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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J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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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디 Aug 02. 2024

아직은 겁이 나니까


지난 주 월요일, 출근한 애인 집에서 늦잠 자고 나갈 준비를 하는데 전화가 왔어. 집주인 아주머니더라고. “수리 기사 아저씨가 세탁기 모델 명을 알려 달라는데, 지금 좀 불러 줄 수 있어요?” 이틀 전에 세탁기가 고장 나서 a/s를 받기로 했었거든. 밖에 나와 있어서 한두 시간 뒤에야 집에 도착할 것 같다고 했어. 남편분 시켜서 모델 명만 보고 나올 테니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 달라고 하시는 거야. 조금 머뭇대다 두 분과 같은 건물에 살고 있기도 하고, 집에 가져갈 물건도 딱히 없으니 그냥 알려 드렸어.


느긋하게 집으로 돌아와 거실 한쪽에 가방을 내려놓다가 그만 소리를 지를 뻔했어. 낮은 원목 테이블 위에 내가 애인이랑 몇 달 전에 찍은 인생네컷을 올려놨더라고. 가슴이 철렁했어. 집주인 아저씨가 모델 명만 확인하고 곧장 나갔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 집은 아주 작은 원룸이라 아저씨가 잠깐이라도 둘러봤다면 분명 발견했을 위치였거든. 아무리 평소에 과묵한 아저씨라도 남정네 둘이서 끌어안고 뽀뽀하는 사진을 봤다면 아주머니한테 아주 재미난 걸(혹은 역한 걸) 봤다며 얘기했을지도 몰라. 그럼 아주머니는 내 앞에서 다른 세입자들 흉보듯 그들에게 내 얘길 전할 게 다분하고, 이윽고 내가 게이라는 사실이 오피스텔 사람들한테 퍼져 기피 대상으로 전락하는… 그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문득 전날 밤 애인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어.


우리는 같이 살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어. 애인은 게이 커플인 우리가 같이 살기 위해 거쳐야 할 관문 중 부모님에게 커밍아웃하는 게 가장 두렵다고 말했어. 다른 난관들을 다 넘어선대도 그것만큼은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그래서 어쩌면 우리가 같이 살더라도 부모님에게 나를 ‘친한 형'이라 속이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지. 내 표정이 한껏 암울했는지 애인이 그러더라고. “근데 어쩌면 엄마가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몰라.” 얼마 전 본가에 갔다가 전 애인이 준 편지들을 넣어 둔 상자가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됐는데, 왠지 어머니가 방을 정리하시다 발견하곤 버리거나 다른 데 뒀을 것 같다는 거야. 그러게 그딴 걸 왜 여태 가지고 있었니…라고 묻는 대신 말했어. “다른 데 뒀는데 네가 까먹은 거 아냐? 보셨으면 말씀하셨겠지.” “그런가…” 


집 주인 부부에게 들통났을지도 몰라 전전긍긍하고 나서야 애인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뒤늦게 알겠더라고. 애인에게 전화를 걸어 어제 내가 너무 가볍게 말한 것 같다고 사과했어. 개의치 않아 하는 애인에게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지. “근데 정말 어떨 것 같아? 어머니가 그 박스를 발견하셨다면.” “글쎄… 잘 모르겠어. 내가 말하는 거랑 들키는 거, 둘 중에 뭐가 더 나은지.” 


잠시 생각해 보았어. 만약 애인과 찍은 인생네컷을 집 주인이 아니라 우리 엄마가 발견했다면, 엄마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울었을까? 아님 기절했으려나? 그렇게 아들이 게이임을 뜻하지 않게 알게 되는 것과 아들의 입으로 천천히 듣는 것 중 무엇이 엄마에게 덜 고통스러울까? 둘 중에 ‘더 나은' 게 있긴 할까? 


나는 가족 중 누구에게도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어. 가까운 친구들한테는 다 말했는데(그 과정에 관해서도 할 말이 참 많아), 가족한테 얘기하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일 같더라. 너는 어때? 가족들은 네가 이쪽이라는 걸 알아? 네가 미국에서 남편과 결혼한 것도? 식 올릴 때 그 자리에서 너를 축복해 주셨니?… 미안, 내가 과했지. 그중에 겪어본 게 아무것도 없어서 많이 궁금한가 봐. 


