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의 밑으로 즐비하게 깔린 선물상자 안에서 나는 태어났다.
검붉고 차가운 철로 만든 크리스마스트리는 사방으로 뻗친 전선을 달고 송림동이란 동네에 전기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고, 트리가 서 있는 가파른 언덕 아래에는 제멋대로 던져놓은 선물상자들처럼 불규칙하게 엉성하고 비뚤비뚤한 집들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었다.
가장 가난한 남녀의 둘째 딸로 태어난 나는 한동안 확률의 실패를 그들만의 미신으로 물리치기 위하여 남자아이의 옷을 입고 남자아이처럼 꾸미고 다녀야 했다.
어릴 적 넘겨보았던 빛바랜 사진 몇 장에 나는 언제나 지나치게 짧게 깎은 머리, 남자아이의 옷차림으로 어정쩡하게 카메라 앵글 맨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그에 반해 나의 언니는 발랄한 양 갈래 머리를 하고, 혹은 붉은 색 머리띠를 얹은 생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언제나 사진의 정중앙을 차지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 미신이 주효했던지, 아니면 신이 우리 가족에게 주어진 어려움이 이미 충분했다고 생각했던지 어머니는 내 아래로 남자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 내 부모의 실패가 나로써 끝이 난 것은 그들에게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만일 내 아래로 또 다른 계집아이가 나왔더라면 그들은 무리한 출산 계획을 한 번 더 강행했을 것이고, 궁색한 살림살이는 더욱 궁색해졌을 것이다.
환영받지 못했던 나의 탄생은 한겨울 눈이 매우 내리던 아침, 담뱃가게를 겸하던 작은 쪽방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누구도 말해준 적은 없지만, 아마도 아버지는 담배를 피우며 울화를 달랬을 것이고,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 해본 적 없는 다정했던 나의 할머니는 홀로 나와 긴 탄식을 뱉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그다지 섭섭하게 생각하여 본 적이 없다.
이러한 것까지 파고들어 원망할 정도로 나의 마음은 늘 한가할 틈이 없었다.
유년기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언제나 아름다운 파스텔 톤의 장식으로 꾸며진 회전목마 같은 그림을 머릿속에 그리게 되는가? 오르골의 음색처럼 의미 없이 다정한 음악이 귓전에 울리는 것 같을까?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다.
나의 유년기는 언제나 일몰을 등에 업고 무겁고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웠던 송전탑과, 가파른 언덕의 골목골목을 알 수 없는 절박함에 뛰어 다니곤 했던 내 작은 발소리와 숨소리로 그 기억이 시작된다.
행복했다고도, 불행했다고도 말할 수 없었던 그 시절,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대부분을 길러낸 그 송림동 달동네의 기억. 그리고 가난했으나 가난을 몰랐던 나와 같은 아이들.
나는 그 기억을 다시 불러내어 써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