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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지 Apr 22. 2022

소나무그림vs고구마

그림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몇 해 전 인사동을 거닐다가 우연히 눈에 띈 유화 한 점이 기억날 뿐이다. 풍경화였는데 첫눈에 확 띄었다. 전시회 한번 가보지 못하고 그림에 관심도 없던 내가 그저 그림을 보고 있어도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는 것을 알게 된 그림이었다. 가격도 비싸지 않아 살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던 기억이 난다.


지방에 있는 사무실을 매주 수요일마다 가는 남편이 갈 때마다 점심을 해결하는 국숫집이 있다. 어느 날 후루룩 거리며 먹던 국수가락을 들다 눈에 띈 그림이 하나 있었다. 조그만 오솔길이 있는 소나무 군락지를 표현한 그림이었다. 보자마자 남편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그림이었다

남편은 칼국수를 먹다가 그림의 매혹에 빠졌고 궁금하면 못 참는 성격에 주인아저씨께 그림에 대해 물어봤다. 주인아저씨는 그 지방에서 활동하고 있는 화가셨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고아원이나 지역사회에서 봉사도 많이 하신 분이란다. 의롭고 희생적인 사람을 높이 평가하는 남편의 귀에 솔깃한 상황이 그려진 것이다. 


어느 날 남편이 흥분하며 소나무 그림 얘기를 하길래 그 정도 그림이라면 전원주택 정도 되어야 어울리지 않겠냐며 무심히 지나쳤다.  예술품의 가격을 알 턱이 없던 나는 그림 가격을 넌지시 물어보고 안도를 했다.

콸콸 틀어놓고 설거지를 하는 나에게 은근슬쩍 다가와 물을 잠가주고, 사람이 없는 빈방에 불 끄러 다니는 구두쇠 남편이 그렇게 큰 금액을 주고  살 거라고 상상도 못 했다. 물티슈 한 장으로 온 거실의 먼지를 훔치는 사람이 거액을 투자한다는 건 말도 안 됐다.



퇴근해서 식사를 하던 내게 딸들과 묘한 눈치를 주고받는 낌새가 보였다. 좋은 일이 있냐고 물었다. 그 순간에도 나는 혹시나 가족들이 나 몰래 화이트데이 이벤트라도 하는 줄 알고 내심 기대까지 했다.

나란 사람 이렇게 순진하다니까. 

묘한 분위기를 참지 못한 작은 딸이 포문을 연다 "아빠가 엄마 매일 힐링하라고 그림을 샀데" 소나무 그림 얘기는 까맣게 잊은 채 듣고도 무슨 말인지 몰라서 나는 눈망울만 굴렸다. 

"그림을 샀다고?  생뚱맞게 웬 그림?" 몇 초간이었지만 난 그전에 인사동에서부터 일이 떠오르며 설마 그 그림을 샀겠나 싶었다. "그 소나무 그림? 전원주택에 걸자던 그 그림? 그거 엄청 비싸다며? 제정신이야? 미쳤어?" 남편은 애들과 내 눈치를 번갈아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더 화가 나는 건 큰 딸의 말이었다. 

"그 금액이면 엄마 명품백 하나 장만하는 게 낫겠다"며 제 아빠를 탓하며 내 속의 부아를 질렀다. 


한 번도 예술품을 사본적이 없기에 가격이 얼마라고 했을 때는 '설마 진짜 그 가격이겠어'라고 넘겼다. 그래도 남편은 그림을 포기하지 못하고 밤이면 밤마다 내게 소나무 그림의 대해 설명을 했다. 나는 그림을 사는데 10원 한 푼 내어줄 생각 없다고 엄포를 놨다. 어떻게 살까 명분을 찾던 남편은 연말정산이 나온 달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예술품이 왜 이렇게 비싼지 물음표 백만 개 정도는 되는 것 같다. 화가의 어떤 혼이 들어 있길래 그런 가격이 나오는 걸까.  얼마 전 고(故) 이건희 회장이 사회에 환원한 예술품만 2조 원어치라고 한다. 상속세 문제 등으로 여러 말이 많았지만 그림이나 고서 등 예술품은 결국 엄청 비싸게 거래가 되는 게 현실이다. 결국 그 그림은 우리 집 거실에 떡허니 걸렸다. 

사실 내 입이 문제긴 하다 소파 뒤 벽도 휑하고 티브이 뒤 벽도 휑한 우리 집에 언젠가 내가 그림이나 사진 하나 걸자고 했던 것이 남편을 발동시킨 결과나 마찬 가지다.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지인이 운영하는 마트에서 고구마 한 박스 사간다고 한다

밤고구마는 19,900원이고 호박고구마는 45,000원 이란다 나는 호박고구마로 사달라고 했다. 남편이 비싸다고 구시렁대길래 그림값만큼 호박고구마를 사 먹겠다고 했다. 오늘 저녁엔 호박고구마 먹으면서 소나무 그림을 감상해야겠다. 가슴이 막히지 않게 시원한 사이다 한병도 준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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