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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고립을 넘어,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꿈꾸며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읽고

by 샐리

홀로 남겨진 아이


외로움에 떠는 소녀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카야, 델리아 오언스의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주인공이다. 미국 남부 노스캐롤라이나주 아우터뱅크스의 외딴 해안 습지에, 그녀는 가족과 살았다. 처음에는 부모님과 다섯 형제 모두 함께였지만,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가족들은 하나둘 떠나 버린다. 가끔씩 집에 들러 카야에게 푼 돈이나마 던져주던 아버지까지 영영 돌아오지 않자 결국 열살 카야만 남았다. 아동 보호국 직원이 찾아오지만, 카야는 숨어버렸다. 그저 이른 새벽 강가에서 홍합을 따고, 물고기를 낚으면서, 가족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더 크면 너도 이해할 거야
카야를 놔두고 떠나던 막내 오빠가 말했다. 카야는 어리다고 바보인 줄 아느냐고 악을 쓰고 싶었다. 어째서 아무도 나를 데려가지 않은지 궁금했다.
P. 25


카야는 집에서 가장 힘이 약한 존재였다. 그래서 더 보호받아야 했는데 어째서 ‘친절한 설명도 없이’, ‘무심히’ 남겨진 걸까? 카야는 엄마의 립스틱을 바르고, 옷장을 열어 엄마의 원피스를 꺼내 입고, 남겨진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다시 돌아올 엄마를 기다리며, 매일 밤 포치(현관 마루)에서 잠을 들었다.



엄마는 다시 돌아올까요


습지에는 새끼를 남겨두고 떠나는 암컷들이 있었다. 카야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자신을 두고 떠난 엄마를 떠올렸다. 더 이상 먹이를 구하지 못해 모두의 생존이 어렵거나, 어미가 죽음을 앞둔 경우에 그랬다. 카야는 그렇게 습지 안에서 자연의 이치를 배우며 성장해 갔다. 그리고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습지 생물들을 그리고 표본을 수집했다.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편집장은 그녀가 그린 그림과 연구 기록을 책으로 출간했고, 아우터뱅크를 대표하는 저서가 되었다.


어느 날, 그 책을 우연히 본 막내 오빠가 카야를 떠올리고 찾아왔다. 그는 오랫동안 어린 동생의 생사를 외면해 온 죄책감을 고백하며, 엄마의 부고 소식도 전했다. 카야는 막내 오빠가 돌아와서 반가웠다. 그러나 엄마가 이십 년 넘게 살아 있었음을 알게 되자, 기쁜만큼 절망을 느꼈다.


‘엄마, 왜 나를 남겨두고 떠났어요? 왜 내게 다시 돌아오지 않았나요?’

카야가 엄마에게 묻고 싶었던 간절한 질문은, 습지의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우리 엄마


우리 엄마도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 문득, 우리 모녀는 어떤 사이였을까 되돌아본다. 인제 그만 잊어도 되는 일이 떠오른다. 보통 미취학 시절의 일은 다 기억 못 한다던데, 나는 엄마가 나를 두고 떠났던 짧은 일 년이 왜 이렇게 또렷한지 모르겠다. 엄마는 여섯 살이던 나를 외갓집에 맡기고, 두 살 위 오빠만 데리고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갔다. 한나절만 기다리면 되던 엄마가, 이제는 밤이 되어도 오지 않았다. 내가 남겨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할매, 엄마는 언제 오노?”

외할머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하루에도 열댓 번씩 물었다. 엄마는 ‘열 밤 자면 온다.’ 했고, 그 열 밤이 지나면 새로운 열 밤이 시작되었다. 엄마의 오랜 부재는 나를 화장실도 가리지 못하고, 소리도 듣지 못하는 아이로 만들었다. 외할머니가 그 소식을 엄마에게 알렸는지, 마침내 엄마가 왔다. 나는 엄마 손을 꼭 붙들었고 새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함께 올랐다.


마음의 상처는 삐뚤어진 감정으로 자랐다. 나는 엄마에게 툭하면 짜증을 내고, 엄마의 잘못을 사사건건 잡아내서 무안을 주는 나쁜 딸이 되었다. 내가 정말 원했던 것은 엄마의 품인데, 정반대로 엄마와 더 멀어졌다. 결국 나는 가족과 함께 있어도 혼자가 되었다. 고립은 다시 어린 시절의 상처를 헤집는 악순환을 이어갔다.

