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지우지 못한 선 | 미국 노예제의 유산

경계를 무너뜨린 법과 제도, 그러나 아직 남은 마음의 벽

by morasafon

미국 사회에서 인종차별이 사라졌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만 그 형태가 바뀌었을 뿐. ‘흑인 출입 금지’ 팻말이 걸려 있던 노골적인 차별의 시대는 갔다. 하지만 그것이 평등의 시대가 왔다는 의미는 아니다. 차별은 교묘하고, 깊숙한 곳으로 숨어들었다. 미국인 Bowen과의 대화는, 법과 제도의 변화 뒤에 가려진 미국 인종차별 문제로 향했다.



지워지지 않는 노예제의 유산


Bowen은 현대 미국의 인종 문제를 이해하려면 그 시작점, 즉 노예제의 끔찍한 역사부터 봐야 한다고 말했다.


"초기 미국에서 흑인은 온전한 한 명의 인간으로 취급되지 않았어요. 투표를 할 때조차 '사람의 3분의 2'로 간주되던 시절이 있었죠. 완전한 한 표가 아니었어요."


그리고 이어 이야기했다.


"미국 흑인들 중에는 백인처럼 오똑한 코와 밝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에요. 거부할 수 없는 권력에 의해 백인의 피가 섞여 들어간, 아픈 역사의 증거이지요. 토마스 제퍼슨, 조지 워싱턴. 미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들이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그들의 성을 가진 흑인들이 정말 많습니다."


이는 복잡하고도 잔혹한 폭력의 기록이다. 흑인들이 자유를 얻은 뒤 자발적으로 건국자의 이름을 선택하기도 했지만, 제퍼슨의 사례처럼 주인이 노예 여성과 성관계를 맺어 아이를 낳은 경우도 있었다. 노예제 하에서 수많은 백인 주인들은 자산 증식 목적으로 여성 노예를 유린했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은 '주인의 피를 가진 노예'가 되어야 했다.


이 비극적인 역사는 흑인 커뮤니티 내부에까지 복잡한 상처를 남겼다.

"지금도 피부가 어두운 흑인과 피부가 밝은 흑인이 서로를 좋아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어두운 흑인이 밝은 흑인을 보면, 뭔가 백인 같다고 느끼는 거죠. 피부가 밝고 얼굴 생김새도 다르니까요."


인종 안에도 위계가 있고 차별받는 사람들 사이에도 차별이 있었다. 역사의 폭력은 그렇게 피부색에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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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습을 바꾼 차별, ‘코버트 레이시즘’의 시대


1960년대만 해도 차별은 일상이었다. "미국 남부에는 흑인 전용 식당, 흑인 전용 호텔, 심지어 흑인 전용 식수대까지 있었어요." 백인 학교에 흑인 아이들을 입학시키려는 시도는 폭동으로 번질 만큼, 분리의 벽은 견고했다. 이것이 불과 60여 년 전 미국의 모습이었다.


수많은 이들의 피와 눈물로 인종 분리법은 철폐되었지만, 편견은 사라지지 않고 모습을 바꿨다. ‘코버트 레이시즘(Covert Racism)’. "더 이상 대놓고 차별하진 않아요. 대신 훨씬 은밀하게 작동하죠."


그의 경험담은 코버트 레이시즘의 실체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백인과 흑인이 같은 일자리에 지원할 경우, 회사는 인종 때문이라는 말 대신 "당신은 우리 조직 문화와 맞지 않네요"라는 정중한 말로 흑인을 떨어뜨린다. 법적인 문제는 없지만, 결과는 과거와 다르지 않다. 주거 문제도 마찬가지다. Bowen은 2000년대 중반, 필라델피아 교외의 한 동네를 떠올렸다. 거리에서 흑인을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비싼 집값 탓도 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흑인들 스스로 특정 지역에서는 환영받지 못할 것이며, 자녀들이 겪을 외로움과 편견을 알기에 그곳을 피하는 것이다. 법으로는 갈 수 있지만 마음으로는 갈 수 없는 곳. 그렇게 보이지 않는 벽이 미국 사회를 여전히 나누고 있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으려는 노력, 그리고 그늘


국가도 손을 놓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부터 ‘소수인종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을 통해 대학들이 의무적으로 흑인 학생을 일정 비율 이상 선발하도록 했다. 과거의 차별로 인해 불리한 출발선에 서야 했던 이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 정책은 또 다른 논쟁을 낳았다. 백인 학생보다 성적이 낮은 흑인 학생이 합격하는 일이 생기면서, 역차별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기업의 상황은 더 복잡했다. 소수 인종 고용 할당제를 채우기 위해, 많은 기업들이 흑인 대신 아시아계를 고용하는 것을 선호했다. 흑인 직원들은 '아주 훌륭하거나 아주 형편없다'는 극단적인 편견이 생기게 되었고, 그들을 고용하는 것은 '위험 부담'으로 여겨졌다. 역사적 불평등을 바로잡으려는 선한 의도가 현실에서는 또 다른 갈등과 편견을 낳은 모순적인 상황이 된 것이다.


법과 제도가 평등을 선언해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세워진 보이지 않는 벽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보이지 않지만, 누구나 아는 벽. 그 벽을 무너뜨리는 데에는 더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1. 미국 민권법(Civil Rights Act of 1964)
미국에서 인종, 피부색, 종교, 성별, 출신 국가에 근거한 차별을 금지한 획기적인 연방법이다. 공공시설, 고용, 교육 등 모든 영역에서의 차별을 불법화했으며, 이로써 '흑인 전용' 식당이나 학교 같은 분리 정책이 법적으로 종식되었다. 이 법은 1950~60년대 민권운동의 결실이었으며, 마틴 루터 킹 주니어를 비롯한 활동가들의 투쟁으로 이루어졌다.


2. Affirmative Action(적극적 우대 조치)
1960년대 이후 미국에서 역사적으로 차별받은 소수집단에게 교육과 고용에서 우선권을 부여하는 정책이다. 대학 입학 시 소수인종 학생에게 가산점을 주거나, 기업이 일정 비율의 소수인종을 고용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식으로 시행되었다. 이 정책은 과거의 불평등을 보상하고 기회의 균등을 실현하려는 시도였으나, 역차별 논란과 함께 미국 사회의 지속적인 논쟁거리가 되어왔다. 최근 몇 년간 대법원 판결로 그 범위가 축소되고 있다.


3. 노예제와 3/5 타협(Three-Fifths Compromise)
1787년 미국 헌법 제정 당시, 노예를 인구 계산에 포함할 때 한 명을 5분의 3으로만 산정하기로 한 합의다. 이는 노예를 완전한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시대적 인식을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다. 노예제는 1865년 수정헌법 13조로 공식 폐지되었으나, 이후에도 Jim Crow 법(인종 분리법)을 통해 흑인 차별은 20세기 중반까지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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