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기회의 땅, 그 약속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미국. 내게 그 나라는 두 개의 얼굴을 가졌다. 하나는 실리콘밸리의 혁신과 월스트리트의 역동성으로 대표되는 ‘기회의 땅’이다.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주가지수와 세계를 선도하는 빅테크 기업들의 이야기는 아메리칸드림이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화려한 빛의 이면에는, 팬데믹 이후 치솟는 물가와 실업률, 불안한 치안, 흔들리는 공교육 같은 어두운 그림자가 존재한다.
솔직히 나는 후자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얼마나 심각하겠어?’ 의문을 갖곤 했다. 세계 최강국의 통계 속 숫자들은 좀처럼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안정적인 의료 전문직을 뒤로하고 동유럽으로의 해외 이주를 선택한 미국인 Meiya(가명)를 만났다.
Meiya가 고국을 떠나기로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그녀는 미국에서의 삶을 “끊임없이 사다리를 오르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하는 치열한 경쟁”이라고 표현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천정부지로 솟은 집세와 생활비는 그녀의 숨통을 조여왔다. 의료계에 종사하며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음에도, 그녀는 생계를 위해 파트타임으로 두 번째 직업을 구해야만 했다.
“월급이 생활비를 전혀 따라잡지 못해요. 근처에도 못 가죠.”
한때는 특별한 소수에게만 해당되던 부업(Side job)이, 이제는 생존을 위한 ‘새로운 표준(the new norm)’이 되어버렸다고 했다.
“제 주변 10명 중 8명은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는 특정 계층의 문제가 아니라, 대다수가 겪는 보편적인 고통이라고 했다. 지금 살고 있는 동유럽에서는 단 하나의 직업만으로 저축까지 하며 여유롭게 살 수 있다는 그녀의 말이, 역설적으로 미국에서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는지를 증명했다.
경제적 압박은 개인의 삶을 넘어 사회 전체를 병들게 했다. 그녀는 더 이상 미국을 안전한 나라로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밤에 혼자 거리를 걷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 되었고, 어디를 가든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로 그녀가 꼽은 것은 바로 ‘마약’이었다.
“마약은 어디에나 있어요. 우리가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작은 시골 마을들까지 전부 퍼져있죠.”
언론 보도는 미국 현실의 극히 일부만을 보여줄 뿐이라고 그녀는 강조했다. 화면으로 보는 마약 중독과 노숙자의 추상적인 이미지와, 길 위 희망을 잃은 사람들의 눈빛을 직접 마주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이라는 것이다. 희망의 사다리가 끊긴 곳에서 사람들이 마약에 빠져드는 악순환, 거대한 국가에 그들을 위한 안전망은 없었다.
위기는 미래 세대에게 까지 와 있었다. Meiya는 미국의 공교육 시스템이 “정말 심각하게 무너지고 있다”고 했다. 열악한 처우와 무너진 교권을 견디지 못한 교사들이 교단을 떠나고, 일부 학교에서는 자격증도 없는 사람을 교사로 채용하는 일까지 벌어진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아이들이다. 글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는 아이들이 다음 학년으로 진급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고 했다. 교실 내 폭력과 스마트폰으로 인한 집중력 저하가 맞물리면서, 교실은 더 이상 배움의 공간이 되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교육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했고,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부모들은 앞다투어 홈스쿨링이나 값비싼 사립학교로 눈을 돌리고 있다. 교육 기회의 불평등은 결국 계층의 대물림을 더욱 고착시킨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점점 더 편협하고 고립된 세계에 갇히고 있는 것은 아닐지. 알고리즘이 골라주는 뉴스피드와 유튜브 추천 영상은 세상을 보는 창도 되지만, 동시에 나를 나와 다른 생각으로부터 격리시키는 벽이 되기도 한다. 세상은 숫자와 편집된 이미지의 나열일 뿐, 그 너머에 존재하는 한 인간의 삶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한다..
한 사람의 구체적인 삶의 이야기는 건조한 데이터를 살아있는 현실로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때, 그도 두려움과 욕망을 가진 나와 다르지 않은 인간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1. 미국의 부업 문화
생활비 급등이 임금 상승률을 앞지르면서 많은 미국인이 주업만으로는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한다. 2023년 기준 미국 성인의 약 39%가 부업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 중 약 33%는 부업 소득을 식료품이나 월세 등 필수 생활비에 사용한다.
2. 미국의 마약 문제
미국은 펜타닐을 중심으로 한 합성 오피오이드 위기를 겪고 있다. 2011년부터 2021년 사이 펜타닐 관련 과다복용 사망률이 연간 약 2,600명에서 70,601명으로 급증했다. 2021년 전체 약물 과다복용 사망 중 약 64%가 합성 오피오이드로 인한 것이었다. 다만 2024년에는 과다 복용 사망자가 전년 대비 약 27% 감소한 약 80,400명으로 감소했다.
3. 미국 공교육의 위기
팬데믹 이후 미국 공교육은 교사 부족, 교사 번아웃, 학업 성취도 하락 등 복합적 위기에 직면했다. NEA는 과중한 업무량과 낮은 임금으로 인해 교사들의 번아웃과 이직률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고했다. 교사 이직률은 팬데믹 이전보다 약 2%p 상승한 14~16%이고, 국가 평균 신규 교사 초봉은 약 46,526달러이며, 약 40%의 교사가 부업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