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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셀에서 금액칸을 숨기기로 했다.

by 랑지

가을로 접어드니 청첩장이 꽤 많이 온다. 10월만 해도 우리 부부는 5개의 청첩을 받았다. 주말이면 각자 또 함께 결혼식장 다니기 바쁘다. 장례식도 한 달이면 두 군데 많으면 세 군데쯤 연락이 오는 것 같다. 중년이 된 대부분의 사람들 모습이 아닐까 싶다. 자녀의 결혼과 부모님의 장례식.

KakaoTalk_20251103_170740813.jpg 출처 : 네이버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일 년 후 친정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우리 부부는 조문 와주신 모든 분들의 이름과 금액을 기억하기 쉽지 않아 엑셀로 표를 만들어 훗날 그분들의 경조사를 챙기기로 했다. 아직 결혼식은 치러보지 않았지만 장례를 두 차례 겪어보니 슬플 때 위로해 주고 찾아와 주는 그 마음이 참 고마웠다.


누군가 모친상, 부친상, 자녀결혼 등 소식을 알려오면 엑셀에서 이름을 찾고 금액을 확인을 하게 되는데, 그때부터 우리 부부는 시험에 들게 된다. 이 사람이 이만큼 했다고?, 이 분이 이 것 밖에 안 했다고?.

물론 사람의 마음을 돈으로 환산할 수 없지만 사람의 마음은 또 돈으로 나타나는 것이라 이게 참 묘했다. 나는 참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친한 기준이 이 금액이었구나 싶었다. 일 년에 서너 차례 여행도 함께 다니고 힘들 때 위로하며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내가 생각한 기준의 금액보다 현저히 적은 금액이 나왔을 때는 적잖이 놀랐다. 요즘 시골 사는 할머니들도 이 금액은 안 하는데 싶은 금액도 보일 때는 내가 사회생활을 잘못했나 싶은 생각에 놀라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대로 해주자 싶다가도 또 너무 야박스럽기도 하고 몇 만 원 차이에 찜찜한 마음으로 나올 수 없어 더 채워 넣는다.




서로의 고민까지 얘기하는 사람은 10만 원

가끔 안부 주고받는 사람은 5만 원

그냥 인사정도만 하는 사람은 안 해도 상관없다.


요즘은 이게 국룰이라고 하던데.

하지만,

어떤 사람은 부의금이나 축의금을 예전에 갚지 못한 빚을 대신한 경우도 있긴 했다. 막냇동생이 한참 어려울 때 500만 원을 빌려줬던 기억이 가물한 시절이 있었다. 시아버지 돌아가실 때 그녀는 부의금으로 그 만한 액수를 내놓았다. 아마도 그 기간 들어온 부의금 중 최고액이었을 것이다. 또 남편은 이런 일도 있었다. 우리보다 더 어려운 고향 친구에게 300만 원을 빌려준 것이다. 나 모르게. 내가 알게 된 건 지하 셋방을 살 때였는데 여름에 물난리를 겪으며 화장실에서 물을 퍼낸 후였다. 어찌나 속상하던지 오물을 가득 채운 바가지를 던지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어쩌랴. 그로부터 30년 후 그 친구는 친정(내)아버지 장례식 부의금으로 또 그 빚을 그렇게 갚아왔다.


이렇듯 내가 낸 만큼 돌려받는 것이 경조사금액이 아닌 것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된 것이다. 누군가는 소액으로. 누군가는 거액으로. 본인이 할 수 있는 만큼 그 환경에서 할 만큼 하는 것이 최선이니까. 그래서 나는 금액을 애써 보지 않기로 했다. 나도 언젠가는 그가 낸 금액보다 더 하게 될 수도, 아니면 덜 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내부순환도로를 내려 도심으로 접어드니 차들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지하철을 이용할까 생각했지만 몇 번을 갈아타야 했고, 출퇴근도 지하철로 하는데 이럴 때라도 내 차를 이용하고 싶었다. 자가로 가면 시간도 훨씬 단축되기도 했고. 대학교내에 위치한 컨벤션웨딩홀은 북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주차장은 큰 소나무 아래 있었고 컨벤션 웨딩홀까지 조금 걸어서 가야 했지만 그 길 또한 운치가 있었다. 결혼식장을 가는 길이 이렇게 설렐 일인가 생각해 보니 함께 보는 지인들이 오랜만에 만난다는 반가움 때문이었나 보다. 마치 소녀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얼싸안고 위아래 한번 훑으며 왜 이리 이뻐졌냐는 아줌마들의 인사말을 연신 내뱉는다. 지인의 자녀 결혼식은 이렇듯 예식보다는 함께 만나는 사람이 반갑고 만나서 식사 후 커피 마시며 그간 있었던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일로 마무리된다. 경사의 축의금은 식사값도 생각 안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과 함께 옛 추억을 더듬으며 웃음꽃을 피우는 것도 좋은 일이다.


언젠가 딸이 늦은 귀가를 했기에 무슨 모임이냐고 물으니 '청모'라고 했다. 청첩장을 식사를 대접하며 전달하는 문화라는 것이다. 내가 결혼할 때만 해도 결혼을 먼저 한 후 식장에 온 사람들에게 나중에 따로 식사 대접을 하는 게 문화였는데 말이다. 시대가 변해간다. 그땐 그것이 맞고 지금은 이것이 맞는 것일 뿐.


우리나라의 결혼 문화나 장례문화를 탓할 수 없을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 또 자연스럽게 '청모'를 하듯이 간소하게 치르거나 변해가겠지. 내가 만든 엑셀의 금액은 사람을 평가하는 단위가 아닌 최소한 내가 지켜야 할 금액의 마지노선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금액이 사람을 평가하는 단위는 아니니까.


#결혼

#청첩장

#부의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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