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서 살아보고 경험해 봐

by 랑지

딸이 집을 나갔다. 엄밀히 말하면 한 달간 고시텔로 입주를 한 것이다.

다니는 직장의 이번 프로젝트 사업체는 경기도 부천 외곽에 있는 자동차 반도체 회사였다.

거기서 5주간 업무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까운 곳에 큰집이 있긴 하지만 마음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집에서 출퇴근을 해보겠다고 했다.

출퇴근 왕복 4시간.

일주일동안 해보더니 두 손 두 발 들었다.


인터넷으로 고시텔을 알아본 후 룸투어를 함께 갔다. 딸은 맘에 든다며 바로 계약을 하고 입금을 했다.

회사 근처라 걸어서 출근이 가능한 곳이다. 일요일 오후 짐 싸들고 나갔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처음으로 집 밖에서 생활을 하게 된 딸은 무척 설레 보였다. 디퓨저를 사고 몇 가지 살림을 챙겨서 갔다.

그런 딸을 보고 나는 퉁명스럽게 한마디 했다.

" 신혼살림집이라도 차리는 것 같네"


적지 않은 나이인데도 혼자 지내는 시간을 처음 갖는 딸을 보니 왠지 모르게 울적해졌다.

울적한 이유는 고시텔 방의 크기에서 무척 놀랐다.

누우면 양 옆으로 빈 공간이 없는 침대하나.

바로 옆 화장실, 그리고 자그마한 책상이 전부였다.

방안에서도 옴짝달싹할 수 없는 크기 었다.

그저 씻고 자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용도였다.

그나마 룸 안에 화장실이 있는 것과 고시텔 전용 건물이라서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딸이 없는 월요일 아침은 적막했다.

어른들이 하는 말이 있다.

'사람은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고'


새벽부터 분주히 들리는 소리가 있다.

드라이기 돌리는 소리.

화장품 떨어뜨리는 소리.

옷가지 흩트려놓고, 놓고 간 물건 다시 가지러 오는 현관문 소리.

아침마다 머리카락 수북이 쌓인 방바닥을 훔쳐내며 하는 엄마의 잔소리.


"엄마 나 책상에 출입카드 주세요."

"엄마 나 화장대에 핸드폰 주세요."

"엄마 나 장갑."

"엄마!!"


이제 그 소리는 없다. 사람 한 명 없다고 이렇게 조용할까 싶은 날이다.

더군다나 매일 저녁 퇴근이면 저녁 메뉴를 묻는 미식가 딸이 없으니

반찬 걱정도 없다.

내가 적응할 때쯤이면 다시 짐 싸들고 오겠지만 당분간은 적막할 것이다.


길지 않은 이 시간 자녀를 떠나보내는 연습의 하나로 생각해야겠다.

언젠가 나를 떠나 독립해서(지금도 늦은 건가?) 자신의 삶으로 온전히 채워나갈 텐데

막상 그때가 되면 빈둥지증후군이 더 몰려올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이다.


결혼 전 나는 19살 때부터 독립했다. 그렇게 자취를 하며 사회인이 되었고 결혼까지도 했는데

내 자녀들은 왜 아직도 내 품을 떠나면 안 되는 것처럼 마음이 흔들릴까.

성인을 성인으로 대해주지 못한 덜 성숙한 엄마의 마음일까.


실제로 겪어보고 경험하는 삶이야말로 스스로에게 큰 자양분이 된다는 걸 나도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삶을 좀 더 적극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로 지지해줘야 한다.

그게 부모와 자식이라면 더더욱.


크리스티앙 보뱅은 《환희의 인간》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직접 경험하고 느끼는 것들은 과학이 우리에게 말하는 모든 것들보다 훨씬 커다랗다."



시기의 차이가 있겠지만 자녀들은 언젠가 부모 곁을 떠난다. 나 또한 그랬고, 내 자녀들도 그럴 것이다. 그 속에서 겪는 수많은 경험들이 우리를 성장시키고 변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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