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과연 잘 녹아들고 있는 것일까?
나는 기숙사에 살고 있다. 학교에서 물론 30분 정도 떨어진 곳이긴 하지만 'on-campus housing'이라는 이름 아래 double room, 즉, 룸메이트가 있다. 나의 룸메이트는 뉴저지 출신의 우리나라로 치면 문예창작과 출신이라 computer science 전공하는 나와 함께 로스쿨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숙사에 살고 있다. 학교 홈페이지에 따르면 10개월 계약에 $12,900이기 때문에 한 달에 약 $1,300을 내고 생활하는 꼴이다. 학기 초반에 몰아치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시작할 때, '주로 너는 어디 사니', '한 달에 렌트비 얼마 내니'를 유학생들끼리 주로 몰아보곤 하는데 나의 경우에는 아주 설명할 거리가 많다.
한 달에 약 $1,300을 낸다
기숙사인데 학교에서 30분 정도 떨어져 있다
룸메이트가 있다
근데 로스쿨 건물이라 flat mates는 거의 다 로스쿨 애들이다
우리 전공과 다르게도 international student 비율이 굉장히 낮다
이렇게 크게 다섯 가지를 항상 설명해야 하면서 공용이라 불편하다 생각하겠지만 나는 굉장히 만족하며 잘 산다!라고 강조한다(사실이다).
물론 나는 이곳에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최대한 나의 외향성을 발휘해서 자기소개를 하고 이름을 외우려고 애쓰고 연락처를 교환하고 한 두 번 정도는 메신저로 연락을 취하곤 한다. 다행히 이 기숙사 건물에서 자주 마주치는 친구들이 생기고 주방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얼굴을 튼 아이들도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찐 친구! 이런 느낌이 들긴 어려운 게 사실이다. 나의 언어 장벽도 있고 아무래도 전공이 다르다 보니 자연스레 서로 숙제를 묻고 수업을 되새기고 교수님 얘기를 나누는 주제로 흘러가면 아무런 말을 할 수 없는 게 사실이긴 하다.
그렇다고 내 성격상 방에서 조용히 밥을 먹고 눈웃음만 살짝살짝 하는 또 그런 스타일은 아니기 때문에 계속해서 주방에서 사람을 마주치고 떠들긴 하겠지만 인간관계를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다. 학부생이라면 하루 종일 파티하고 수업 한 두 개 정도 녹음기 틀어놓고 숙취에 시달리면서 교수님을 안 쳐다봐도 무방하다 생각한다만(경험에서 비롯된)... 대학원은 확실히 다르다. 특히나 로스쿨도 수업이 여간 힘든 게 아니기 때문에 숙제도 엄청나고 여기 사는 애들도 식사를 하는 시간 이외에는 대부분 공부를 하고 있다. 서로 과제를 챙겨주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옆 방 같은 수업을 듣는 친구한테 가서 이리저리 묻는 식이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같은 건물에 함께 살게 놔둔 것이 아닐까 싶다.
다행히 나에게도 같은 전공인 international인 애가 이 건물에 같이 살고 있지만 얘는 나랑은 다르게 커리어 패스가 정말 확고해서 관심사에 대해 말을 주고받긴 하지만 얘도 영어를 잘 못하고 나도 영어를 잘하는 편이 아니라 말이 막힐 때가 많다 하핳;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서 약 2주 정도 시간을 보내는 동안 깊이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그러진 않았는데 오늘 복도에서 마주친 옆방 친구랑 한 두 마디 스몰 톡 하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학교 건강증진센터(?)에서 운영하는 Hiking에 다녀왔는데 거기서 만난 애들이랑 점심 먹고 한 명이 내 기숙사를 한 번 보고 싶다고 했다. 자기가 사는 곳이 학교랑 꽤 멀고 5개월 계약을 한 상태라 학교 기숙사가 살 만한지 한 번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다 또 다른 한 명도 같이 가자고 해서 두 명을 데리고 기숙사 이곳저곳을 소개해줬다. 나는 룸메이트가 있기 때문에 방을 이렇게 나눠 쓴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다 공용이고 주방도 다 함께 공부할 수 있고 요리를 하는 곳이라고 설명해줬다. 물론 밖으로 나와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아이들은 다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에 마주치는 애들이랑 다 인사하곤 했다.
