순간, 조카의 낚싯대에도 고등어가 걸려들었다! 와, 대박, 축하해!!! 찰칵. 처음 한 마리가 힘들었지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남편과 애들도 고등어를 거둬들이기 시작했고, 동시에 두 마리, 세 마리도 잡혔다. 서로 타고난 어부라며 방정을 부렸다. 나는 한 마리도 못 잡았다. 애들에게 입질이 정말 느껴지냐고 물었더니, 뭔가 짜릿한 느낌이 오긴 온단다.


애들이 그냥 바다로 돌려보내주자고도 했지만, 파란 양동이는 어느새 고등어들로 가득 찼다. 고기들이 나 좀 살려달라 펄떡거린다. 애들이 물고기를 잡은 기쁨, 물고기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뒤섞여 입매가 실룩거렸다. 고등어야 미안하다, 낚은 청새치를 친구삼은 산티아고 노인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고등어 잡이


갈매기도 날고 고등어도 날았다


하늘에 구름이 가득 차서 꽤 어두워졌다. 석양이 사다리꼴 모양으로 바다 위에 내려앉았다. 선장은 이제 더 깊은 바다로 가자며 조타석에 앉았다. 모두 낚싯대를 내리고 앉아 한숨을 돌렸다. 갈매기들이 먼 하늘에서 날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허허바다에서 유유자적하니 고기는 못 잡아도 좋았다. 조수 테드가 잡은 고등어들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회를 떠주나 싶었는데, 조각낸 고등어 살들을 하늘로 던졌다. 하늘에서 갈매기도 날고 고등어 살도 날았다. 갈매기들이 피 냄새를 맡았는지 우리 머리 위로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갈매기들은 고등어살이 뜰 때마다 쏜살같이 잡아채갔다. 지난 7월, 한 해변에서 햄버거를 먹으려고 입을 벌렸는데, 순식간에 그걸 낚아채 간 파렴치한 갈매기가 생각났다.


자세히 보면 고등어 살도 날고 있다


메노나이트 젊은이들의 비밀


남은 고등어살은 대구의 미끼로 쓰기 위해 찌에 달았다. 대구잡이는 고등어잡이보다 난이도가 훨씬 높았다. 너무너무 안 잡힌다. 선장 제이슨이 돌아다니며 직접 코치를 해줬지만 소용이 없었다. Hit the bottom... 자꾸 바다의 바닥을 치라고 한다. When you feel... 다시 그놈의 손맛 타령이 시작되었다. 깊이와 속도를 나름 바꿔가며 시도해 봐도 고등어 살만 쓸쓸히 올라올 뿐이었다. 한 번은 입질인가 싶어 소리를 지르며 전속력으로 당겨 올렸는데, 쬐깐한 아귀 한 마리만 딸려와 허탈했다. "선장님, 다시 고등어 잡던 데로 갑시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젊은 남녀 넷으로 구성된 메노나이트(Mennoite) 팀만큼은 대구잡이의 강자였다. 그들의 찌에 계속 대구가 걸려든 덕분에 선장과 조수는 한편으로 꽤나 안심하는 것 같았다. 메노나이트인은 보통 청교도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대 문명과 단절하고 산다고 들었다. 전기도 쓰지 않고 차 대신 마차를 이용한다고 한다. 지난봄 메노나이트 집성촌인 세인트 제이콥스(St.Jacobs)에 시장 구경을 간 적이 있었는데, 오늘 이렇게 같은 배에 타다니 신기했다. 직접 지은 과거 시대의 옷을 입고, 은은한 미소를 띤 채 양동이에 쉬지 않고 대구를 쌓고 있었다. 우리가 사진을 찍으며 소란을 떨 때도 동요하지 않고 낚시에 집중하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현대인치고는 품위가 있었달까. 자극적인 문명과 단절된 그들의 삶이 그들의 '촉'을 강화시키는 걸까. 그 추리도 틀렸다면 그들은 메노나이트의 탈을 쓴 선장의 바람잡이일지도 모른다.


푸른 옷을 입은 메노나이트들


손맛, 너의 이름은


제발 한 마리만 잡히기를... 너무 간절했다. 만약 이대로 돌아간다면 실망한 아이들에게 계속 시달릴 것 같았다. 내추럴 본 고등어잡이라 불린 조카도 풀이 죽고 승부욕이 강한 딸내미도 말수가 줄었지만 낚싯대를 거둬들이지는 않았다. 부서질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 않는다고 노인이 말했지. 계속 빌었다. 남편아, 제발 한 마리만 잡아줘... 대구야, 한 번만 걸려다오.


손맛, 너의 이름은.

아직 만난 적 없는 너를, 찾고 있어.


릴을 느슨하게 풀었다가, 입질이 왔다 싶으면,

순간 팽팽하게 당기기를 반복한다.


어어어~! 이번에는 맞는 거 같은데?!

드디어 대구가 걸려들었다. 잡았다.

남편아! 정말 고마워요.

우리 팀에도 환희가 넘쳤다. 메노나이트 젊은이들도 은은한 눈빛으로 축하 인사를 전했다. 선장과 조수도 가슴을 쓸어내리는 거 같았다.


애들이 있는 집은 할아버지 생신날에도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애들이 끈다. 오늘도 대구를 잡은 건 남편이지만, 대구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는 건 애들이다. 하긴 애들 낚싯대였고, 애들이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편도 계속 도전한 거였다. 나는 비록 오늘 손맛을 못느껴봤지만, 애들 사진을 찍고 나자 마침내 미션을 완료한 기분이다.




대구와 분투하는 동안 해가 완전히 넘어갔다. 부둣가 등대의 빛을 향해 다시 출발했다. 바다를 낀 하늘은 밤에도 푸른색이었다. 보트에서 내릴 때 선장이 고등어를 좀 가져가겠냐고 했는데 사양했다. 남편은 지금도 그 일을 후회한다. 그때 좀 구워 먹었어야 했다고. 나는 후회한 적이 없었는데, 이 글을 쓰다 보니 고등어구이 사진으로 글을 끝맺지 못하는 점이 좀 아쉽게 느껴진다. 


마침내 대구
North Rustico Harb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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