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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락 Jan 13. 2023

아이들

문득 생각 나는 이야기

나름 매주 화, 수요일마다 글을 올리겠다고 결심하고 브런치를 시작했는데, 갑자기 늘어난 일들에 치여 일주일에 한 번으로 타협을 보고 겨우 겨우 글을 올리던 중, 데이터 센터 화재로 한동안 브런치 접속이 안돼서 내심 안도했다.

몇 분 안 되는 구독자지만 나의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내 탓이 아니라 화재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주일쯤 지나 다시 마음을 다잡고 글을 쓰려고 보니 마침 핼러윈도 다가와서 그때의 추억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아이들이 아직까지도 얘기하며 그리워하는 행사였고, 우리에겐 생경한 문화였기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았다. 

하지만 예약발행까지 설정해 둔 그 글은 결국 삭제하고 말았다.




핼러윈을 앞둔 금요일 저녁, 이웃들과 조촐한 모임을 가졌다.

'우리끼리 반상회'라 부르며 분기마다 한 번씩 모여, 또래인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시간을 보내고 어른들은 치맥과 함께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근 3년 동안 못하고 있다가 정말 오랜만에 시간을 맞춰 갖게 된 모임이었다.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바비큐를 하자며 모처럼 마당에 불을 피워 고기도 굽고 신나게 먹다 보니, 얼굴 보기 힘들어 서로 대면대면하며 지내던 아이들도 금세 자기들끼리 몰려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일찍 먹고 끝내자던 당초의 계획과는 달리, 어두워지고 나서도 계속 장작을 태우며 불멍과 담소의 시간을 가졌고 선선한 가을바람조차 불지 않아 포근하기까지 한 평화로운 저녁이었다.

보드게임을 하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며, 

"몇 년 후엔 이런 주말 저녁엔 집에 있지도 않겠지? 더군다나 핼러윈이라고 이태원 가서 밤새 놀다 오진 않을지, 녀석들... 언제 이렇게 다 컸나?"

하며 지금쯤 이태원은 파티하는 사람들로 엄청 북적이겠다고 얘기했었다.

그리고 밤늦도록 아이들 어릴 때 얘기부터 사춘기로 서로 부딪히기 시작한 이야기까지 '정말 많이 컸다.', '세월이 빠르다.'며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그다음 날 아침 뉴스엔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 같았다.

뉴스를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거의 모든 매체들을 통해 연일 가슴 아픈 소식들을 듣던 중 지인의 가족도 그 현장에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또다시 먹먹한 마음에 아무 말도 해 줄 수 없었다.

여전히 믿기지 않고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서... 그래서 더 슬펐다.

브런치에 핼러윈의 즐거웠던 추억들을 신나게 적어둔 것조차 미안했다.



                    

마지막 글을 지우고 나니 한동안 글이 써지지 않았다.

핼러윈의 즐거웠던 기억들을 두서없이 적었던 것뿐이었는데, 그것 만으로도 왠지 죄책감이 느껴졌다.

'나는 즐거웠어.'라고 얘기하는 다른 세상 이야기 같아서.


마음을 다독이는 사이 2023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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