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이 좋았다" 렌틸콩으로 끼니를 때우는 70대 공무원의 고백
사회 안전망의 형태는 각 나라가 추구하는 핵심 가치와 철학을 반영한다. 보편적 보장을 우선하는 사회가 있는가 하면, 개인의 책임과 시장의 역할을 강조하는 사회도 있다. 후자에 가까운 미국은, 개인의 경제적 안정이 고용 상태, 개인 자산, 그리고 민간 보험과 같은 요소들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구조다.
이러한 시스템 안에서 각 개인은 어떤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평생을 공무원으로 일하다 은퇴한 70대 Mordan(가명)는 자신의 현재를 "운이 좋았다"고 표현한다. 이 말은 단지 겸손의 표현을 넘어, 개인의 노력이 시스템의 변수와 결합하여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주었다.
“고관절이 부러졌어요. 이제 다 나았지만, 더 강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수영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70대 Mordan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걷는 것조차 힘들었던 그는 이제 관절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근육을 키울 수 있는 수중 운동을 계획하고 있다. 그가 이용하려는 수영장은 ‘무료’로 제공된다.
“미국에는 '실버 스니커즈(Silver Sneakers)'라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노인이나 장애인을 위한 공공 의료보험 시스템인 메디케어(Medicare)의 혜택 중 하나이지요. 덕분에 대부분의 체육관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답니다.”
도시에서 운영하는 시니어 센터의 수영장 역시 50세 이상이면 무료다. 이는 노년층의 건강한 삶을 지원하는 미국의 복지 시스템의 한 단면이다. 하지만 Mardan은 이 혜택의 기반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했다.
“제가 이야기하는 건 무상 복지(welfare)와는 다릅니다. 저는 평생 이 시스템에 돈을 내왔기 때문이지요.”
Mordan의 설명에 따르면, 1930년대 시작된 미국 사회보장제도(Social Security)는 개인이 소득의 일부를 평생 적립하면, 은퇴 후 국가가 이를 연금으로 돌려주는 방식이다. 그가 누리는 메디케어 혜택 역시 이 제도의 일부다.
하지만 안정적인 인구 성장을 기반으로 설계된 이 시스템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가 대거 은퇴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시스템에 기여하는 인구보다 수혜를 받는 인구가 더 빠르게 늘어나는 인구 구조의 변화 때문이다.
“원래는 2050년대까지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기금 고갈 시점이 10년 안으로 당겨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돈을 넣는 사람보다 빼가는 사람이 훨씬 많아졌으니까요.”
이는 많은 선진국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인구 통계학적 문제이기도 하다.
Mordan이 자신을 ‘운이 좋다’고 여기는 배경에는 미국 의료보험 시스템의 또 다른 특징이 있다. 미국에서 의료보험은 대부분 직장과 연결되어 있다. 회사는 직원의 보험료 일부를 부담해 주지만, 퇴사하는 순간 그 혜택은 사라진다.
“1970년대에 다니던 직장의 의료보험은 100% 보장이 되었어요. 하지만 만약 퇴사 후 그 보험을 유지하려고 한다면, 한 달에 700달러를 내야 했을 거예요. 소득이 없는 상태에서 감당하기 힘든 금액이죠.”
직장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개인은 높은 보험료를 전액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결국 많은 이들이 보험 없이 지내다 질병 발생 시 높은 의료비를 그대로 감당해야 하는 위험에 노출되기도 한다. Mordan은 은퇴 후 메디케어 혜택을 받고 있으나, 이 역시 전체 의료비의 80%만 보장한다. 나머지 20%는 여전히 개인의 몫이다.
“저보다 훨씬 더 몸이 불편한데도 장애 판정을 못 받는 사람들을 많이 알아요. 저는 매우 운이 좋았습니다.”
그가 장애 판정을 받고 추가적인 지원을 받게 된 것 역시, '천운'에 가까웠고 그의 노후 안정에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그의 현재 30대 딸과의 함께 살며 생활의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딸 역시 혼자서는 높은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아버지와 함께 사는 길을 선택했다.
“딸이 없었다면 나 혼자서는 지금처럼 살 수 없었을 거예요. 서로에게 의지하며 균형을 맞추고 있지요.”
그의 가계부는 미국 중산층이 마주한 경제적 현실을 보여준다. 주(State)와 연방(Federal)에서 나오는 두 종류의 은퇴 연금은 월세로, 부업으로 간간히 버는 돈은 각종 공과금과 생활비로 나간다.
“자동차 보험료만 한 달에 400달러입니다. 우리 두 사람 식비는 한 달에 200달러에서 400달러 사이에서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자동차 보험료가 식비와 맞먹거나 더 비싼 삶. 외식 대신, 저렴하고 건강한 식재료를 찾아 식비를 아낀다. 푸드마켓에서 일하는 딸이 직원 할인을 받아 사 오는 신선한 채소와 과일이 식탁을 지키는 유일한 사치다. 집에서 빵과 국수를 직접 만들어 먹고, 가공식품 대신 렌틸콩으로 단백질을 보충하며 건강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싸움처럼 들린다.
Mordan은 자신의 삶이 ‘꽤 편안한 중하층’이라며, ‘운이 좋았다’고 거듭 말했다. 최악은 면했다는 그 안도감 뒤에는, 시스템이 아닌 개인의 노력과 우연으로 버텨온 시간이 있다. 개인의 안정이 이처럼 각자의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불확실한 결과가 될 때, 개인과 사회의 관계는 어떻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1. 메디케어(Medicare)
미국의 대표적인 연방 정부 운영 공공 의료보험 제도이다. 주로 65세 이상의 노인, 그리고 나이와 상관없이 특정 심각한 질병(예: 말기 신부전, 루게릭병 등)을 앓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다. 가입자는 근로 기간에 걸쳐 소득의 일부를 사회보장세의 일부인 메디케어세로 납부하여 재원을 마련한다. 모든 의료 비용을 보장하지 않으며, 공제액(deductible)이나 공동 부담금(co-payment)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많은 가입자가 본인 부담금을 해결하기 위해 '메디갭(Medigap)'이라 불리는 민간 보충 보험에 추가로 가입한다.
2. 사회보장제도(Social Security)
1935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시작된 미국의 핵심적인 공적 연금 제도이다. 근로자와 고용주가 소득의 일부를 사회보장세로 납부하여 재원을 마련하는 부과 방식(Pay-as-you-go)으로 운영된다. 즉, 현재의 근로 세대가 납부한 세금으로 현재의 은퇴 세대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구조이다. 사회보장제도는 미국인들의 가장 중요한 사회안전망으로 기능해 왔다. 그러나 저출산 및 고령화 심화로 인한 재정 고갈 문제는 장기적인 과제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