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과 야생동물의 경계
과거 도둑고양이라는 부정적 이름으로 불리던 (반)야생고양이는 최근 들어 길고양이라는 다소 불우하고도 친숙한 인상을 주는 명칭으로 개명되었다. 별도의 보호자(일명 주인)가 없이 혼자 인간의 주거지나 그 근방 또는 산림과 같은 야생 생태계에서 살아가는 집고양이(Felis catus) 즉, 길고양이는 고양이 애호문화의 창달에 힘입어 수많은 이들로 부터 유사 이래 최대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러한 길고양이는 유기된 개와 마찬가지로 정부의 유기동물 보호시스템이라는 우산 속에서 이른바 관리와 보호의 대상으로 간주된다. 최근에는 아깽이대란, 냥줍 등의 신조어까지 등장하며 적지 않은 이들이 길고양이에게 큰 관심을 보내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들 길고양이는 어디서 온 것인가? 이들은 정말 누가 키우다가 버린 것인가? 이 질문은 우리의 길고양이에 대한 정책을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본적인 철학과 관련되기에 그 의미가 적지 않다. 이들 길고양이를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 길고양이에 대한 정책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유사이래로 우리곁에 머물러온 자율적이며 독립적 존재라면 길에 돌아다니는 고양이를 정부가 유기동물에 준하는 수준으로 관리할 근거가 없어진다. 만일 그들이 인간과 함께 생활하다 버려지거나 탈출한 존재라면 유기동물의 관리범주로 완벽하게 편입되어야 하는 학술적 당위와 근거가 마련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그런 동물들이 인간 또는 자연생태계에 위해를 가하는지의 여부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선 길고양이에 앞서 유기동물 관련 정책의 주된 대상종인 개의 경우를 살펴보자. 개는 고래로 인간과 함께 생활해 왔다. 늑대로부터 갈라져 나온 어떤 시점부터(개의 진화 및 가축화 시점과 관련해서는 논란과 이견이 많이 존재한다) 개는 인간과 함께 였고 인간은 개의 생존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인간이 개를 가축화 시겼는지 개가 스스로 늑대에서 개로의 길을 선택했는지는 논쟁의 대상이지만 분명한건 현대 사회의 개는 거의 대부분 인간의 도움이 없이는 생존이 현저히 곤란하며 보호자가 없는 개는 불과 1세대 이상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어렵다. 심지어 개는 인간에게 심대한 위협이 될 여지도 있다. 이런 이유로 보호자가 없는 개는 유기 내지 방치된 존재로 인간의 재관여가 필수적이라는 논리가 성립하는 것이다.
그럼 이번에는 고양이의 경우를 살펴보자. 도심이건 농촌이건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길고양이(해외에서 도입된 육종의 결과물인 품종 고양이는 논외로 치자)는 대략 1만년 전부터 유럽 남부와 아프리가 북부 등에서 서식하던 Felis silvestris 라는 소형 고양이과 동물을 조상으로 두고 있다. 이 소형 고양이과 동물은 반사막지대에서 서식하며 작은 설치류나 조류 등을 주식으로 삼았다. 그러던 중 영농기술을 발전시킨 인간의 주거지 근처에서 떨어진 낱알이나 저장해둔 곡식을 먹기 위해 설치류가 모여들자 이들을 잡아먹을 목적으로 인간의 주거지 근처로 접근하게 된다. 이것이 인간과 고양이의 첫 만남이다. 하지만 개가 적극적 가축화의 대상이었던 것과 달리 고양이는 최근까지 가축화의 대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인간의 필요에 따라 여러 시대에 걸쳐 고양이는 인간의 생활 속으로 깊에 들어왔으나 결코 개처럼 인간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지는 않았다. 현재 우리나라에 서식하고 있는 길고양이들은 이러한 고양이들의 후손이다. 이런 고양이들은 개와 달리 집이라고 하는 울타리 내에서만 살아온 적이 거의 없다. 아마 순수하게 집안에서만 살아가는 고양이가 등장한 것은 불과 20년 내외의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람이 돌보는 고양이라 할 지라도 중성화의 개념이 없었던 80-90년대까지는 고양이란 집안에서 키우는 동물이 아니었으며 자기가 오고 싶을 때만 와서 밥을 먹고 다시금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는 방랑자와 같은 생활 패턴을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물론 인간은 고양이의 교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자유로운 교배를 통해 태어난 새끼고양이들은 보호자에게 의탁하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고 집이나 보호자가 없는 삶을 영위하기도 했다. 현재 우리가 키우고 있는 별다른 품종이 없는 고양이들은 불과 한두 세대 전만 하더라도 길고양이인 경우가 태반이었으며 사람이 키우는 고양이라 할지라도 개와는 달리 거의 완전하게 자유로운 삶을 누렸던 것이다. 또한 사람이 키우던 고양이라도 버려지거나 스스로 사람을 떠나면 큰 무리없이 야생의 삶에 적응하곤 했다.
정리하자면 지금 우리 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길고양이라 불리는 존재는 이른바 유기견이라 불리는 존재와는 확연히 다른 길을 걸어 왔으며 본질적으로 매우 상이한 존재이다. 또 한가지 중요한 측면은 바로 고양이로 인해 인간이 입을 수 있는 위해의 정도다.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인 늑대의 후예인 개는 인간에게 언제든지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며 동시에 심대한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반면에, 중간단계의 포식자에 불과한 고양이는 인간을 공격의 대상이 아닌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기에 선제적으로 인간을 공격하고 신체적 위해를 가하는 것은 애초에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는 위에서 간략하게 진화와 인간에 대한 위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길고양이를 살펴보았다. 길고양이는 개와는 확연히 다른 존재이며 개에 준하여 유기동물로 관리하고 통제하는데에는 분명 한계와 제약이 있다. 이 글에서 정책적 대안을 논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고양이 애호가의 증가는 길고양이의 증가를 불러올 것이 자명한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길고양이와 관련된 여러사항을 논의하고 길고양이와 인간이 모두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이들이 먼저 움직이지 않는다면 현재의 유기견대란과 같은 상황이 길고양이 더 나아가 고양이 전체에게도 발생할 것이다. 지혜로운 준비와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