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 그 짧은 순간에 덮쳐온 공포
시작은 작은 점이었다. 휴무일이라 방청소에 열중하다가 집중이 흐트러졌다. 자연스럽게 손은 핸드폰을 향했다. 적당히 웹툰 한편 골라 읽었다. 아, 여주는 언제 똥차 언제 버리지? 이런 생각을 하며 자연스럽게 결제를 진행했다. 몇 편 봤을까? 화면에 작은 점이 웹툰을 보는데 방해가 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으레 있는 햇빛을 보고 난 다음 생기는 잔상이나 눈 속 먼지가 얼핏 보이는 줄 알았다. 그래서 어련히 사라지겠지 하고 계속 웹툰을 이어서 봤다. 그런데 그 점은 사라지지 않았다. 약간 색이 다채로운 것이 손에 기름기가 묻어있던 게 스마트폰 화면에 묻었나? 싶어서 서둘러 화면을 슥슥 닦았다.
공포는 그 순간부터 천천히 나를 덮쳐왔다.
화면 전체를 닦아내도 그 작은 점은 사라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말풍선을 끊어 먹던 작은 점은 내가 의식하기가 무섭게 작은 글씨 하나를 집어삼켰다. 아닐걸? 아닐걸? 이런 심정으로 화면을 껐다. 음, 잘 보이네. 그리고 눈에 피로를 너무 줬다 생각해 후다닥. 안경을 찾아 위치에 안착시켰다. 그래, 안경 안 쓰고 화면 봐서 그래. 그렇게 나를 납득시켰다. 여주인공은 아직 똥차를 버리지 않았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렇게 스마트폰을 다시 켜 웹툰을 읽어나가려 했다.
화면의 작은 점은 어느새 손톱모양으로 그 크기를 키웠다.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억지로 화면을 올렸지만, 이내 포기했다. 집중하기 어려웠고 '스마트폰을 본다.'라는 게 눈에 좋은 일은 아니었으니까. 애써 무시했다. 그리고 배고파서 그래, 배고파서. 허기가 져서 그런 거야.라는 생각으로 부엌으로 향했다.
불을 켜지 않아도 부엌 내부는 잘만 보였다. 아주 작은 글자를 봐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 딱히 이상함을 눈치채긴 어려웠다. 커피포트에 물을 채우고 버튼을 눌렀다. 잠깐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해 거울로 향했다. 양쪽 눈 중에서 어느 쪽이 문제인가 싶었다. 왼쪽눈을 감고 오른쪽눈을 봤을 때 일단 오른쪽 눈에는 이렇다 할 이상이 없어 보였다. 오른쪽눈을 감고 왼쪽눈을 봤을 때, 그때 이상하게 왼쪽 눈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보였나? 시간이 흐른 지금 그 상황이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리고 손을 뻗어 내 손가락을 보는데, 5개가 인식이 안 되는 것만 같았다.
그저 무서웠다. 작은 점이 커졌듯 이러다가 안 보이게 되는 거 아닐까?
그러다 보니 최근 있었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한 달 전에는 차체의 높이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해 있는 힘껏 차 프레임에 머리를 박았다.
불과 일주일 전에는 작은 교통사고가 있었다.
후유증일까? 짚이는 게 많아서 공포는 더 현실감을 갖추어 갔다.
혹시라도 안구가 건조해서 그런 건 아닐까? 무서움을 달래기 위해 그냥 소리 내서 울었다.
아니야 아니야. 하고 반복하며 웅얼거렸던 거 같다.
눈을 지압하다가 내 상태를 정확하게 판단해야 했다. 크리넥스. 눈앞에는 최근 주문한 휴지 더미가 눈앞에 있었다. 나는 그곳에 쓰여있어야 할 글자가 '크리넥스'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눈에 '크'는 보이지 않았다. 무서워서 고개를 돌려 다른 글씨를 찾아 헤맸다. 며칠 전 대전에 다녀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성심당 쇼핑백이 보였다. 그곳에는 '나의 성심당'이라는 글자가 겹치지만 보였다.
