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 공용 공간과 인간관계

친구를 사귀는 것에 있어서 과연 언어만 장벽이 될까

by 모라키무

나는 기숙사에 산다. 45명까지 살 수 있는 기숙사에 공용 주방은 단 한 곳이 있다. 2,3층에 나뉘어서 학생들이 살고 있는데 모두가 수업을 끝낸 저녁 시간이 되면 하나뿐인 가스레인지가 꽉 차서 배고픔을 견디며 기다려야 하는 순간도 있다. 3층에 사는 친구들은 대부분 방에 전자레인지와 냉장고를 렌트해서 구비해두는데 비해 나는 2층에 살기 때문에 그냥 공용 시설을 이용한다.


사용하는 인원에 비해 주방이 꽤 작기 때문에 비교적 수납공간은 여유롭게 짜여있다. 하지만 그래도 공용 공간에 내 물건을 두는 게 좀 꺼려져서 3단 트레이를 사서 끌고 다니고 간단한 양념이나 음식 컨테이너만 캐비닛에 넣어둔다. 그릇, 냄비, 수저 같은 것들은 방에서 갖고 나와서 쓰고 다시 갖고 들어가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나의 입장과 달리 기숙사 입소 초반부터 누군가의 시리얼 볼이나 그릇이 항상 조리대 코너에 놓여있는 것을 보곤 했다. 포크나 숟가락들이 항상 싱크대 밑바닥에 놓여서 굴러 다니는 것을 볼 때마다 대체 누가 저렇게 자기 수저를 아무렇게나 쓰나 싶었다. 아무리 설거지를 하더라도 나만 쓰고 내 수세미로 씻는 것과 싱크대를 이리저리 몇 시간째 굴러다니다가 잠깐 씻어 쓰는 것은 뭔가 달라도 다르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아무렇게나 놓인 식기구를 쓰는 주인을 마주칠 때면 '쟤꺼구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 친구에 대한 인상이 너무나도 비호감으로 돌아선다. 이렇게나 비호감으로 생각되는 경우도 너무 오래간만이라 이 감정이 당황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것 아닐까. 한 달 정도 공용 공간을 함께 살아가면서 좋지 않은 감정을 불러일으킨 조각조각의 장면이 한데 모이기 시작하면서 하나의 인물로 연결되는 순간, 그 사람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깊어진다.


나만의 '기숙사 비호감 장면' 리스트가 모두 하나의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신기하게도 그 모든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하게 된다.

- 인쇄한 수업 자료를 널브러뜨리고 아이패드며 노트북이며 공용 책상을 혼자 쓰는 것 마냥 어지럽히고 몇 시간째 자리 비우기

- 공용 공간에 그릇, 수저, 컵 다 널브러뜨려놓기

- 욕실에 자기 가글, 칫솔, 치약 두기

- 휴대폰 충전기 아무한테나 빌려서 쓰기

- 누군가가 요리를 할 때마다 먹어봐도 되냐고 말하기

- 대화할 때 공감한다기보다는 자기 마음대로 결론 내리기


이렇게 하나씩 나열하다 보니 왜 이렇게까지 별로인 사람이 되었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자연스레 기숙사 내에서도 무리가 형성되고 그 무리끼리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안정적인 인간관계에 만족감이 들 때면 반대로 그 친구에 대한 걱정이 한편에서 이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 기숙사에는 외국인이 별로 없어서 내 생일날 외국인들끼리 식사를 하고 서로 으쌰 으쌰 했던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렇게 안 좋은 감정이 생겨서 미안함도 든다.


