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
'노스캐롤라이나'는 들어본 적은 있지만 미국의 어디쯤에 붙어 있는 건지도 몰랐다.
내가 아는 미국 도시는 뉴욕, LA, 워싱턴 D.C, 시카고, 필라델피아, 뉴저지, 텍사스, 샌프란시스코, 음......
더 많긴 하겠지만 어쨌든 도시 말고 노스캐롤라이나 이외의 다른 주 이름을 대보라고 하면 글쎄......? 사우스캐롤라이나?
가본 적은 커녕 들어본 적도 없는 곳에서 1년 동안 살 집을 구한다는 건 정말 막막할 따름이었다.
일단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다는 UNC가 어느 도시에 있는지라도 알아야겠기에 구글 지도에 들어가 봤다.
UNC, '유니버서티 오브 노스캐롤라이나'.
마이클 조던으로 유명한 학교란다. 농구에도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는데...
어쨌든 UNC는 채플힐이라는 도시에 있고 채플힐은 미국의 동남부에 위치해 있다.
그래, 대충 어드메에 붙어 있는지는 알았으니 어떤 곳인지 정보를 얻기 위해 네이버와 다음에서 UNC에 다니는 유학생들, 채플힐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블로그와 카페글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도움이 될 만한 자료가 없어서 링크를 타고 타고 들어가 '미씨 USA'에 가입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다음 카페에 NC지역의 한인들과 비지팅들의 모임이 있는 걸 발견했다.
비지팅? visiting? 그게 뭐지?
비지팅은 1년짜리 비자를 일컫는 말이었는데, 알고 보니 매년 안식년이나 1년 연수를 위해 UNC로 가는 한국인들이 꽤 많았다.
카페를 통해 집, 자동차, 살림살이 등을 이어받는 이른바 '무빙' 이란 시스템도 있었고, 학교나 주변시설에 대한 정보도 꽤 다양했다.
카페 회원 중에 1년 동안의 생활을 블로그에 기록해 둔 분이 계셔서 며칠에 걸쳐 그분의 블로그를 정독하기도 했다.
'와... 1년 정도 미국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아는 것도 좀 생기고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경험들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카페를 통해 준비한다면 한국에서 중고나라나 당근 거래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이기에 수월해 보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내가 원하는 집은 매물(?)로 나오지 않았다.
보통 '1년 살이'를 하는 사람들은 싱글하우스나 타운하우스를 선호하는 것 같았다.
미국에서 사는 동안에라도 미국 주택생활의 로망을 실현해 보려는 것이겠지만, 우리의 경우엔
'월세를 아껴서 그만큼 여행을 더 하고 오자!'
는 생각이었기에 싱글하우스나 타운하우스보다는 저렴한 아파트를 구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파트 매물이 거의 없는 UNC 카페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집을 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다시 구글 지도로 돌아갈 수밖에.
그래도 카페나 미시 USA에서 이런저런 정보들을 얻고 나니 미국 부동산 사이트들도 알게 돼서 구글 지도와 부동산 사이트들을 통해 UNC 주변의 아파트들을 하나씩 검색해 보았다.
우리가 집을 구하는 조건은,
UNC에서 너무 멀지 않을 것 (차로 30분 이내)
초등학교가 근처에 있는 아파트 단지 (스쿨버스 노선 체크)
너무 외지거나 위험한 동네는 피할 것
월세는 최대한 저렴한 곳 (평가 점수가 너무 낮은 곳은 제외)
주변 인프라가 적당히 있는 곳
생각해보면 이것저것 더 있지만, 최소한 이 다섯 가지가 충족되는 단지를 우선순위로 꼽았다.
다행히 구글 지도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위치들이 익숙해졌고 처음에는 채플힐에서만 찾던 것을 주변 도시로 점점 넓혀갔다.
채플힐 주변의 도시 중 Cary(캐리)라는 도시가 눈에 띄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근교의 분당 같은 느낌의 신도시인데, 새로 지은 단지들이 많아서 매물도 다양하고 깨끗해 보였다.