한 2년 전쯤, 심리 상담을 받은 적이 있어. 상담사 선생님의 집요한 질문들에 술술 토하며 나 자신에 대해 참 많은 것을 알게 됐어. 그중 하나가 내가 가족들에게 깊은 죄의식을 느낀다는 거였어. 가족의 행복을 내가 망칠 것 같다는 다소 비약적인 죄책감을 안고 있더라고. 내가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하거나 성 정체성을 들키는 순간, 화목한 우리 가족의 뿌리 같은 게 흔들릴 거라는 믿음이 무의식에 단단히 자리 잡았다는 걸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며 알게 됐어. “가족들이 생각보다 잘 받아들일 수도 있잖아요.” “...그러게요.” 선생님이 넌지시 던진 말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사실 그 뒤로도 내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 나는 여전히 가족에게 커밍아웃하는 게 두려워.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다 사랑하는 ‘이성'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 낳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게 인간사 최고의 미덕으로 여겨지는 집에서 내가 실은 게이라고 선전포고하는 건… 잔잔한 호수에 돌이 아니라 북한산 자락을 던지는 일일 테니까.


나한테 커밍아웃은 약간 중독적인 면이 있는 것 같아. 누군가에게 커밍아웃을 했는데 수월하게 받아들여지면, 그 사람과 있을 때 느끼는 편안함과 나다움과 자유로움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져서 다른 사람에게 또 하고 싶어지거든. 최대한 덜 꾸민 나로서 존재한다는 게 얼마나 편한지 알아버렸으니까. 내가 이쪽인 걸 말할 수 없는 관계 안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부자연스러움도 딱 그만큼 커져 버렸어. 그래서 가족들과 만나는 자리도 점점 불편해지고 있지. “여자 친구는?” “결혼은 언제 하게?” 제발 좀 그만 물으라고 신신당부한 질문들을 엄마 아빠는 시도 때도 없이 해. 나는 아무 타격 없다는 듯 굴지만 속으로는 숨통이 조금씩, 천천히 조여 오는 걸 느껴. 이러다 언젠가 터져 버리기라도 하면 영영 가족들로부터 도망치진 않을까 두려울 때도 있어. 그날이 오기 전에는 얘기해야겠지? 그래야 할 텐데….

 

Y라는 친구가 있어. 그 애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우리랑 같은 이쪽인데(사실 너도 아는 애야. 누군지는 비밀에 부칠게), 워낙 솔직한 데다 불편한 걸 딱 싫어하는 성격이라 웬만한 지인들은 물론 부모님에게까지 커밍아웃을 했어. 특히 어머니에게 커밍아웃한 지는 벌써 8년이 지났나 그래. 그 시간을 통과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놀라곤 해. 두 사람의 관계가 전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넘어간 것 같거든. 대화의 폭이나 서로를 향한 이해심은 그전과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넓어졌고, 함께하는 상황의 다양성과 자유로움 역시 엄청나게 커졌어. Y의 남자친구와 셋이서 식사를 하거나 놀러 갈 정도로. 그런 변화를 들을 때마다 매번 놀라는 나에게 Y는 말해. “어머니한테라도 말하는 거 어때? 어머니는 무조건 받아 주실 거야.” 만에 하나 엄마가 내 고백을 못 받아들이고 나를 내친다면, 그건 나 없이 살아야 할 엄마에게 더 손해일 테니 결국에는 받아줄 거라는 진심 섞인 우스갯소리로 내게 용기를 주기도 했지.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좀 주책스럽지만, 엄마는 나를 너무 사랑하거든. 엄마는 서른 넘은 나를 아직도 “우리 애기”라고 불러(부끄럽다). 종종 식당이나 카페에서도 그렇게 불러서 내 얼굴을 시뻘겋게 만들기도 해. 그러지 말라고 하면서도, 나는 속으로 은근히 기뻐해. 내가 아직 엄마의 아기라는 게, 그 변함없음이 내가 사는 가장 큰 이유기도 하거든. 워낙 친구 같은 사이라 내가 엄마라는 호칭 대신 버릇없이 이름을 부르면 화내기는 커녕 “네 오빠.”라고 응수해서  나를 웃겨. 그러다가도 내가 짜증을 내거나 화를 잔뜩 내면 “지랄이야…” 하고 다 들리게 읊조려서 나를 기어코 또 웃게 만들지.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내게 전화나 카톡으로 “잘 잤어?” “뭐 해?” “밥은?” 하며 질문 폭격을 날리고, 본가에 가면 내가 없어서 심심하다며 “나중에 엄마랑 같이 살 거지?” 하고 물어. 도망치는 상상을 하는 내 속도 모르고, 무지 천진하게.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결국엔 받아줄 엄마라는 걸 아는데, 그런 엄마한테만큼은 말하고 싶은데… 여전히 주저하게 되는 건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내가 엄마를 사랑하기 때문이겠지. 너무 사랑하는 탓에 조금이라도 멀어질 가능성을 피하고 싶기 때문일 거야. 이런 내 속도 모르고 엄마는 전화를 걸어 눈치없게 물어. “어디야? 누구랑 있어? 설마 여친?” 10년째 없으면 알아서 눈치 챌 만도 할 텐데!