그러다가 너무 피곤해하는 나를 보고 친구가 자기는 픽업해주는 친구 기다리고 있으니 굳이 자기랑 함께 안 있어도 된다고 했다. 진짜 너무 피곤해서 그냥 친구한테 이해해줘서 고맙다 하고 방에 들어오는데 옆방 애가 hiking에 혼자 다녀왔냐고 했다. 그리고 여기에 이렇게 친구 데리고 온거냐고 했다. 그래서 내가 당당하게 '응!'이라고 했는데 '오 나라면 그렇게 안(못)하는데!'라고 했다. 그러고 하하하 하고 샤워하는데 급 '나도 한국이면 안 이럴 거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학부 시절을 떠올려보면 굳이 학교에서 하는 행사 같은데 활발히 참여하지 않았던 거 같기도 하다. 그냥 고등학교 친구들, 동아리 친구들이랑 돌아다니고 교환 학생 잠시 다녀와서 프랑스어권 문화 교환 동아리 운영진을 했을 때를 생각해보면 한국 애들보다 외국 애들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긴 하다.
그게 발단이 되어서 이렇게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이 많아진 것 같다. 유학 초반에 모두가 겪는 혼란스러움 아닐까....?! 나는 그래도 어제도 H mart에 flat mate랑 같이 다녀오고, 수업 시간에 대화도 나누는 친구도 사귀었고, 옆방 애들이랑도 항상 반갑게 인사하면서 지내는 이 생활에 딱히 불만이 없다 생각했는데 앞으로의 인간관계를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이 되는 밤이다.
사실 인간관계라는 게 머릿속으로 생각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지난 2주 동안 저 친구들과 친해진 것도 그냥 아주 자연스럽게 나를 드러냈던 덕이라 생각하는데 오히려 생각하면 더 이상해지는 게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내일 옆방, 옆 옆방 친구랑 야구 보러 갈 거기도 하기 때문에 어차피 공부하러 온 거 공부 열심히 하고 룸메랑 사이좋게 지내고 마주치는 친구들이랑 밝게 인사하면서 그렇게 둥글게 사면되는 거겠지?
한편으로는 내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나의 기숙사에 대해 설명하다 보면 자연스레 누구누구랑 H mart를 다녀왔고 누구누구가 어디 공원에 좋은 게 있다더라 이런 식의 언급할 일이 생기는데 이게 내 안의 인간관계 과시욕인가?라는 생각도 든다. 하나둘씩 올라오는 SNS 게시물에 그 사람의 성향이 드러나듯 내가 하는 말의 대부분이 다른 친구의 말을 인용하는 요즘이 오히려 내가 인간관계를 과시하고 싶어 하는 것인가 싶었다. 오늘 hiking을 하다가 어떤 internationl인 애가 '와, 너 진짜 그 건물 모두를 아나 봐!'라고 했는데 '내가 그렇게까지 누구 얘기를 많이 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그렇게까지 쟤네랑 친한 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의 마음과는 반대로 '나 여기서 친구 많!! 아!!'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것 같은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하지만 웃기게도 이 건물에서 마주치는 친구들이랑 밖에서 밥 한 번 같이 먹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 좀 그렇긴 하지만 뭐 언젠가는 즉흥적으로 나가곤 하는 날들이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딱히 나서진 않았다.
다음 주에 또 우연히도 나의 생일이 다가와서 어제 같이 장 보고 온 친구가 저녁에 나가서 놀자!라고 했는데 그렇게 소소하게 놀면서 학기를 잘 보내면 되는 거 아닌가 싶다!
이렇게 길게 글을 쓰면서 딱히 결론이 나는 고민은 아니지만 아직 2주밖에 지나지 않은 시간이고 정체성이 온전히 '한국인'으로 설명되는 내가 머나먼 미국 땅에서 완전히 스며드는 것도 욕심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그러니 너무 혼란스럽거나 우울해하지 말고 그냥 주어진 숙제 열심히, 만나는 사람 진심으로 반겨주며 하루하루를 보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