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그리워 하는 어른

꿈 속의 등장인물들

by 못속

꿈에 온갖 사람들이 다 나온다.

싫어하는 사람들보다는 내가 미련을 가지거나

어쩌다가 관계가 틀어진 사람들

시간이 지나서 어쩔 수 없이 멀어진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관계에 미련이 남아서 그러는 걸까.

그런 사람들과 다시 친해지거나

마음을 풀고 잘 지내는 꿈을 꾸다가 깨면

하루 종일 기분이 바닥에서 머문다.

사실은 다시 모두와 잘 지내고 싶은데

꿈에서 깨고 나면 그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런 꿈은 며칠을 마음 깊은 곳에서 시린 기운이 들게 한다.


사람.

참 복잡한 존재다.

한낱 꿈 하나에도 이렇게 얽매여서 영향을 받는다.

사람, 특히 관계에 대한 생각 끝엔 늘 엄마에 대한 생각이 남는다.


엄마는 늘 인연에 연연해 하지 않았다.

시골에서 태어나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해

애초에 그리워할 것이랄 것도 없어서

정을 오래 붙인 곳도 없었다.

고향의 사람들을 제외하곤 전부 지나가는 사람일 뿐.

고향 친구들도 뿔뿔이 흩어져 모두 객지로 나가있으니

명절 때도, 부고가 있을 때도, 경사가 있을 때도

쉽게 만나지 못했다.


엄마가 돈을 벌지 않으면 공부를 할 수 없는 동생들이

시골집에 줄줄이 셋이나 있었다.

시골 산 구석에 있는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했다.

시간과 돈이 1년, 3년, 5년..

엄마에게 남아있던 인연들을 모두 가져갔다.

살아내기 바빠서 모두 모른 척하고 덮어두고 지냈더니

아무도 남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키워내고..

은퇴에 가까워진 나이가 되어서야

뒤를 좀 돌아볼 수 있었다.

몇십 년 만에 참석한 동창회에서

가장 존경하던 은사님이 스스로 세상을 등진 뒤

10년도 더 지났다는 걸 그때야 알게 되었다.


엄마는 슬퍼했다.

남아있는 친구들도 거의 없이

자주 만나는 사람은 이모뿐이라도

늘 심심하지도 그립 지도 않다고 말했던 엄마였는데

친구들이 있었다면 뒤늦게라도 장례식장에 오라는 말을 들었을 거라고

선생님 초상에 초라도 하나 올렸을 것이라고.

남몰래 후회도 하고 울기도 하는 것을 방문 뒤에 숨어 지켜보았다.

엄마도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아주 어릴 때의 기억이 그토록 오래 남아있었던 건 아니다.

선생님과의 어렴풋한 추억이, 곧은 사람으로 나아가게 해주었던

사제 간의 관계가 엄마의 가슴 속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남아 있었던 거다.

아무도 자세히 알지 못하는 낯선 타지에서 홀로 떨어진 것 같았을 때.

지독한 혼란을 겪을 때. 나에게도 인생의 이정표를 알려준 사람이 있었다고,

'어른' 이 존재했다고 스스로를 열심히 다독거리게 해주었을 것이다.


어른이 된다면 지나간 과거에 미련을 두지도 않고

너무 후회도 하지 않으며 과거의 인연에 슬퍼하지 않게 될 줄 알았다.

내가 가장 잘 아는 어른은 엄마였으니까

엄마가 그런 사람이니까 그런 것이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안다. 어른은 그런 게 아니라는걸.


꿈에서 옛 인연들을 잦게 만난다.

언젠가 아주 깊은 감정과 마음을 공유했던

누군가와 행복한 추억을 나눈다.

즐거웠던 한 날의 기억에 유영한다.

꿈속의 장면은 따뜻하고 아늑하고 평화롭다.


깨어나는 찰나는 누가 등장한 꿈이었든 순간적인 슬픔을 준다.

손에 쥐고 있던 솜사탕이 다 녹아버린 기분으로

이불을 정리하고, 커튼을 열고, 따뜻한 차를 한 잔 우려 기분을 달랜다.

그렇게 그냥 추억을 떠나보낸다.

그런 자신이 나약하고 바보같이 느껴질 때면

엄마도 옛 관계에 오랜 시간을 슬퍼했다는 걸 떠올려본다.


옛 인연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이 어른이라면

엄마도, 나도 아직은 어른이란 게 낯선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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