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락 Sep 27. 2022

우리는 수영장 있는 집에 산다

미국에서 1년 살기

타운하우스 건 아파트건 주변 단지에는 모두 수영장이 있었다.

럭셔리한 워터슬라이드와 안전요원까지 상주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유아풀인지 분수인지 헷갈리는 자그마한 웅덩이가 있는 곳 도 있었다.

우리 아파트에도 고급은 아니지만 널찍한 수영장이 있었다.

도착 첫날 수영장을 본 아이들은 휴양지에 놀러 온 것 마냥 수영하러 언제 가냐고 매일같이 보챘다.


하루 종일 여러 행정업무들을 처리하느라 바빴던 며칠이 지나고 드디어 첫 주말이 되었다.

주말엔 어차피 웬만한 공공기관들이 다 휴무이기 때문에 모처럼 느긋하게 수영장에서 하루 종일 보낼 생각에 아침을 먹고 바로 나갈 준비를 했다.

수영장은 입주민들에게 나눠준 카드키를 태그 하면 이용시간 내에는 언제든지 입장이 가능했다.

탈의실과 간단한 샤워시설도 있었는데, 약간 어두운 실내인 데다 여름인데도 서늘한 기운이 느껴져 이용하기가 살짝 무서웠다.

그래서 집에서 수영복을 갈아입고 가기로 했다.

수영복을 입은 채 단지 안을 돌아다니는 사람을 보긴 했지만, 그래도 수영복만 입고 나가긴 영 어색해서 위에 헐렁한 옷을 걸쳐 입고 물안경, 수영모자, 타월, 음료수 등을 챙겨 나갔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수영장에 사람이 있는 건 봤어도 다들 썬배드에 누워 있는 것 만 봤지 수영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미국에서 오래 산 친구의 말에 의하면 단지 내 수영장은 아이들이나 수영하지 어른들은 거의 일광욕하러 오는 곳이라고 했다.

그러든지 말든지... 난 수영을 할 거다.

매일매일 아무 때나 수영을 할 수 있다니, 얼마나 꿈같은 일인지. 매일 수영하면 월세가 아깝지 않겠는걸?

사진을 찍으니 더욱 근사해 보였다.

SNS에 올린 사진을 본 친구들은 수영장 딸린 싱글하우스가 부럽지 않겠다는 둥, 싸구려 아파트라더니 부대시설이 너무 좋은 거 아니냐는 둥 난리가 났다.

너무나도 맑고 깨끗해 보이는 물에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발을 담갔다.

이런, 너무 차갑다...


우리나라로 치면 제주도 같은 기후의 NC는 습도가 낮아서 한여름이라고 해도 그늘에 있으면 시원할 정도이다.

그래서 이른 아침 아직 달궈지지 않은 수영장 물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사람들이 왜 아무도 없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수질 검사하는걸 꽤 자주 목격했는데, 역시 물이 엄청 깨끗했다.

이렇게 수질관리도 철저한 수영장을 두고 썬베드에 누워만 있는 사람들을 뭐라 했는데, 다 이유가 있구나.

아이들은 춥지도 않은지 수영모자까지 야무지게 챙겨 쓰고 신나게 첨벙 댔다. 미국에 오기 전에 몇 달 동안 수영을 배운 덕에 성인풀이었는데도 무서워하지 않고 동동 떠다녔다.

수영 기초라도 배워온 게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수영장을 눈앞에 두고 누리지도 못 할 뻔했네.

짐을 줄이느라 물놀이 용품을 하나도 챙겨 오지 못했는데, 마트에 가면 구명조끼랑 튜브부터 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썬베드에 누워 아이들이 수영하는 걸 보다가 책도 읽다가 모처럼 한가롭게 보내는 이 시간이 너무 꿈만 같았다.

파란 하늘 아래 더 파란 풀장, 따땃한 햇살에 몸이 따끈따끈 데워지며 기분 좋게 낮잠까지 잤다.

점심때가 지나니 햇볕이 한층 더 뜨거워져서 오히려 시원한 물에 들어가는 게 좋을 정도의 온도가 되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꽤 많이 모여들어 점점 수영장이 붐비기 시작했다.

어른들은 수영 안 한다더니 웬걸? 오는 족족 모두 풀장에 뛰어들었다.

더 이상 여유로운 수영은 불가능할 것 같아서 아쉽지만 우리는 이만 철수하기로 했다.

내일 또 오면 되니까~후훗

추워지기 전까지 열심히 수영하고 썬베드에서 여유롭게 책도 읽으면서 일광욕도 해야겠다.

마치 내 전용 수영장 인 것 처럼♡


작가의 이전글 영어, 잘하지만 못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