원인이 해결되지 않으면 마음의 고통도 끝나지 않는다. 엄마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왜 나만 놔두고, 오빠는 데리고 이사 갔던 거야?”

그때부터 엄마의 목소리는 흐려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 지역으로 발령 나서 그랬지. 오빠는 국민학교 가야 하니까 데려갔겠지… 안그렇겠나…”


엄마는 중학교 교사였다. 그렇게 똑똑한 사람이 십 년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나는 인정할 수 없다. 나는 엄마의 유별난 아들 사랑을 묻는다. 자식 둘을 왜 똑같이 사랑하지 않은 건지, 왜 엄마는 사랑의 낙차가 그렇게 큰지 말이다.


“다 지난 일이야. 다 큰 애가 할 일도 참 없다. 왜 엄마한테 젖이라도 달라고 하지.”

우리는 이런 식의 대화를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엄마가 나를 두고 떠났던 이유는 결국 듣지 못했다. 나도 지난 일을 다 잊고, 엄마를 마음껏 사랑했다면 내 삶은 얼마나 더 충만했을까. 끝내 화해 하지 못한 채, 나는 엄마의 영원한 부재만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생존을 위한 선택


마을 사람들은 습지에 홀로 남은 카야를 더욱 외롭게 했다. 사람들은 그녀를 ‘마쉬 걸(습지 쓰레기)’이라 부르며 조롱했고, 그녀에 대해 터무니없는 소문을 퍼뜨렸다. 카야는 거의 성인이 되어, 가장 예쁜 아니가 되었을 때, 뜻밖에 그 지역에서 가장 잘 생기고, 인기 많은 체이스와 연인이 되었다. 하지만 자상하고 다정했던 남자친구는, 마을 사람들 앞에서 카야와의 관계를 부정했다. 심지어 다른 여성과 몰래 약혼까지 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카야는 상처를 받고, 체이스를 피해 달아났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마주친 체이스는 카야에게 폭력을 쓰며, 다시 만날 것을 강요했다. 그리고 그녀를 뒤쫓아 습지를 뒤졌다.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다고 느낀 카야는 암컷 반딧불처럼, 체이스를 유인해 아무도 모르게 살해하고 만다.


자연의 생존 법칙은 단순하다. 반딧불 암컷 중 일부는 다른 종의 반딧불 수컷을 짝짓기 신호로 유인한다. 수컷이 그 빛에 홀려 다가가면 잡아먹는다. 살인은 인간의 윤리 기준으로는 범죄다. 그러나 자연의 관점에서는 생존을 위한 본능이자 전략이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서 자란 카야가 체이스를 죽인 일도 복수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 카야의 행동을 전적으로 지지할 수는 없지만, 체이스는 자신의 악행 때문에, 결국 사라질 운명이었을 것이다.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이용하고, 책임 없는 관계의 대가는 반드시 돌아오니까 말이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어딘 가요


책의 뒷편에 보면, 작가의 해석이 나온다. 작가는 이 책을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라며, ‘고립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그려내고 싶었다고 했다. 고립은 사람을 외롭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며, 생존조차 위태롭게 만든다. 우리 인간은 심리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사회적으로 외로워서는 안 되는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우리를 소리 내지 않는 가재마저 노래할 만큼 순수하고 깊은 자연 속으로 데리고 가고 싶었던 것일까? 그곳은 우리를 넉넉히 품어 주는 곳, 아이를 버리고 떠나는 부모도, 상대를 아프게 하는 사람도 없는 곳이니까 말이다. 그곳에서 서로를 더 아끼며 사랑할 수 있겠지. 유대감으로 가득한 공동체는 그렇게 쉽게 허물어지지 않을 것 같다.


언젠가 노스캐롤라이나 해안과 맞닿은, 그 습지에 가야겠다. 그곳에는 노래하는 가재뿐만 아니라, 카야도, 나를 두고 떠난 엄마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곳에서 우리는 함께 노래할 수 있을까. 바다의 잔잔한 파도 소리와 습지의 보드라운 숨결을 느끼며 화음을 얹어야지. 마치 한 번도 상처받은 적 없는 영혼들처럼. 그곳에서는 엄마와 끝내 하지 못한 화해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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