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가 된 이유

내가 그렸던 개발자의 삶이란

by 모라키무

취준생 시절에 내가 가장 상상의 날개를 많이 펼쳐보았던 '개발자'라는 직업에 대해 갖고 있던 상상의 나래를 써보고자 한다.


대학교 2학년 1학기를 교환 학생으로 해외에서 생활하고 3학년 1학기에 해외 인턴십에 합격해서 다시금 해외 생활을 하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전자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의 인턴이 되어서 IT를 접할 기회가 많았는데, 우리 팀에는 IT 관련 Technician Manager 가 한 명 있었다. 그분을 통해 정립한 내가 갖고 있던 '개발자'에 대한 이미지는 이러했다.


1. 출퇴근이 불규칙적이다.

그분(가명으로 Max라고 해야겠다. 그분이라는 단어가 너무 많이 나와서 이상해진다)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출근을 했는데 사람이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월-금, 9to6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직군이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런 패턴이야 영업직이든 마케팅직이든 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다마는 우선 우리 사무실에서는 그렇게 출근하는 사람이 Max, 한 명뿐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제외한 직군의 사람들은 매일매일 업무 패턴이 있어서 하루라도 출근하지 않으면 누군가는 그 사람의 일을 대신하거나 미리 일을 해놓고 자리를 비워야 하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Max는 달랐다. IT 관련 일이 생길 때면 'Max가 출근하시면 해결하자'라는 결론이 났고, Max가 출근해서 업무 시간에 끝날 때면 그 일들을 모두 해결하고 퇴근하셨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IT 관련 일을 하면 출퇴근이 불규칙적이어도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2. 능력만 있으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든 상관없다.

약간 1번과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이미지이긴 한데 지금 떠올려보면 Max는 지각을 꽤 했던 것 같다. 팀장님이 늘 인턴이 나에게 강조하셨던 것이 '시간 개념'이었는데 아마 Max는 팀장님이 별로 탐탁지 않아하는 시간 관리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하지만 Max의 지각은 일처리에 있어서 딱히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주요 IT 개발은 본사에서 하는 것이고 말 그대로 Technician Manager였기 때문에 '관리'업무가 위주였지 않았을까 싶다. 즉, 본인이 직접 나서서 개발하고 고치고 하는 그런 업무가 아닌 관리자로서 본사 지침을 숙지하고 그에 따른 펌웨어 업데이트나 기술 지원 정도의 업무이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래서 지각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Max가 딱히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Max는 나에게 우리 팀의 '능력자'로 각인되었다.


3. 사람보다는 기술을 다루는 게 더 쉽다.

'문사철'의 한 과를 전공한 인문대생으로서 내가 직장을 가질 수 있는 영역은 제한적이었다. '영업' 아니면 '마케팅'. 정말 선택지가 두 가지뿐이었냐 물으면 대학교 3학년 때까지 언어학, 문학 수업을 듣던 나에게는 진짜 그 두 가지뿐이었다. 근데 그러던 와중에 해외 법인으로 인턴을 갔으니 주변에는 저 두 가지 업무를 가진 사람뿐이었다. '영업'과 '마케팅'이라는 두 가지 카테고리를 묶는 단어가 '관리자'였는데 매주 내가 들어간 주간회의에서 영업에 학을 떼게 만드는 시간을 마주하게 되었다. 무릇 '영업'에서의 '관리직'이란 '영업직'의 사람들을 어르고 달래고 쪼아서 그들이 물건을 팔아오게 해야 하고, 그들이 제출한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에 끊임없이 '왜'를 물어야 했다. 우리 팀의 Sales(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왜 자신이 그 수치를 달성하지 못했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았는데 그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두 직군 모두에 감정 이입을 하다 보니 둘 다 하기 싫은 느낌이 강했졌다.

Sales들 입장에서는 팔아야 하는 물건의 브랜딩, 마케팅 등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팔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시장에서 브랜드 가치가 높으면 가격이 어떠하든 팔리기 마련 아닌가...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즉, 자신이 발로 뛴다 한들 '시장에서 고객들에게 외면당하는 제품을 억지로 팔 수는 없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물량이 어떻고 거기 프로모션이 어떻거 저떻고 이야기를 듣다 보면 결국은 '못 팔았다'로 귀결되는데 '그게 과연 Sales의 역량 부족일까?'에 대한 해답은 '글쎄'였다.

그러한 Sales들을 어떻게 해서든 관리해야 하는 입장인 팀장님을 볼 때도 마냥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문화도 다르고 좀 한다 싶으면 이직하고 사정을 봐주면 또 목표치에서 멀어지고. 해외 법인이다 보니 나라별 Sales들을 콘퍼런스 콜을 통해서 매주 같은 시간에 연락을 하곤 했는데 그 매주 같은 시간이 빈번하게 어겨지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나는 '와 진짜 세상에서 사람 다루기가 제일 힘들구나'라는 생각을 되뇌었다.


그래서 나는 '개발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한국에 귀국한 2016년 가을, 한창 4차 산업혁명이다 뭐다 하면서 IT에 대한 관심이 가기 시작했고 컴퓨터로 이것저것 만드는, 내가 인턴 생활하면서 보았던 Technician Manager처럼 능력만 있으면 출퇴근도 자유로운 그런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꿈에 한껏 부푼 채로 '개발자'가 되기 위해 한국에서 새로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2년의 나는 현재 4년 차 개발자가 되었다. 개발자라기엔 거창하고 또 개발자가 아니라기엔 딱히 나를 표현할 만한 단어가 없는 애매한 상태의 주니어 개발자이다. 6년 전의 대학교 3학년의 내가 꿈꿨던 모습과 달라진 점을 하나씩 돌아보며 개발자의 생태에 좀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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