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부지런하지만, 가장 행복하지 않은 아이들
한국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영어 선생님. 그들의 눈에 비친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특히, 치열하기로 유명한 한국의 교육 시스템 한복판에서 우리 아이들을 매일 만나며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영어 교사, Khalid(가명)와의 대화는 그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그가 한국행을 결심한 계기는 특별했다. 거창한 계획이나 오랜 꿈이 아니었다. "세계 지도를 펼쳐놓고, 눈을 감은 채 손가락으로 한 곳을 찍었어요. 그곳이 바로 한국이었죠." 운명처럼 시작된 5년의 한국 생활. 그의 이야기는 무심코 지나쳤던 우리의 일상의 풍경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아는 게 거의 없었어요. 아시아에 있고, 중국과 일본 옆에 있는 작은 나라라는 것 정도? K팝도, 역사도, 문화도 전혀 몰랐죠."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낯선 땅에 발을 내딛는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Khalid는 남아공 현지에 있는 리크루터를 통해 지방의 한 학원에 일자리를 얻었다. 다행히 그곳에서 일하던 다른 남아공 영어 선생님들과 미리 연락하며 두려움보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한국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지방 도시의 학원에서 1, 2년씩 근무하다, 지금은 경기 근교 학원에서 2년째. 유치원생부터 초중생까지, 수많은 한국 아이들을 만나며 그들의 언어뿐만 아니라 삶을 가까이서 들여다보았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제가 경험해 본 그 어떤 것과도 달라요. 그리고 무척 힘들어 보입니다. 모든 나라에는 장단점이 있겠지만, 한국의 교육 문화는 제가 본 것 중 가장 힘든 것 중 하나예요."
Khalid의 목소리는 안타까움으로 가득했다. 그가 본 한국 아이들에게는 '어린아이로 존재할 시간'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이가 아니라, 쉼 없이 달려야 하는 '로봇'이나 '기계'가 되는 것 같다고.
"남아공에는 학원(Hagwon)이라는 개념 자체가 거의 없어요. 학교는 보통 아침 7시에 시작해서 오후 2시면 끝나요. 방과 후에는 친구들과 축구를 하거나 스포츠 활동을 하며 마음껏 뛰어놀죠. 물론 수학이나 피아노 개인 교습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아주 드물고 비용도 비싸요."
그가 묘사한 남아공 아이들의 일상은 한국과는 매우 달랐다.
"그런데 한국은 어떤가요? 적어도 하나 이상의 학원에 다니는 게 의무처럼 느껴져요.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은 무거운 가방을 메고 또 다른 학원으로 향하죠. 영어, 수학, 피아노, 과학… 밤 10시, 11시가 되어야 집에 돌아오는 아이들의 일상은 정말 끔찍할 정도예요. 이건 아이들뿐만 아니라 그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부모들에게도 너무나 가혹한 일이죠."
영어에 대한 사회적 열망은 교실 밖에서도 쉽게 느껴졌다. 친한 한국인 친구들조차 굳이 그에게 영어로 대화를 시도할 때마다, 그는 낯선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사회 전체가 하나의 목표에 매달리는 듯한 모습은, 결국 아이들의 행복보다 성공이라는 기준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분위기로 이어졌다. 그는 이방인으로서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현실에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고 했다.
이야기 말미에 Khalid는 조심스럽게 속마음을 꺼내놓았다.
"솔직히 말해, 제가 아이가 있다면 이곳에서 키우고 싶지는 않아요. 저는 교사로서 이 교육 시스템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힘든지 매일 보고 있으니까요. 특히 중학생, 고등학생이 겪는 압박감은 상상을 초월해요. 제 아이가 그런 과정을 겪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의 단호한 말은 개인의 소회를 넘어,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처럼 다가왔다. 5년 전, 지도 위 한 점에 불과했던 미지의 나라. 그곳에서 Khalid는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들과, 세상에서 가장 지쳐 보이는 아이들을 만났다. 그의 마지막 말은 질문을 남겼다. 아이들을 위한다는 이 길이, 이토록 힘겨운 모습이어도 괜찮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