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란 Nov 19. 2015

송림동의 크리스마스 2

나는 가난하지 않을 기회가 있었다.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어렸던 시절에 찾아온 기회였지만 분명히 내 인생이 통째로 달라질 기회가 있었던 것이다. 내 나이 다서, 여섯 살 때의 일이었지만 아직도 토막 난 단편처럼 그 때의 기억이 머릿속에 조금 남아있다.


“명화는 저기 청대문집 가서 살라면 살 수 있어?”


그녀답지 않게 은근했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기억난다. 내가 다른 모든 것을 잊고도 이 한 장면을 기억할 수 있었던 것은,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에게 다정했던 어머니의 모습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까닭 없이 서러움이 북받쳤다. 글썽글썽한 내 눈을 보며 어머니는 무슨 착각을 했는지 더더욱 다정한 목소리로 나를 달래었다.


“거기 가면 맛있는 것도 매일 먹을 수 있고, 좋은 옷도 입을 수 있다. 청대문집 아줌마 알지? 해달라는 거는 다 해줄 거야. 명화가 가지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그 아줌마는 다 해줄 수 있단다.”


나의 어머니였던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내가 스스로의 입으로는 절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해달라고 조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다만 세상의 여느 아이들 다루듯이, 내가 원하는 것이 그 모든 아이들이 원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생각하며 나를 살살 구슬릴 뿐이었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무얼 원하는지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의 나는 더더욱 몰랐다. 왜냐하면 내가 원하는 것은 정말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누군가 나를 불러주길 원했다.

해질녘 꼬불꼬불 미로 같은 달동네의 골목골목을 홀로 누비면서, 먹물 퍼지듯 스며드는 모퉁이의 어둠을 네모나게 뚫린 쪽창에서 새어나오는 노란 불빛이 밀어내듯이, 내 마 밑바닥에 깔려있는 처절한 외로움을 쓸어가 줄 한마디 부름을 원했다.

이제 저녁을 먹을 시간이라고, 동그란 밥상의 한 구석을 너를 위해 준비해 놓았노라고 나를 찾는 한 마디를 나는 원했다. “명화야.” 라고 불러주는 그 한마디를.


아마 그녀는 평생 몰랐을 것이다. 그런 것은 넉넉한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다. 푸른 초원에 앉아 한가로운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볼 때처럼, 삶의 한 순간을 기쁜 마음으로 구석구석 놓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사람들에게나 보이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나란 존재가 마치 구부러지고 녹슨 못처럼 뜬금없이 툭 튀어 나와 모른 척할래야 할 수 없는 이질적인 무엇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세상은 모두 구부러지고 녹슬어 있었다. 그곳은 푸른 초원이 아니라 붉고 검은 모래가 흩날리고 귀를 아프게 하는 바람 소리가 가득 찬 괴로움의 세계였다. 나는 그 세계의 무쓸모한 못 한 조각이었고.

그녀가 그 못을 뽑아 다른 이에게 준다한 들 누가 그것을 비난할 수 있을까. 그것이 어쩌면 못에게도 좋을 일이라면. 나를 뽑아 초원의 어느 한 곳에 던져둔다면 필시 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나를 쉽게 발견할 것이고 나의 녹슨 부분을 닦아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아마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가 이런 대답을 했었다고 한다.


“그러면은 거기가면 내 책상도 가질 수 있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대답을 했는지 아직도 알 수 없지만, 어쩌면 막연히 나만의 공간을 원했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훗날 그 얘기를 전해주면서 어머니는 말하였다.


“눈물 콧물은 뚝뚝 흘리면서, 뜬금없이 책상을 달라고 하는데... 참, 기가 막혀서는. 불쌍하다가도 어찌나 얄미웁던지.”


그 이후의 일은 단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청대문집에 실제 가서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전해들은 바로는, 동네 아주머니의 손에 이끌려 나는 송림4동에서 가장 큰 대문을 가진 그 집으로 들어가 살게 되었고, 열흘이 못되어서 다시 달동네의 좁은 쪽방으로 돌려보내졌다고 한다.


너무도 짧았던 내 인생 첫 번째 부귀영화의 꿈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송림동의 크리스마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