근데 있잖아, 얼마 전에 엄마랑 연극을 보러 갔는데 이런 일이 있었어. 공연이 시작되기 전까지 극장 안 카페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데, 엄마가 갑자기 나한테 이런 얘길 하더라고. “엄마 친구 아들이 너처럼 여자 없이 지낸 지 꽤 됐나 봐. 그래서 친구가 아들한테 그랬대. 혹시 남자 좋아하는 거 아니냐고. 너무 웃기지 않니? 오죽 답답했으면 아들한테 그런 질문을 해!” 웃기기는커녕 울고 싶어지는 얘기에 어찌 답해야 할지를 몰라 나는 황급히 화제를 돌렸어.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져 있는데도 등에서 땀이 나더라.


엄마는 갑자기 왜 그런 얘기를 꺼냈을까? 혹시, 마침내 눈치를 챈 걸까? 아님 내가 독립하고 나서 내 방을 정리하다가 애인이랑 찍은 인생네컷이라도 발견한 걸까? 그래서 내게 신호를 보낸 걸까? 그렇다면 이건 기쁜 일일까, 슬픈 일일까?


<보이프렌드>라고, 얼마 전에 릴리즈된 넷플릭스 연애 프로그램이 있어. 일본 남자 여덟 명이서 숙소에서 지내며 사랑과 우정을 쌓아간다는 점에서 여느 연애 프로그램들과는 많이 다르지. 아무래도 이쪽 사람들(그것도 일반인들)의 사랑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귀하니까 예고편이 떴을 때부터 잔뜩 기대했는데, 지금까지 공개된 8화 중에 아직 2화까지 밖에 안 봤어. 재미가 없어서는 아니야. 엄마랑 넷플릭스 아이디를 같이 쓰는데, 혹시나 엄마가 <보이프렌드>를 시청 기록에서 보게 될까 봐 보다 말고 기록 지우고, 보다 말고 기록 지우고… 이 짓거리를 반복하다 지쳐 버렸거든. 퍽 한심하지? 속 시원하게 말해 버리면 이런 구차한 짓을 할 필요도 없을 텐데 말이야. 어쩌면 엄마랑 같이 보면서 누가 제일 괜찮은 신랑감인지 토론을 펼칠 수도 있을 테고.


여기까지 쓰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왔어. “뭐 해, 우리 애기? 밥은 먹었어?” 특유의 명랑한 말투와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나를 웃게 해. 나, 아무래도 이 천진한 목소리를 탈 없이 계속 듣고 싶나 봐. 그래서 늘 그래 왔듯, 나를 숨겨. 엄마가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변함없이, 나는 아직 겁이 나니까. 


어느 날 불쑥 용기가 자라 엄마에게 말하고 나면 너한테 꼭 얘기할게. 그로부터 서서히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나와 엄마의 이야기도. 그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이 세상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는 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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