유학길에 오르면서, 매일매일 한동안 보지 못할 친구들을 만나면서 들었던 가장 큰 걱정은 '외로움'이었다. 완벽한 바이링구얼이 아닐뿐더러 미국 문화도 잘 모르는 내가 어떻게 친구를 사귈 것이며 기숙사에 처박혀서 혼자 외로워서 울고 있을까 봐 너무 걱정이 되었다. 내가 한국에서 소중함을 느꼈던 친구들은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됐기 때문에 친구 사귀는 법을 잊어버렸을까 봐 걱정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고민이 무색하게도 매일같이 마주하는 기숙사에서 '대학원'이라는 누구보다 깊은 공감대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과 함께 밥 먹고 영화 보고 음악을 들으면서 친해졌다. 숙제에 스트레스받아하면서도 소소하게 방에서 음악을 들으며 와인을 마신다거나 맛있는 간식을 찾으면 함께 방에 둘러앉아 나눠먹으면서 그렇게 친해졌다. 어떻게든 껴보려고 노력했다기 보단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고 Bestie라는 말을 쓰고 들으며 기숙사에서 잘 살고 있다.


그럼에도 자연스러움에는 경계가 있다. 우리의 무리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내가 자연스레 그 무리에 녹아든 노력은 무엇인가 하자고 했을 때 절대 'NO'라고 하지 않기, 딱 하나였다. 이건 여기서 사귄 모든 사람들에게도 적용되는 나와의 약속이었다.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에게는 나도 최대한 그 사람과 함께 시간보내기. 그 이외에는 딱히 룰을 정하지 않고 그냥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을 최대한 영어로 내뱉고 살았던 것 같다.

친구들이랑 걸었던 Golden Gate Park

누군가는 외국인들과 문화 차이가 많아서 친구가 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완벽하게 영어를 구사하지도 못하고 문화 차이도 있어서 친구가 되기 어렵다고 말이다. 하지만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한다는 것은 친구가 되는 지름길로 가지 못한다는 것이지 아예 길이 없다는 소리가 아니다. 무엇보다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배려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이 든다. 한국어든 영어든 '친구'가 되는 것에 있어서 일방적인 관계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과 친구를 하고 싶은데 그 친구가 영어를 하지 못하면 다시 물어보면 되는 것이고, 내가 알아듣지 못하면 그 단어를 설명해달라고 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숙사 공용 공간을 어지럽히고 함께 쓰는 공간을 내 공간인 것 마냥 사용하는 배려 없는 행동은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 힘든 태도일 것이다. 누군가가 만든 음식을 먹고서 다시 베풀 줄 모른다거나 음식을 해준 사람 대신 설거지도 한 번 해주지 않는 태도는 분명 누군가가 좋아하는 행동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숙사 입소 초반에 들었던, '우리는 외국인이라 친구 사귀기 힘드니 서로 도와야 해'라는 말은 너무나도 이기적으로 들린다. 친구 사귀기 힘든 것은 맞으나 과연 친구를 사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에 대한 생각부터 먼저 해야 할 듯싶다. 마주치는 친구들과 반갑게 인사하기, 맛있는 음식을 얻어먹었으면 나도 만들어주기, 친구 방에서 음악을 들었으면 간식을 갖고 가서 함께 나눠먹기의 식의 노력 말이다. 더 나아가 기숙사에 살면서 공용 공간에 대한 배려심은 가장 우선적으로 갖춰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일 듯싶다.

친구들이랑 다녀온 Twin Peaks

내가 글을 쓰게 만든 그 친구의 발언은 단순한 한마디였다. 왜 욕실에 칫솔과 너의 물건들을 두냐는 말에 '네가 싫으면 너를 위해서 방에 갖고 갈게'라고 말했다. 저 태도는 마치 '내가 여기 물건을 두겠다는데 너는 왜 싫어하냐?'로 들렸다. 저 단순한 한 마디가 너무나도 많은 것을 말해준다. 공용 공간을 내 공간인 마냥 사용하겠다는 것, 너의 불편함은 나의 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 불편함을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다시 생각해본다. 나는 내가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기적으로 굴진 않았는지. 기분이 상하는 행동을 보면서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겐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하게 된다. '친구'라는 사이는 이기심을 기반으로 절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널브러진 칫솔을 보며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