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에 맞춰 여행해 보세요

by 랑지

혼자 제주 여행을 하겠다는 딸의 보호자를 자처했다.

작년 8월에 공짜 숙박권이 있어 제주 함덕을 다녀온 이후 반년만의 다시 제주 여행이었다.

갈 때마다 다른 모습의 제주는 겨울 낭만이 있다.


렌트한 경차가 흔들릴 정도로 부는 바람마저도 여행자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새벽에 출발해 온전히 하루를 시작하는 여행은 어딜 가나 오픈런을 시작하게 된다.


고기국수 집도 오픈전이었고, 소품샵에서 향수와 양초캔들 소품제작하는 곳도 오픈런이었다.

일찍 도착한 숙소는 제주 북쪽 바다가 광활하게 펼쳐져 바람과 함께 흰 포말을 남기며 파도가 치는 위치 좋은 곳으로 배정해 주셨다.

숙소와 연결된 노천수영장도 겨울바다와 함께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위치였다.

남원읍에 위치한 동백의 군락지는 심장 깊숙이 붉은빛이 물들어갔다.

제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보말칼국수는 환상이었다.


남편과 여행을 다닐 때면 유적지며 관광지등 찾기에 바쁜데 MZ세대들은 역시나 다르다.

정적인 여행과 관광지 여행을 비선호하는 딸아이가 예약한 커피 오마카세.

난드르라는 마을 이름처럼 생소했지만 제주의 소박한 한 마을 안에서 느끼는 색다른 문화체험이었다.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비주얼.

근육이 불거진 팔뚝으로 커피를 내리며 소소한 스토리를 풀어내는 바리스타는 내게도 젊음이 부여된듯한 착각이 들게 했다.

바리스타의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아득해질 때쯤 환상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에스프레소가 주는 각성효과 때문일 것이다.

커피 향은 오래도록 머물러 있었다.

여유로웠다.



초등학교 때 이후로 그림을 그려본 기억이 없는데 이번에는 아크릴물감으로 미술체험을 하기로 했다.

딸은 제주바다를. 나는 동백을.

조그마한 액자에 스케치를 하고 아크릴물감으로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밑바탕 컬러를 정하고 연하게 시작해서 점점 진한색으로 물들이며 집중했다.

처음 붓을 잡아보니 쉽게 그려지지도 않았고, 선생님의 지도가 있었지만 내 뜻대로 그림은 나오지 않았다.

손은 왜 이리 떨리는지 선을 그으면 그 위로 뻗쳐 나가기를 반복하다 보니 꽃잎은 점점 커져만 갔다.

중간에 그만두고 싶을 만큼 마음이 불안해졌다.

하지만 진지하게 열심히 하고 있는 딸을 보면서 나도 다시 집중해서 완성했다.

작은 꽃 하나를 완성하는데 3시간이 걸렸다.

완성된 나의 첫 작품은 처참했지만 귀여웠다.

꽃대의 색깔도 부분적으로 달랐고 꽃잎이 여러 장이 나와야 하는데 한 잎으로만 구성된 꽃처럼 보였다.


최근 제주는 외국인 관광객으로 인해 사람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내가 동백수목원과 카멜리아힐을 갔을 때도 종종 외국인들을 마주쳤다.

군산오름을 올랐을 때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가 올라오셨다.

관광객 코스는 주차장에서 10분 정도만 오르면 정상인데

현지분들은 다른 코스로 운동삼아 오르는 곳이 있단다.

북쪽의 한라산을 배경으로 연신 카메라를 눌러대는 우리 모녀를 향해

제주의 난개발에 걱정스러움을 표하셨다.

산행용 스틱을 가리키며 우후죽순 늘어나는 개발구역들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제주도도 이젠 어려워졌다며 한숨을 쉬셨다.

잠시 2~3일 정도 머무는 여행자인 우리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어떤 마음인지는 조금 알 것 같았다.

멀리 구름이 걷히는 한라산이 장엄하게 제주를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군산오름에서 바라본 한라산


이 모든 일정은 딸이 계획하고 나는 묵묵히 함께 했다.

중간중간 이제 뭐 할까 라며 묻긴 했지만 그때마다 새로운 놀(쉴) 거리를 만들어서 했다.

촌각을 다투며 동선을 세밀하게 짜야하는 지난날의 제주여행과는 완전히 달랐다.

아직도 제주는 가보고 싶은 곳이 너무 많다. 현지인들의 걱정스러움과 달리 여행자의 시선은 여전히 제주는 아름답고 머무르고 싶은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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