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보다 피부색이 먼저다 | 남아공 흑인 우대 정책

법은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by morasafon

우리는 종종 불공정함을 느낀다. 보이지 않는 규칙이 공공연하게 작동하고, 누군가는 출발선이 다른 경기를 뛰고 있음을 직감한다. 이 기울어진 운동장 앞에서 개인의 노력은 무력하다. '노력하면 된다'는 말은 어쩌면 이미 유리한 위치에 있는 이들의 신화일지 모른다. 만약, 이 견고한 사회 구조 자체를 법의 힘으로 뒤집으려 한다면 어떨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전직 변호사 Samas(가명). 50대 초반에 은퇴하여 지금은 여성과 아동의 권리를 위해 활동한다는 그녀. 그녀는 노골적이고 잔인했던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게임의 규칙'을 짜는 과정을 겪어낸 증인이었다.



'보이지 않는 벽'을 '보이는 법'으로 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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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는 차별의 문제로 흘러갔다. 현대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유리천장과 같은 암묵적이고 보이지 않는 장벽에 대한 토로에, Samas는 그녀의 나라가 선택한 '급진적인' 해법을 들려주었다.


"우리나라는 고용에 있어 매우 엄격한 정책을 가지고 있어요. 남아공은 워낙 다양한 인종 그룹이 섞여 있으니까요. 특히 과거에 불이익을 받았던 집단과 모든 그룹의 여성에게, 일자리에서 '첫 번째 기회'를 주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그녀가 말한 것은 '쿼터제(Quota System)', 즉 '고용 형평법(Employment Equity Act)'에 기반한 적극적 조치였다. 국가가 주도하여 인종을 분리하고 차별한 체제,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가 무너진 후, 남아공은 기존 질서가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망가졌음을 인정했다. 수백 년간 쌓인 구조적 불평등이 자유 시장의 경쟁이나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절대 해소될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법'이라는 가장 강력하고 인위적인 도구로, 사회 구조에 직접 개입하기로 결정했다.


"회사는 백인, 흑인, 유색인종(Coloured) 그룹의 비율을 의무적으로 맞춰야 해요. 법이니까요. 만약 회사가 이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노동부에서 조사를 나오고, 기록을 요구하고, 벌금을 물립니다."


강력하고도 어떻게 보면 기계적인 시스템의 작동이다. '왜 그들이 먼저 기회를 얻는가'라는 질문은 '왜 그들이 지금껏 기회를 빼앗겼는가'라는 질문 앞에 힘을 잃는다.



시스템이 만든 새로운 질문


이 급진적인 사회 실험의 결과는 어땠을까.


"이젠 너무나 쉬워졌죠. 과거에는 백인 남성들만 갈 수 있었던 직업에 유색인종이 진출하는 것이요. 대부분의 회사에서 고위직에 유색인종이 앉아있는 걸 발견하게 될 거예요."


그녀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었다. "가령, 남아공 은행들의 고위 경영진을 보세요. 그 자리엔 인도계 여성들이 많이 앉아있어요."


제도적 틀이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끌어올린 것이다. 법이 자격을 재분배하고 기회를 강제로 할당했다. 그 결과,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하드코어한 직업'들—엔지니어, 배관공, 전기 기술자—의 영역에서도 여성들이 활발히 활동하게 되었다.


물론, 이 방식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다. Samas는 시스템이 '찍어낸' 여성 리더들이 겪는 또 다른 딜레마를 짚었다. 인위적으로 열린 기회의 문을 통과한 여성 리더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 경향을 보였다.


첫째는 남성 중심의 기존 권력 구조에서 살아남기 위해 '강인함'을 택한 리더들이다. "그들은 남성 동료들 사이에서 존중을 얻기 위해 그들보다 두 배로 열심히 일하며 스스로 매우 강해져야 했어요." 하지만 이 선택은 종종 반작용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회사의 목표, 이익, 그리고 권력 그 자체에만 집중하죠. 그렇게 행동해야만 존중받을 수 있다고 믿지만, 사람들은 점차 그들을 싫어하게 되죠. 결국 인간적인 존중을 잃게 되는 겁니다."


둘째는 자신의 고유한 강점, 즉 '인간적인' 면을 유지하려는 리더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감성적인 면, 여성적인 면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아요. 오히려 이를 활용해 행복하고 편안한 업무 환경을 만들고, 직원들을 세심하게 돌보려 하죠." Samas는 이런 리더십이 조직에 가져오는 긍정적인 결과에 주목했다. 구성원들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이는 결국 회사의 생산성에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구조를 바꾸자, 그 안에서 뛰는 선수들의 고민도 달라졌다. '어떻게 저 자리에 오를 것인가'라는 생존의 문제를 넘어, '저 자리에 올라서 어떤 리더가 될 것인가' 하는 새로운 방식의 질문이 시작된 것이다.



시스템은 어떻게 정의로워지는가


Samas는 평생을 '법'이라는 시스템의 최전선에서 일했다. 그리고 그 정해진 궤도에서 스스로 걸어 나왔다. 그녀는 이제 제도권 밖에서, 법의 보호가 절실한 여성과 아동을 위한 활동가가 되었다.


법과 제도는 불공정한 구조를 뒤집을 수 있는 강력한 도구이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시스템은 기회의 문을 강제로 열어젖힐 뿐, 그 안에서 새로운 규칙과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Samas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대신, '시스템은 어떻게 정의로워질 수 있는가'라는 현실적인 질문을 던진다. 세상의 불공정한 규칙 앞에서, 우리는 어떤 도구를 선택하고 어떤 책임을 져야 할까.



1. 남아프리카공화국 고용 형평법 (Employment Equity Act)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종식 이후, 직장 내 차별을 시정하기 위해 1998년 제정된 법률이다. 이 법은 '지정 고용주(Designated Employers)'에게 흑인, 여성, 장애인 등 과거 차별받았던 '지정 집단(Designated Groups)'을 적극적으로 고용할 의무를 부여한다. 이는 단순히 차별을 금지하는 것을 넘어, 국가의 인구 구성 비율에 맞게 고용 구조를 개선하려는 적극적 조치(Affirmative Action)를 포함한다. 기업은 고용 형평성 계획을 당국에 제출해야 하며, 미이행 시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2. 아파르트헤이트 (Apartheid)

1948년부터 1994년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 백인 정권이 시행한 극단적인 인종차별 및 분리 정책이다. '분리, 격리'를 뜻하는 아프리칸스어에서 유래했으며, 법률을 통해 인구를 백인, 흑인, 유색인(Coloured), 인도인 등으로 분류했다. 이 정책은 비백인의 투표권을 박탈하고, 거주지 분리, 직업 제한, 교육 차별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체계적인 차별을 강요했다. 넬슨 만델라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투쟁 끝에 1994년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3. 적극적 조치 (Affirmative Action)

사회 내 구조적 차별로 인해 불이익을 받아온 집단(인종, 성별, 민족 등)에게 교육, 고용, 승진 등에서 특정 혜택을 제공하는 정책이다. 이는 단순히 '기회의 평등'을 넘어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는 개념이다. 과거의 차별을 시정하고 실질적인 평등을 이루기 위한 잠정적인 조치로 도입되지만, '능력주의'에 위배된다는 '역차별' 논란이 항상 함께 제기되는 복잡한 사회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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