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합의에 따라 오늘의 승자를 발표 하겠습니다!
준서는 무척 애교쟁이입니다. 궁디를 실룩실룩하며 막춤도 잘 추고, 언제나 우릴 웃길 준비가 되어 있는 친구지요.
엄마니까, 저는 준서를 제법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가끔은 헉하고 놀라게 될 때가 있어요.
바로 ‘사회적 합의’라는 단어를 썼던 2년 전 일입니다.
남편은 종종 준서에게 묻곤 합니다.
“준서야,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엄마!”
앗싸! 저를 향한 준서의 충성스러운 사랑의 맹세는 언제 들어도 기분 째지게 좋습니다. 역시 우리 준서와 저는 정서적으로 끈끈하게 잘 연결되어 있다니까요. 하지만 남편의 살짝 실망한 표정을 보자, 조금은 미안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뭐, 이 세상 사랑은 엄마로부터 시작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남편은 또 어김없이 묻습니다.
이번엔 아재스런 개그까지 동원해, 아이를 유혹해 봅니다. 그래봤자 백전백패가 뻔한데, 이 남자 포기를 모릅니다.
“준서는 아빠 배 아파 낳은 아빠 아들이지? 그러니까 아빠가 더 좋지?”
“아니, 엄마가 배 아파서 낳았잖아. 아빠는 그것도 몰라? 남자가 어떻게 애를 낳아!”
둘은 그렇게 옥신각신 깔깔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준서가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사회적 합의에 따라, 아빠가 더 좋아.”
순간 저는 속으로 외쳤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그때 준서는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사회적 합의’라는 그 어려운 단어를 알고 쓰다니요. 혹시 준서가 언어의 천재였던 걸까요?
결론은 아쉽게도 천재 아니였습니다...
그냥 친한 동네 누나에게서 배운 거였습니다.
“아빠가 물으면 아빠가 좋다고 하고,
엄마가 물으면 엄마가 좋다고 해.
둘 다 동시에 물으면 둘 다 좋다고 하면 돼.
엄마 아빠 사이에서 갈등을 줄이려면 이렇게 해야 해~
요즘 아이들 레벨이 이정도입니다.
우리 부모들이 더 분발해야겠습니다.
세상살이 요령도, 애들이 더 빠를 수 있어요!
이렇게 우리 부부를 들었다 놨다 하는 준서에게 저는 또 하나의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준서야~ 귀욥쌉살이야~”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란 단어를 좋아하는 엄마의 취향대로 지어 봤습니다.
준서는 귀여워서 달콤하지만, 가끔 이렇게 뜻밖의 쌉싸름한 매력도 느끼게 해주는 친구니까요.
오늘도 준서의 어록 한 조각을 기록해 둡니다.
내일은 또 어떤 말로 우리를 들었다 놨다 할지, 기대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