UNC까지의 거리도 차로 25분 정도이니 괜찮겠다 싶어서 본격적으로 캐리의 매물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이용한 사이트는 질로우닷컴 (https://www.zillow.com/)과 리얼터 닷컴(http://www.realtor.com)이다.
질로우닷컴
리얼터 닷컴
두 사이트에서 Cary를 검색하면 가격과 위치에 따라 매물들을 볼 수 있다. 두 사이트가 공통된 곳 도 있고 한 곳에만 등록된 매물도 있어서 두 개 이상의 부동산 사이트를 검색하는 걸 추천한다.
마음에 드는 집을 찾으면 구글 지도에서 해당 아파트먼트의 구글 리뷰를 찾아보는 식으로 후보들을 추렸다.
구글 지도는 위치에 대한 감각을 갖게 해 줘서 좋았고 실사용자들의 사진이나 평가도 볼 수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집을 구하며 로드뷰를 얼마나 많이 들여다보았던지, 미국에 처음 도착해서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들이 낯설지가 않았다. 거리 풍경이나 차도, 심지어 표지판까지 요즘 로드뷰가 얼마나 정확한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부동산 사이트의 사진은 실제 모습과 다른 경우가 종종 있으니 사진을 보고 마음에 든다고 결정해 버리면 안 된다.
일단 부동산 사이트의 사진들은 예쁘게 인테리어 돼있는 모습인 경우가 많고, 미국인들은 집의 방향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그에 대한 언급이 없다.
구글 지도를 통해서 집이 북향은 아닌지 꼭 확인해 봐야 한다.
사용자 리뷰에 실제 거주했던 사람들의 사진들도 꽤 많기 때문에 부동산 사이트의 사진들이 얼마나 미화되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최종적으로 3개 정도의 매물을 추린 후 각 아파트먼트의 관리실로 이메일 문의를 넣거나 자체 홈페이지를 통해 문의를 남겼다.
처음엔 영어로 이메일을 보낸다는 게 두려웠지만, 최대한 간략하게 내가 궁금한 내용만 영작해서 보내니 충분한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영어공부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미국의 아파트먼트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개인이 소유하는 것보단 회사가 소유한 채 렌트를 해주는 시스템이라 'leasing office'(리싱 오피스), 즉 임대 사무실에서 계약 전반에 걸쳐 관리를 한다.
계약서 작성부터 계약해지까지, 그리고 거주하면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도 모두 관리한다.
그래서 리싱 오피스 직원들과 친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사는 동안엔 자주 들락거리며 친해져서 참 잘 지냈었는데, 마지막에 좀 크게 맘 상하는 일이 있어서 정을 다 떼고 돌아오긴 했지만...(이에 대한 에피소드도 나중에 올려봐야겠다)
세 군데에서 답변을 받은 후 최종적으로 결정한 아파트는
1. UNC까지 차로 25분 거리
2. 아이들 학교까지 차로 3분 거리
3. 스쿨버스 정류장 1분 거리
4. 1층
5. 방 2, 화장실 2
6. 거실은 카펫이 아닌 마루
7. 구글 평점 높음 (리싱 오피스에 대한 점수도 높음)
8. 월세가 비교적 저렴함
의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에 단점이라고 하면
1. UNC에 가장 가까운 Cary의 외곽지역이라 중심 상권과는 거리가 있음(한인마트 20분 거리)
2. 1층이라 각 세대의 에어컨 실외기가 방 한 개의 창가에 붙어 있음 (여름에 소음 걱정)
3. 한국인의 후기가 전혀 없음
이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어차피 마트에 갈 때는 차를 이용하니까 1번은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진 않고,
2번은... 방이 두 개니까 여름에 잘 때는 한 방에 모여서 자면 될 것 같고 (다행히 마스터 베드룸 쪽의 창가가 아니었음),
3번은... 음... 신대륙을 개척하는 기분으로 한국인 없는 동네에서 생존 영어를 익힐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거?
어쨌든 크게 문제가 될 만한 점은 없는 걸로.
이렇게 구글로 미국집 구하기는 일단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