탁.
물이 다 끓었다는 신호가 들려왔다. 그 신호를 무시하고 화장실로 향해 거울을 바라봤다. 십자모양으로 내 얼굴을 나눈다고 했을 때, 1 사분면 그러니까 왼쪽 상단이 잘 안보였다.
피곤해서 그래, 배고파서 그래. 스스로를 달랬다. 일단 한숨 자보자. 배고플 수도 있는데 자야 하니까 라면은 먹지 말고 젤리 몇 개를 입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침대에 몸을 뉘었다. 그 순간 이런 현상이 흔한 현상이기를 바라면서 스마트폰을 두드렸다.
'갑자기 시야 일부분이 안 보일 때'
이렇게 타이핑을 하려고 했는 데, 그 순간 왼손 엄지가 눈에 안 들어왔다. 스마트폰 화면 전체가 인식은 되었지만 모든 게 잘 보이는 상황은 아니어서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글을 집중해서 읽으려고 했지만 보이지 않는 엄지가 계속 신경 쓰였다.
상황을 애써 무시하고 30분만 잠자고 일어나기로 결심했다. 시간 알람을 맞추기 위해 화면을 터치하면서 엉뚱한 곳을 터치한다. 무서웠지만 알람을 맞추고 눈을 감아버렸다. 입에선 젤리가 남긴 콜라향이 감돌았다. 얼마나 지났을 까? 고개를 빼꼼 내밀고 왼손을 들어 올렸다. 5개. 내 손가락이 한눈에 들어왔다.
핸드폰을 들어 올려 알람을 끄고 화면을 봤을 때 모든 게 잘 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안 보이게 될 수도 있다는 공포'에서 약 40분 만에 벗어났다.
그 뒤는 평소보다 강하게 편두통이 찾아왔다. 진통제를 먹고 병원으로 향했다. 신경외과에서도 안과에서도 이상 없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빈약한 통장에서 검사로 큰돈이 빠져나가긴 했지만, 그 돈으로 안심을 살 수 있다면 그만큼의 값어치는 한 셈이다. 상황이 끝나고 다시 집에 왔을 때, '나의 성심당' 앞에 '나의 도시'라는 글자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야 했지만.
그날 밤은 잠들기가 조금 무서웠다. 갑자기 자고 일어나면 안 보이는 게 아닐까 해서.
지금 생각해 보면 시야가 좁아진 것일 수도, 초점이 잘 안 맞았던 것일 수도 있다. 잠시 안 보였던 부분이 검게 보였던 것은 아니고 포토샵 도장툴을 이용한 것처럼 적당히 무언가로 채워진 기분이었다. 조금 더 찾아보니 두통이 오기 전 전조 증상으로 나와 비슷한 증상에 대해 문의한 사람도 있었다.
그 짧은 순간. 몇 달 전, 가족들과 워터파크에 간일도 떠올랐다. 물에 반사된 빛 때문이었을까? 2-3시를 넘어가자 눈이 따끔거렸던 경험이 있다. 그때 인터넷을 통해 눈도 화상을 입을 수 있단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런 '사실'을 알고 넘겼다. 어쩌면 남의 일이라고 가볍게 넘겼던 것이 살짝 후회되기도 했다.
건강이라는 주제는 나에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관심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작년 충수염 수술을 시작으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병원이 가까워지고 있다. 기껏해야 내과만 다니던 내가 입원도 하고 안과에 신경외과를 방문하게 되었다.
이렇게 30대의 시작을 티 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주 짧은 어쩌면 착각 같기도 한 10분이라는 짧은 순간을 겪은 탓일까. 다이어트 방법보다 건강하게 사는 삶에 관심도가 추가 기울었다. 휴일이라고 늘어져라 잠만 자는 삶이 아닌 유일하게 운동이 가능한 순간이니 수영장에 기웃거리기라도 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사진: Unsplash의 Vince Flem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