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도시의 배신 | 호주 멜버른을 떠난 경제적 난민

모두가 선망하던 그곳에, 나의 자리는 없었다

by morasafon

'멕시코 여행' 중이라는 말을 들으며 나는 원시림, 안데스산맥의 만년설 같은 대자연에 대해 듣게 되리라 기대했다. 또는 고대의 흔적이 남은 골목과 유적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상상했다. 하지만 현실은 낭만적인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바로 호주에서 온 Sherill(가명)과의 대화였다.


그녀는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그 미소 뒤에는 ‘경제적 난민’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6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혔던 호주 멜버른. 그 꿈의 도시를 등지고 낯선 땅으로 향해야 했던 그녀의 이야기는, 내가 상상했던 여행의 풍경과는 너무 달랐다. 단순한 개인의 사연을 넘어, 우리가 마주한 현실 문제와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멕시코에서 마주한, 낯선 생존의 기록


"왜 멕시코에 이토록 오래 머물고 있나요?" 나의 질문에 그녀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멕시코의 한 달 임대료가 호주 멜버른의 일주일 치보다 저렴하기 때문이에요." 그 한 문장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무게가 느껴졌다. 그녀에게 멕시코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치솟는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해 선택해야만 했던 생존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이미 1년간의 체류를 마치고 4년짜리 임시 거주 비자를 받았으나, 앞으로의 계획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5년이면 이 근방을 둘러보기에 충분한 시간이겠죠." 덤덤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곳은 페루의 고대 도시, 쿠스코(Cusco)라고 했다. 해발 3,000미터 고산지대에 자리한 잉카의 심장. 고고학을 전공한 그녀에게 그곳은 단순한 유적지가 아니라 영혼의 안식처처럼 느껴졌다. “현대적인 건물이 하나도 없어요. 모든 것이 살아있는 역사 그 자체죠. 정말 놀라운 곳이랍니다!” 그녀의 눈이 반짝였으나 곧 호주의 현실을 이야기를 꺼내며 점점 그늘져갔다.


자원 부국의 그늘, 멈춰버린 성장의 시간


“호주는 자원은 정말 풍부하지만, 경제 구조로만 보면 제3세계 국가나 다름없어요.”

금, 구리, 우라늄, 석탄. 호주는 거의 모든 종류의 광물 자원을 보유한 축복받은 땅이다. 땅이 붉게 보이는 이유는 철분이 풍부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광활한 대륙의 85%가 사막이고, 2,600만 명에 불과한 인구는 대부분 해안가에 집중되어 있다. 문제는 인프라였다. "투자자들은 빠른 수익 회수를 원하는데, 인구가 적으니 대규모 프로젝트에 투자해도 돈을 회수하는 데 너무 오래 걸려요. 그러니 아무도 호주에 투자하려 하지 않죠."


결국 호주는 가장 손쉬운 길을 택했다. 원자재를 캐서 다른 나라에 팔고, 그 나라가 만든 완제품을 비싸게 다시 사 오는 단순한 1차 산업에 구조에 머물게 된 것이었다. 한때 멜버른 외곽을 가득 채웠던 홀든(Holden), 포드(Ford), 도요타(Toyota) 공장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 시간당 20~30달러에 달하는 인건비로는 0.5달러에 사람을 쓸 수 있는 나라들과의 경쟁이 불가능했다. 담담한 목소리로 Sherill은 조국이 처한 구조적 한계에 대해 이야기해 나갔다.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무게, 천정부지로 솟은 생활비


팬데믹은 위태롭던 호주 경제에 결정타를 날렸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불과 4년 만에 식료품비가 두 배로 올랐어요. 휘발유 가격도 두 배, 임대료와 공공요금은 30%씩 올랐죠."


채식주의자인 그녀는 고기나 생선처럼 비싼 식재료를 사지 않았음에도 호주에서의 주당 식료품비가 70달러였다. 하지만 멕시코에서는 15달러만으로도 풍족한 생활이 가능했다. 가장 큰 문제는 주거비였다. "소득의 4분의 3을 임대료로 냈어요. 100달러를 벌면 75달러가 집세로 나가는 셈이죠." 평범한 삶을 유지하는 것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현실. 이것이 그녀와 같은 청년들뿐만 아니라, 은퇴한 노년층까지 해외로 내모는 이유였다.


"50년 전만 해도 호주에서는 연금만으로 충분히 생활할 수 있었어요. 지금은 불가능해요. 70세까지 일하고 연금을 받아도, 그것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 거죠."


부모님 세대에게 ‘내 집 마련’은 성실하게 일하면 이룰 수 있는 당연한 ‘호주인의 꿈’이었다. 그들에게 ‘내 집 마련’은 연 소득의 1년 치로 이룰 수 있는 당연한 꿈이었지만, 현재 호주 부동산 시장은 완전히 달라졌다. 하지만 지금 평범한 방 3개짜리 주택 가격은 연 소득의 10배에 달한다. 더는 붙잡을 수 없는 꿈이 되어버린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팬데믹 봉쇄 조치로 건설업계가 무너지면서 멜버른의 임대 가능한 부동산은 0%에 수렴했다. 빈집 하나에 1,000명이 몰려드는 비현실적인 일까지 벌어졌다.


국경 너머, 우리 모두의 어깨를 짓누르는 불안


Sherill은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밝게 웃었지만, 나는 차마 마주 웃을 수 없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의 시민이었던 그녀가 어째서 ‘경제적 난민’이 되어 낯선 땅을 떠돌아야 했는지, 그 이야기가 가진 무게 때문이었다. 더 무겁게 다가온 것은, 바다 건너 그녀의 이야기가 결국 우리 시대의 불안을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졌다는 사실이었다. 천정부지로 솟은 부동산 가격과 감당하기 힘든 생활비, 불투명한 미래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물론 그녀는 ‘훌쩍 떠나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용기와 젊음이 있었다. 그 용기가 부러우면서도,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은 삶의 방식 앞에 두려움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대화가 끝난 후, 머릿속에는 한가지 질문이 맴돌았다.


만약 나라면, 기꺼이 낯선 길 위에 설 수 있었을까.



1. 호주 경제의 1차 산업 의존성

호주는 철광석, 석탄, 천연가스 등 풍부한 천연자원을 기반으로 한 1차 산업이 국가 경제의 핵심이다. 호주는 세계 최대 철광석 생산국이자 주요 석탄·천연가스 수출국으로 해당 자원들이 수출 수익과 국가 계정에 큰 기여를 한다. 이러한 구조는 글로벌 원자재 가격 변동에 경제가 크게 휘둘릴 수 있는 취약점을 안고 있다. 한편, 제조업 기반은 1960년대 GDP의 약 25%에서 최근에는 10% 이하로 낮아졌고, 자동차 생산은 2017년 사실상 중단되었다.


2. 생활비 위기 (Cost of Living Crisis)

생활비 위기는 필수품 물가 상승이 임금을 큰 폭으로 앞지르면서 실질적인 삶의 질이 하락하는 상황을 뜻한다. 이러한 현상은 팬데믹 이후 공급망 교란, 에너지 가격 급등, 주택 시장 과열 등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세계 각국에서 서민층과 저소득층이 식비·주거비·교통비 등 필수 지출 부담을 크게 느끼고 있다. 여전히 높은 가격 수준은 인플레이션 둔화에도 불구하고 가계의 실질 구매력을 제약하는 주요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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